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점령된 땅의 경계를 걷다
출판으로 이어지지 못한 번역 제안서들이 있다. 그 아쉬움을 정리하고 돌아보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라자 샤하다는 라말라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인권 변호사다. 《Where the Line is Drawn》을 읽으며, 우정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점령의 참혹한 현실을 드러낸다는 것을 크게 느꼈다. 저자가 창립자인 인권 단체 알하크가 2021년 이스라엘에 의해 ‘테러 조직’으로 지정됐듯, 점령의 현실은 정말이지 무겁다. 이 책을 번역 제안한 이유다.
‘우정은 가능할까?’라는 한국어판 가제는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라는 답을 상정하고 쓴 것이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은 정착자 식민 국가이고 그 때문에 본질적으로 강탈 국가라서, 이스라엘 국가가 근본적으로 해체되지 않는 한 그런 평화는 불가능하다는 걸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책을 읽다 보면 심지어 개인 간의 우정조차 위태롭게 만드는 점령의 현실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점령하에서도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사이의 개인적 우정은 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책에는 여러 이스라엘인 친구와 지인들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우정이 가능하지 않아 보였다. 저자가 전하고자 한 것과 내가 읽은 것이 다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번역자로서 내가 읽은 방식을 전하고 싶었다.
저자의 가장 중요한 친구인 헨리는 캐나다에서 이주해 온 사람이다. 헨리는 점령에 반대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고민한다. 이스라엘로 자발적으로 이주해 온 것 자체가 시온주의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저자의 지인 사라는 이스라엘 ‘좌파’이지만, 팔레스타인인이 빼앗긴 아랍식 가옥에 살며 그 집을 미학적 대상으로만 소비한다. 자신을 비판하는 좌파들에게는 아랍 마을 터 위 대학에서 평화를 말하는 것이 더 위선적이라며 반박하지만, 이는 점령 구조를 비판하기보다 자신의 점유를 합리화하는 자기방어에 가깝다. 팔레스타인 난민을 “과거에 집착한다”고 폄하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그 과거의 폐허 위에 산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물론 저자에게는 나오미처럼 더 명확하게 점령 현실을 바라보고 이에 항의하는 이스라엘인 지인도 있었다. 하지만 나오미는 이후 영국으로 이주한다. 이스라엘에 과연 그런 존재가 계속 있을 수 있을까. 저자가 나오미를 만났던 1980년대에도 쉽지 않았고, 지금은 완전히 극소수로 전락해 거의 불가능하다.
발췌 번역으로 삼은 장면이 있다. 헨리의 지인인 엘다드를 식사 자리에서 만났다가, 이후 그가 예비군 복무 중 수색 임무를 하고 있을 때 다시 마주치는 장면이다. 엘다드는 저자를 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식사 자리 이야기를 꺼내며 대화를 이어가면서, 저자의 몸을 수색한다. 벨트를 풀고, 바지를 내리고, 다리를 벌리고, 가방을 비우라고 명령한다. 저자가 어머니에게 줄 선물도 압수해서 버린다. 엘다드는 어떤 사과도 하지 않고, 자신은 규정을 따라야만 한다고 답할 뿐이다. 저자는 헨리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지만, 헨리의 무심함에 실망한다. 헨리 또한 같은 상황에서 명령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까. 점령의 현실이 개인적 관계까지 끔찍하게 망가뜨린다는 것을 본 장면이다.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22군데 출판사에 제안서를 보냈다. 한 곳에서는 저자의 미번역된 다른 책도 함께 살펴보셨는데, 국내에 팔레스타인 책이 이미 여러 권 소개된 만큼 소재의 유사성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싶다고 거절하셨다. 다른 한 곳에서는 저자의 유려한 글솜씨 등이 매력적이지만 지금과의 시차가 있어 한국 사회와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 있다고 하셨다. 두 곳 모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유였다. 다만 아쉬운 건 제안서에서 내가 이 책을 읽은 방식을 충분히 잘 설득하지 못한 것 같다는 점이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지금 현실을 반영하고 설명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는 답변도 있었다. 지금 현실이란 아마 가자 인종학살을 말하는 것일 텐데, 나는 인종학살이 필연적인 결과였다는 끔찍한 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라도 라자 샤하다의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우정조차도 어렵게 만드는 게 시온주의라는 인종차별적 식민주의의 본질이고, 시온주의는 발전 끝에 결국 지금의 인종학살까지 왔다.
팔레스타인 관련 책은 한국에서 그리 다양하게 나오기 어려운 것 같다. 영미권과 비교하면 아쉽지만, 그래도 팔레스타인 관련 책을 꾸준히 기획해 보고 싶은 게 나의 욕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