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순을 먹지 않으면 불효녀가 된다
더위가 좀 가신 계절이다. 엄마가 집으로 가져온 반찬 통에는 또 고구마순이 가득하다. 물론 고마운 일이지만 고구마순 반찬만 3주째 이르자, 반갑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불퉁한 목소리가 나간다.
"또 고구마순이야?"
"지금은 고구마순이 제일 맛있다."
엄마가 꽂힌 음식을 질리지도 않고 내내 해대는 일은 우리 가족에게 아주 익숙하다. 엄마는 요리하는 법을 하나 배우거나 많이 확보한 재료가 있으면 한 달 동안 같은 음식을 하기도 한다.
언젠가 묵밥을 한 번 아빠에게 해줬을 때 반응이 좋았던 적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묵밥!"
아빠는 일주일 정도는 신나서 묵밥을 먹었다. 묵밥을 사랑하는 아빠도 2주 연속으로 저녁 밥상에 묵밥이 올라오자, 시무룩한 표정으로 "또 묵밥이야?"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한 번은 내가 고등학생이던 때 일이다. 엄마가 반찬으로 장조림을 했다. 아마 그때 장조림 하는 법을 새로 배우고 해 보니 몹시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엄마는 내 도시락 반찬으로 한 달 내내 장조림을 싸줬고, 같이 도시락을 먹던 친구들은 나에게 물었다.
"너희 집 장조림 공장 하냐?"
그런 일이 워낙 비일비재하여 이번에도 엄마에게 고구마순에 꽂힌 사연이라도 있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외할머니에게 얽힌 추억이 있었다.
"우리 엄마가 옛날에 이 계절이면 항상 고구마순으로 반찬을 해줬는데 그땐 그게 그렇게 맛이 없더니 지금은 엄마가 해주던 고구마순이 너무 먹고 싶은데 아무리 해도 그 맛이 안 난다."
나는 외할머니를 몇 번 만난 적이 없다. 외가는 안동인데 우리는 인천에 살아서 안동까지 가기는 쉽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아가씨였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세숫물을 하인이 떠다 주면 방에서 세수하던 사람이었다니, 얼마나 집안일도 못하고 음식도 못 했겠는가.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자, 곱게 자란 외할머니 대신 고생한 사람이 우리 엄마였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외할머니의 부고를 받은 것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였다. 혼자 계신 지 오래되었고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는지 엄마의 반응은 덤덤했다. 나는 외조모상으로 난생처음 경조사 휴가를 써보았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엄마는 병원과 장례식장과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모와 삼촌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하고, 마을 어른들과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일도 엄마 몫이었다. 마침내 장례식장에 도착한 엄마는 더욱 바빠졌다.
"문어는 왔나? 그건 이만큼씩 썰어서 내라."
"꽃은 이단만 한다고 해야지. 돈이 얼만데 삼단까지 해."
"수의는 내가 좋은 거 가져왔다. 가서 따로 안 해도 된다고 해라."
누군가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던 일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엄마는 거의 모든 일을 혼자 결정하며 교통정리를 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집안 어른과 싸우는 일도 있었지만 원래 누구에게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라 일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계산도 정확해서 장례식장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돈 관련 다툼도 없었다. 각자 몫으로 들어온 부의금은 정확하게 나누어 가졌고 심지어 외손녀인 나조차도 내 앞으로 들어온 경조사비를 돌려받았다.
장례식장에 있던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내 일이 아닌 듯한 기분이라고 할까. 그 당시에는 어쨌든 할머니였으니 돌아가시기에 너무 이른 나이는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아직 스마트폰도 없던 시기라서 나는 주로 동생과 시시덕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조문객을 맞으면 외삼촌이 반사적으로 "아이고, 아이고"하면서 울음기 없는 곡소리 내는 것을 보며 "매크로 돌린다."라고 말했다가 웃음이 터진 동생을 진정시키고 나도 웃음을 참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나에게는 외할머니의 죽음이 별로 와닿지 않는 일이라서 눈물이 나지 않는 건가, 막연하게 생각했다. 부고를 받고 장례를 치르는 내내 엄마도 울지 않았으니까.
장례 절차가 다 끝나고 화장하게 되었다. 엄마가 보지 말라고 해서 입관하는 것은 보지 않았으나, 화장할 때는 다 같이 가야 한다고 해서 따라갔다. 장녀인 우리 엄마는 맨 앞 가운데에서 외할머니의 관이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다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소리 내 울었다.
"엄마- 엄마아-"
엄마는 목을 놓아 울었다.
엄마의 엄마를 부르면서.
엄마가 울자, 이모들도 따라 울고 외삼촌도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훔쳤다. 나도 뒤돌아섰다. 엄마가 엄마를 부르면서 울자, 내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졌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픈 게 아니었다. 우리 엄마가, 엄마를 잃어서였다. 나의 사랑하는 엄마가 사랑하는 엄마를 잃고, 다시는 볼 수 없어서 소리 내 우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였다.
그제야 이해한 슬픔이 넘실거렸다. 외할머니는 나에게는 할머니지만 엄마에게는 엄마였지. 우리 엄마는 이제 엄마가 없구나. 나는 엄마가 없으면 못 사는데 우리 엄마는 엄마 없이 어떻게 살지.
그 이후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거의 20여 년 전의 일이라 그런지 흐릿한 기억 속에 엄마가 엄마를 부르며 목 놓아 울던 그 장면만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그러니까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며 만들어 온 고구마순에 내가 약해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도 나중에 엄마가 만들어왔던 썩 맛있지는 않던 고구마순을 그리워하며 왜 맛있게 먹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하지 않을까. 그렇다. 3주 내내 먹었는데도 우리 집 냉장고에 다시 새로 자리한 고구마순을 애써 먹어 치우는 것은 불효녀가 되지 않으려는 나의 몸부림이겠다. 동시에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표현법이다.
나는 고구마순으로 반찬을 만들 줄 모르니 엄마를 추억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엄마의 서사를 쓰는 일은 내가 훗날 꺼내볼 사랑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가 주인공인 모든 이야기. 그 기록을 시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