젊은 히토시 씨와 먹는 맛있는 저녁
2012년 9월 3일 월요일
날씨 : 쾌청, 바람 좋음
걷기 :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Hornillos del Camino)에서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까지 (20.5km)
알베르게에서 아침을 제공해 주면 당연히 아침을 먹고 출발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출발지에서 아침을 먹지 않는다. 일부러 빈속으로 출발하여, '다음 마을에 도착하면 커피를 마셔주겠다'로 나 자신을 분발시키는 것이다. 오후에는 지칠지도 모르고, 예쁜 풍경에 발목 잡힐지도 모르므로. 출발 후 두서너 시간은 신나게 걸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바에 들어가 마시는 카페꼰레체는 행복의 맛이다.
오늘은 아침을 먹을 만한 마을이 나타나지 않는다. 1시간 후에 산볼(Sanbol)을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산볼은 까미노 길에서 약간 벗어나있다. 아침을 먹겠다고 일부러 갔다 올 생각은 없다. 마을은 또 나올 테니까. 배고파서 더는 안 되겠다 싶을 때 온타나스(Hontanas)를 만난다.
온타나스는 높은 언덕에서 내려다보면서 진입하게 되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는 작은 마을이 너무 예쁘다. 같이 걷고 있던 준영이, 정현이와 사진을 찍느니, 포즈를 취해보라니, 깜찍한 풍경이 우리를 흥분시킨다.
이들은 삼인방이니 우리 뒤 어디쯤 당연히 혜인이도 걷고 있다. 혜인이는 걸음이 대단히 느려 내가 아무리 천천히 걸어줘도 잠깐새 저 뒤에 가있다. 그러니 버려두고 왔다. 타인에게 맞춰 속도를 조절하는 친절함이나 인내심이 내게는 없다. 혜인이는 나보다 1.5배의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바에서 천천히 아침을 먹으며 혜인이를 기다리기로 한다. 먹고, 쉬고, 앉아 버틸 만큼 버텼으나 혜인이는 도통 올 생각을 않는다. 나는 그만 가야겠다고 일어서는데 준영이와 정현이는 좀 더 기다려 볼 거란다. 역시, 친구가 좋다.
온타나스를 완전히 벗어날 때쯤, 저 앞에 혜인이가 보인다.
"준영이랑 정현이는 바에서 너 기다리고 있어."
혜인이는 너무 기다리게 할까 봐 바에도 들리지 않고 곧장 걸어왔던 것이다. 뭘 좀 먹었는지 모르겠다.
"기다리다 오겠죠 뭐."
미안하지만 그녀를 또 앞서가야겠다.
산 안톤(San. Anton) 수도원을 지나가게 된다. 남아있는 벽체만으로도 그 화려함이 대단한데,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이 폐허가 되도록 버려졌나 모르겠다. 수도원 유적 안으로 들어가 볕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하염없이 본다. 오래 앉아 있었더니, 순례자들을 여럿 만난다.
히토시 씨는 유적 안으로 들어와 선크림을 부옇게 바르고 갔다. 스테파니와 샤란도 멈춰 서고, 마침 동양계 남자아이 하나가 들어선다. 나무 지팡이를 끌고 다니던 그 남자아이는 생김새로 동양계인 것은 알겠는데, 누구와 말하는 것을 보지 못해서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몰라 호기심만 키우고 있었다. 열린 마음의 소유자, 스테파니에게 저치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말 좀 붙여보라고 한다. 스테파니가 인사했고, 그가 웃는다. 중국인이란다. 샤란은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고도 중국어를 한마디도 쓰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중국인인가? 그 눈빛이 중국인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떠나고 '이모'를 외치며 정현과 준영이 등장한다. 바로 앞에서 혜인을 만났단다.
"여기 너무 예쁘지? 앉아서 천천히 보고 오렴. 있다 봐."
같이 가자며 구경도 않고 따라나선다. 앵? 나는 혼자 걷고 싶은데.
가스트로헤리스(Castrojeriz)가 저 앞에 보이면서는 도로를 따라 쭉 걷게 된다. 스페인 할머니가 나와 계시다가 순례자들에게 커피 사탕을 한 움큼씩 나눠주신다. 이 많은 순례자들에게 한 개씩도 아니고 저렇게 한 움큼씩 주시면 사탕이 많이 필요하실 텐데. 할머니 개인의 의지인지 이 길 위의 순례자를 위한 마을의 정책적 활동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기운 없을 때마다 이 커피 사탕이 도움이 됐다. (이베타는 내가 커피 사탕만 먹으면 에너지가 갑자기 쏟아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내게 짬짬이 커피 사탕을 건네주었었다. "어, 이거 스페인 할머니가 준거 아니야?" "맞아." "이게 아직 있어? 난 다 먹었는데." 자긴 예쁘다고 할머니가 좀 많이 주셨단다. 이베타는 농담을 한 거였는데, 진짜 그랬을 것이다. 그녀는 참 예쁘다.)
카스트로헤리스에는 공립 알베르게가 두 개 있었다. 열홍쌤이 뒤에 처진 삼인방을 위해 메모를 남겨두었다. 어는 알베르게로 오라는 것이다. 일단 나도 같이 가본다. 아직 알베르게가 문 열 시간이 아니라 배낭들만 줄 서있다. 알베르게 문을 슬쩍 열어보니 분위기가 별로 아늑하지도 않고, 침대도 몇 없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이곳에 묵으면, 한국인들로만 가득 차겠다.
내 가방도 줄 세워두고 삼인방과 점심이나 먹기로 한다. 바에 들어가 뭘 먹을지 결정 못하고 한국말로 우왕좌왕 한참을 떠들어대니, 까마레라가 황당하고 짜증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뭘 먹을지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우유부단함 때문이기도 하다. 스페인어 메뉴를 읽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 '이걸 먹지 않겠니?'하고 추천해 주면 깔끔해질 일을, 내가 내 원하는 것을 먹어야겠듯이, 그들에게도 고르라고 하니, 시골에서 막 상경한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왜 그렇게 창피하던지..... 급히 그들로부터 도망쳐 다른 알베르게로 가야겠다는 결단이 선다. 어젯밤 가위에 눌리며, 하늘님게 기도하며 거래하기를 하늘님이 내게 어째 어째해 주시면, 나는 타인에게 잘해 주겠노라고 결심했던 나의 다짐은 얼마나 빨리도 사라지는지.
동갑은 딱 하루 저녁 대안학교 학생들을 보고도 알아챘다.
"누님, 쟤들은 대안학교가 아니라 특수학교지요."
'특수학교'라는 단어로 내가 지금까지 뭔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한, 대안학교 학생들에 대한 불만이 싹 표현이 되었다. 동갑의 비유가 참으로 절묘하여, 그의 놀라운 안목과 표현력에 한참을 감탄했었다. 그들의 심성이 나쁘지는 않은데, 뭔가 사람 열불 터지게 하는 게 있다.
또 이들이 메뚜기 떼처럼 몰려다니는 것도 문제다. 규모가 크면 민폐인 것을 알아, 저들도 다섯 명씩 팀을 나누어서 순차적으로 출발했지만, 알베르게에 도착해 보면 두 팀, 세 팀 모여 있기 일쑤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메뚜기 떼처럼 쓸고 지나가면, 알베르게 주인도 그렇고 이 길을 걷는 순례자들도 같은 한국인인 나까지 지겨워한다. 그들은 이 길 내내 내 앞뒤로 깔려, 이 팀이 아니면 저 팀을 만나게 된다.
두 번째 알베르게의 오스피탈레로는 이탈리아 아가씨다. 지금껏 본 오스피탈레로 중에 가장 어리다. 공립 알베르게의 오스피탈레로들은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인데, 세계 각국에서 온다. 한 계절, 오스피탈레로로 일하며 스페인에 머무는 일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알베르게가 밖에서 볼 때는 몰골이 별로였는데, 안은 아늑하다. 대안학교 학생들로부터 도망 오길 잘했다 싶다. 알베르게의 외관은 딱 옥탑방 같다고 보면 된다.
오늘은 아래 칸이 남아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위 층 침대를 선택한다. 우연히도 아래 칸에 히토시 씨가 짐을 풀었다. 2층 침대는 누구 한 사람이 움직이면 침대가 같이 움직인다. 그가 깰까 봐 뒤척거리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그가 잘 잤는지 모르겠다.
이곳에서 에마우스에서 만났던 이탈리아 할아버지 프랑코도 만났다. 내가 인사를 하자, 처음 보는 사람 보듯 한다. 에마우스 이야기를 했더니 그제야 내 얼굴을 기억해 내고 알아보지 못했다고 매우 미안해한다. 뭘, 그런 걸 가지고.
히토시 씨에게 저녁을 같이 먹겠느냐고 물어본다. 좋다 한다. 언젠가부터 혼자 저녁 먹는 것에 두려움을 갖게 된다. 길의 초반에는 혼자여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아는 얼굴들이 늘어가면서 '저 많은 사람들을 두고 넌 혼자 먹니?'의 기분이 드는 것이다.
히토시 씨와는 안면만 텄을 뿐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다. 그래도 같은 동양인이라 밥 먹자는 소리가 쉽게 나왔다. 그는 전체 요리로 가스파초를 시켰는데, 가스파초를 먹어본 적 있냐며, 맛보란다. 그의 말이 입에 발린 소리 같지 않아 한 수저 살짝 뜬다.
"아니야, 푹푹 떠먹어."
숟가락이 들락날락해도 신경 안 쓰는 그가 마음에 든다. 뿌엔떼 라 레이나에서 먹어 본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난번에 먹은 것은 물 한 대접에 토마토 반쪽이나 갈려 들어갔을까 말까 한 맛이라면, 이번 것은 '가야농장'의 토마토 주스처럼 걸쭉하고 새빨갛다. 그러니 그 맛 차이야 뭐.
메인요리는 둘 다 닭고기를 선택한다. 껍질째 스테이크 두께로 그릴에 굽혀 나왔다. 히토시 씨와 나는 맛있다고 난리가 난다. 그는 이렇게 맛있는 레스토랑으로 안내해 줘서 진짜 고맙다고 했다.
"아니야, 이 레스토랑은 우리 둘이서 선택한 거지."
우리가 친해지는데 맛있는 요리의 덕을 크게 본다.
히토시 씨를 처음 만난 것은 페르돈 언덕을 내려오면서다. 다리가 아픈지 몹시 힘겹게 걷고 있었다. 뒷모습이 영락없는 한국 아저씨였다.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시죠?"하고 말 붙였다. "No, no." 일본 사람이란다. 그만만 해도 같은 오리엔탈이라 반가운데, 그는 돌아봐주지도 않았다. "네가 그랬었다."라고 했더니 자기는 그때 너무너무 힘이 들어서 걷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 쓸 수 없었단다.
그는 예상했던 것보다 나이가 제법 많다. 나이로 치면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데, 히토시 씨는 뭔가 분위기가 나보다 더 젊은 사람이다. 2년 전에 퇴직한 후로 계속 여행 중이란다. 그에게는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 부인과, 대학생인 아들과 딸이 있다. 늦게 결혼했나 보다 했더니, 그렇단다.
지속적으로 만나지는 사람들은 너무 늙어서 하루에 20km씩 겨우 걷는 자들 뿐이다. 내가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겠지? 지금껏 익힌 얼굴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조금 고독하게 걷고 싶다.
문자의 힘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글로 써서 이렇게 하겠다고 하자 내가 정말로 그렇게 했다. '한국요리를 해 먹겠다!' 했고, 그렇게 했다. 그건 먹는 것의 문제가 아니었고, 여행의 자세를 바꾸는 전기(轉機)였다. 글의 힘을 믿고 또 써서 다짐해 본다.
첫째, 먹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자. 가방이 무겁더라도 늘 먹을 것을 갖고 다니자. 언제나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이 든든함을 준다.
둘째, 뭐든 내 식대로, 내 결정대로 하자. 그것이 후회를 적게 하는 길이다.
셋째, 원하는 양껏 걸어라. 하루에 몇 km가 되었든, 몸이 노곤히 만족하도록 걸어라. 날이 남을까 걱정하지도 말고, 몸에 탈이 날까 걱정하지도 말고. 남으면 남는 대로 관광을 하면 되고, 탈이 나면 하루 이틀 버스를 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