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섹스로봇, AI 여자친구… 기술에 가려진 젠더 불평등과 성차별
올해 5월, 로라 베이츠의 신간 《The New Age of Sexism》이 영국에서 출간됐다.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건 6월이었다. 한 달은 짧아 보이지만, 길다면 꽤 긴 시간이다. 원출판사에서 출간되기 전부터 이미 판권 협상이 시작되는 책도 꽤 있으니 말이다.
로라 베이츠는 한국에서 이미 세 권의 책이 번역된 저자다(《인셀 테러 》, 《목록 》, 《일상 속의 성차별》). 국내에 소개된 책이 많은 편이라, 이 책도 한국어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늦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빠르게 움직이기로 했다.
책을 읽고 제안서를 썼다. 발췌 번역은 세 곳을 골랐는데,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딥페이크 대응, 여성 대상화를 정당화하는 섹스로봇 옹호론, 폭력적 행동에도 금세 다정해지는 AI 챗봇 등이었다.
스물세 곳의 출판사에 제안서를 보냈다. 원출판사에도 진작에 판권 문의 메일을 넣었는데, 내가 판권을 살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한국 출판사에 제안할 예정이라는 점을 메일에 밝혔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이런 경우가 꽤 많아서, 답장 여부와 관계없이 제안서를 돌리곤 한다. 한국 출판사가 저작권 에이전시에 직접 문의하는 게 내가 원출판사로부터 답장받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한국 출판사들에서도 답변이 너무 없었다. 기획 방향을 잘못 잡은 걸까, 제안한 출판사들과 결이 안 맞은 걸까.
그러다 한 출판사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 편집자님께서 상세 검토를 위해 저작권 에이전시에 연락했는데, 판권이 팔렸는지조차 몇 달간 제대로 답변받지 못했다. 나에게도 저작권 에이전시 연락처를 주셨지만, 내가 연락해도 묵묵부답이었다. 번역가에게는 저작권 에이전시가 답장을 안 주는 게 오히려 일반적인데, 판권을 살 수 있는 주체가 아니니까 그런 것 같다.
세 달여간 기다림이 이어졌다. 편집자님께서 자신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주변에 물어보니 판권이 이미 팔렸으면 답장이 없을 수 있다고 들었다고 하셨다. 내 생각에도 아마 그런 것 같다.
아쉽지만, 제안에 관심을 주시며 다음에도 좋은 책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하신 편집자님을 만난 건 기쁜 일이다. 꼭 번역을 맡지 못하더라도, 이런 인연을 쌓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감사하다.
늦었을 수 있다는 불안이 현실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중요한 책이니 꼭 나왔으면 좋겠다. 한국은 신기술을 이용한 성범죄가 심각한 나라고, 이 책에서 한국 사례도 여럿 나온다. AI를 마냥 찬양할 게 아니라 적절하게 규제하고 다뤄야 한다는 얘기가 점점 많아지는데, 여성혐오의 측면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만약 이 책이 지금 번역 중이라면 곧 한국에 나오겠지. 많이 읽어봤으면 한다. 나도 한국어로 다시 읽어봐야지.
https://www.simonandschuster.co.uk/books/The-New-Age-of-Sexism/Laura-Bates/9781471190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