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과 아이폰에서 국립국어원 접속이 안 되는 문제, 이렇게 풀었다
‘Suzanne’의 외래어 표기법 용례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인데.
몇 개월 전부터 번역 작업 중 외래어 표기법 용례를 확인하려고 국립국어원 사이트에 접속하면, 내 맥은 어김없이 무한 로딩되다가 접속이 안 된다는 에러 메시지를 뱉었다. 새로고침을 아무리 눌러도, 브라우저를 사파리나 파이어폭스로 바꿔도 소용없었다(나는 크롬을 쓴다).
그런데 Cloudflare WARP+를 켜면 사이트가 열렸다. VPN을 켜도 사이트가 열렸다. 아이폰 핫스팟을 켜서 접속해도 사이트가 열렸다.
아이폰에서도 5G망으로는 잘 열렸지만, 집 와이파이만 연결하면 마찬가지로 사이트 접속이 안 됐다.
국립국어원에 접속할 때마다 WARP+를 켜거나 5G망을 이용하는 식으로 지난 몇 개월간 대응해 왔지만, 솔직히 귀찮은 일이었다(나는 iCloud+ 비공개 릴레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WARP+를 상시 켜놓을 필요가 없다). 나는 근본적 해결을 원했다.
‘우리 집 인터넷 회선이나 DNS가 꼬인 건가?’
나는 오늘 아침 AI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문제 해결에 나섰다. 이번에는 기필코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말겠다고 다짐하며.
DNS를 Cloudflare의 1.1.1.1로 변경하고, 온갖 캐시를 초기화해 봤다. 실패. 공유기 설정에서 MAC Clone이라는 것을(MAC은 애플 맥과는 아무 관련 없다는 정도만 안다) 건드려보면 된다길래 그것도 해 봤다. 여전히 실패. MTU(데이터 전송 단위)라는 값도 조정해 봤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봤다.
결과는 모두 실패. 이걸 하느라 애쓰는 시간 대신에, 차라리 매번 WARP+를 켜는 게 더 시간 절약이었겠다.
결국 우리 집 인터넷 통신사의 기술팀에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설명하자 담당자가 자신의 컴퓨터로 점검해 보더니 이렇게 말하셨다.
“저희 망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말씀해 주신 증상을 보면 전형적인 IP 대역 차단 문제인데, 국립국어원 서버 측에서 고객님의 IP 대역을 막아놨을 가능성이 큽니다. 국립국어원에 직접 전화해 보세요.”
범인은 국립국어원이었구나! 국립국어원 서버가 우리 집 IP 대역을 막고 있는 게 분명했다.
국립국어원 전산 담당자와 통화했다. IP 대역 차단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하니, 뜬금없이 나한테 기종을 뭘 쓰냐고 물으셨다. 맥과 아이폰을 쓴다고 답하니, 이렇게 말하셨다.
“아이폰에서 정책상 막는 경우도 있다더라고요. 뭔가를 설정해야 한다던데, 일단 저희 쪽에서 IP 대역을 차단했는지 확인한 후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시 전화를 기다리는데, ‘아이폰에서 정책상 막는다’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 생각은 여태껏 못 했는데…. 집에 굴러다니던 갤럭시 공기계를 꺼내 봤다. 집 와이파이에 연결하고 국립국어원 사이트에 접속했다. 접속이 됐다!
IP 대역 차단도, 통신사 문제도 아니었다. 애플 기기와 국립국어원 서버 간의 문제였던 것이다. 무려 2005년부터 맥만 써온 ‘앱등이’로서는 갤럭시로는 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기에, DNS니 MAC이니 MTU니 죄다 건드려 보고, 통신사 기술팀과도 통화해 보고, 결국 국립국어원이 우리 집 IP 대역을 막아놨을 거라는 추측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 애플 기기 문제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시도 해본 적이 없다니, 역시 22년 차(아이팟까지 치면 24년 차) 앱등이답다.
또다시 AI의 도움을 받아 애플 기기 설정을 하나씩 뒤지기 시작했다. 의심 가는 보안 기능은 세 가지라고 했다. 비공개 릴레이, 비공개 Wi-Fi 주소, IP 주소 추적 제한. 하나씩 껐다 켜보며 테스트했다. 범인은 ‘비공개 Wi-Fi 주소’였다.
이 설정만 끄자, 그토록 안 열리던 국립국어원 사이트가 허무하게도 바로 열렸다. 설정 하나만 끄면 됐다니.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AI의 설명에 따르면, ‘비공개 Wi-Fi 주소’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기기의 실제 MAC 주소 대신 임의의 주소를 생성하는 애플의 최신 보안 기술이라고 한다. 뭔지는 몰라도 보안에 좋은 설정인 것이겠지만, 국립국어원 서버는 이걸 비정상적인 접근으로 오해하고 문을 닫아버렸던 것이라고 한다.
5G망이나 Cloudflare WARP+를 쓰면 이 설정이 작동하지 않으니, 당연히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비공개 Wi-Fi 주소’는 집 와이파이에서는 끄자. 공용 와이파이처럼 보안이 걱정되는 곳에서는 ‘비공개 Wi-Fi 주소’를 켜 놓는 대신 WARP+도 켜자. 어차피 집 밖에서는 번역 작업할 일도 거의 없으니.
다시 국립국어원 전산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원인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근본적 해결을 위해 서버 관련 담당자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애플 기기로 국립국어원 사이트 접속이 안 되는 문제의 해결책: 설정 → Wi-Fi → 연결 중인 Wi-Fi 옆 ‘세부사항…’ 버튼(아이폰에서는 ‘i’ 버튼) → ‘비공개 Wi-Fi 주소’를 ‘끔’으로 바꿈
※ 이게 직접적인 원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덧붙임 2 참고.
외래어 표기법 용례를 쉽게 찾아보겠답시고 몇 시간 동안 별짓을 다 했는데, 결론은 설정 하나만 끄면 됐다는 게 허무하다. 그래도 교훈은 얻었다. 복잡한 해결책이 있을 거라고 헤매지 말자. 답은 단순한 곳에 있을 수 있다.
이제 나는 ‘Suzanne’의 표기법 용례를 몇 개월 전처럼 편하게 검색할 수 있다.
이 글을 쓰던 중에 묘한 일이 벌어졌다. ‘비공개 Wi-Fi 주소’를 다시 켜봤는데, 이번에는 아무 문제 없이 접속이 잘 됐다. 국립국어원에서 이전에 접속해 보지 않았던 페이지까지 술술 열렸다. 캐시가 남아있어서 열렸다고 보긴 어려웠다.
다시 켜도 잘 된다니? 국립국어원 전산팀이 30여 분 만에 내 민원을 전달받아 즉시 조치했을 가능성은 낮다. AI한테 물어보니 몇 가지 다른 기술적 가능성에 관한 답변도 줬는데,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만약 그런 경우라면 나중에 다시 막힐 수도 있단다.
국립국어원 전산팀이 해결을 한 것이든, 뭔가 기술적 해결이 된 것이든, 이제는 ‘비공개 Wi-Fi 주소’ 설정과 상관없이 접속이 잘 된다. 결과적으로 가장 좋은 해결이다.
스레드에 이 글 링크를 올린 후 답글을 많이 받았다. ‘나도 이런 문제가 있는데 ‘비공개 Wi-Fi 주소’를 끄니 들어가지더라’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비공개 Wi-Fi 주소’를 끄는 것은 직접적인 원인과는 맞닿아 있지 않다는 관련 전공자분들의 설명도 있었다. 그분들의 설명에 따르면, ‘비공개 Wi-Fi 주소’ 기능은 서버 측과는 아무 관계 없는 기능인 듯하다.
‘비공개 Wi-Fi 주소’를 끄는 게 애플 기기의 네트워크 관련 설정을 재설정하는 효과를 내는 걸까? 그렇다면 껐다가 다시 켜도 여전히 잘 되는 이유도 설명이 될 것 같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여러 답글이 보여주듯 나만 겪었던 일은 아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게 해결책인 건 맞다. 여하튼 나는 이제 국립국어원 사이트 접속이 잘 돼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