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서당 훈장님네 첫째 손녀에게는 다섯 명의 동생이 있다.
"나비야, 내일 시간 되니? 점심 먹을까?"
고양이를 부르는 소리가 아니다. 곧 70대가 되는 엄마의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소리다. 엄마의 주변 사람들은 엄마를 이름 대신 '나비'라고 부른다. 최소 30년 전부터 이미 그렇게 불리고 있어서 나도 정확한 시작점이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아주 예전에 작성하던 블로그의 이름도 나비였다. 나도 엄마를 글 속에서는 '강나비'로 지칭하려고 한다.
물론 모두가 나비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언제나 본명보다 별명이 익숙했다. 어릴 적 호칭은 '음전이'였다고 한다. 말이나 행동이 얌전하고 점잖다는 뜻의 '음전하다'에서 따온 말이다. 집안 어른들과 친척들은 결혼식에서라도 만나면 꼭 음전이라고 부르곤 했다.
강나비의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서당을 운영하는 훈장님이었다. 할아버지 대에 이르러서는 규모가 줄었지만, 증조할아버지는 안동에서 아주 큰 서당을 하신 마을 최고 어른이었다고 한다. 대를 이어 훈장이었던 집의 첫째 손녀가 이름 대신 부르는 호칭조차 음전이라니. 이렇게 들으면 강나비는 어릴 때 말 그대로 몹시 음전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기 위해 서론이 길었다.
장녀이자 둘째와는 다섯 살 터울이 나는 강나비는 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온 집안의 어른들에게 받을 수 있는 사랑은 전부 독차지하며 황제처럼 자랐다. 강나비의 증조할아버지는 결혼한 손녀의 가족까지도 다 데리고 살았는데 그 손녀가 강나비의 고모가 되겠다. 고모의 딸, 그러니까 고종사촌과 놀던 강나비는 어느 날 죽은 병아리를 묻어주게 된다. 대여섯 살의 아이들이 무슨 수로 병아를 잘 묻어주었겠는가. 여섯 살의 고종사촌은 작은 모종삽으로 땅에 있는 딱딱한 흙을 뜨다 강나비의 얼굴을 같이 떠버리고 말았다.
"감히 음전이 얼굴을 저렇게 만들어! 당장 내 집에서 나가!"
피를 철철 흘리는 증손녀의 얼굴을 본 훈장님은 그 길로 손녀의 가족을 내쫓아버렸다. 강나비는 자기 얼굴에 흉터를 입힌 죄로 쫓겨나는 고모와 고모부를 지켜보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증조부가 그녀를 얼마나 금지옥엽으로 여겼는지 알 수 있는 일화다. 밤에는 증조부가 그녀를 데리고 함께 잤을 정도라고 한다. 그렇게 집안 최고 권력자의 넘치는 사랑을 받았지만, 인간이 영원히 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증조부는 고모네 가족을 쫓아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신다.
강나비의 군림은 외가에서도 이어졌다. 나이 어린 이모들과 다투어도 외할머니가 무조건 손녀인 강나비 편을 들어주었으니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를 제일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기고만장하였다. 사실 거기에는 외할머니가 후처로 들어온, 새 외할머니라는 복잡한 사정이 있었고, 강나비가 친 외손녀가 아니라서 조심스럽게 대한 것이었으나 어린아이가 알 게 무언가. 그런 어린 시절의 경험이 새겨져 평생 자기가 최고이고 대장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딸의 관점에서 해보았다.
"한 판 붙자!"
그래서일까. 그녀는 학교만 다녀오면 촌수로는 손윗사람이지만 나이는 비슷한 아재를 불러 내 치고받고 싸웠고, 한 번 지면 이길 때까지 매일매일 다시 싸웠다는 일화를 자랑스럽게 말했다. 학교 가는 길에 누가 시비를 걸었는데 고무신을 벗어서 바로 귀싸대기를 갈겼다고 이야기할 때는 그녀의 얼굴에서 뭔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강나비는 정말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누구에게도 뜻을 굽히지 않으며 컸다.
어느 방학 때는 친척 집에 놀러 가고 싶었다고 한다. 혼자 안동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까지 가야 했는데 6학년 정도 되는 나이에 혼자 기차를 타고 친척 집에 갔다 오겠다고 하면 당연히 허락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가출에 가까웠다.
"아부지 저 대구 다녀오니더!"
"가시나가 돌았나?!"
가방을 메고 소리를 지르고는 그대로 튀었다. 그렇게 친척 집에 가서 놀다가 돌아오면 당연히 혼났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가 가고 싶으면 일단 가고 보았다. 그렇게 마음대로 사는 동안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돌아가신다. 강나비의 아버지는 음주로 인한 간경화로 가끔 몸이 굳어 발작하는 일이 있었고, 그때마다 영주에 사는 고모에게 연락해 차에 태워 병원으로 갔다. 아무리 자기 남동생이라지만 아버지가 아플 때마다 매번 고모에게 연락하기에는 강나비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어느 날은 직접 택시를 불러 아버지를 뒤에서 안고 몸을 실었다. 그리고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안고 있던 몸의 숨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강나비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공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집안의 어른은 이제 없었고 모든 것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그때 나이는 고작 열아홉이었다. 딸린 동생은 다섯. 여동생 넷과 남동생 하나. 그리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엄마와 강나비 자신까지 모두 그녀의 책임이었다. 장녀에서 가장이 되자 가장 먼저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너 이렇게 공부를 잘하는데 대학도 안 가면 아까워서 어쩌냐. 학비는 내가 대주마."
"선생님, 밑으로 동생이 다섯인데 제가 어떻게 대학에 갑니까."
담임 선생님은 안타까운 마음에 제발 대학에 가라고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후로 고생길이 열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첫째 동생은 간호 학원을 보내 성인이 되기도 전에 간호조무사로 일하게 했다. 밤샘 근무에도 적은 임금을 받아 그만두고 싶지만 무서워서 말을 못 하겠다는 동생 대신 병원장과 싸우기도 한다.
"이렇게 부려 먹을 거면 돈이라도 남들 주는 만큼 줘야지. 밤새워 일하고 낮에 일하는 병원만큼도 못 받는데 어찌 다닙니까."
"미스 강은 나이팅게일 선서 안 했습니까? 환자를 생각해야지. 돈이 중요한 게 아니지요."
"원장 선생님, 미스 강이 몇 살인지는 아십니까? 이 나이에 간호학교 나와서 식구들 먹여 살리려고 일하는데 돈이 중요하지, 무슨 놈의 나이팅게일입니까. 의사들도 히포크라테스 선서 안 합니까. 그 선서에 이 어린 여자애들 등쳐 먹으라고 하던 갑지요!"
그렇게 악다구니를 쓰는 일부터 밑으로 줄줄이 달린 어린 동생들 학교 보내는 일, 소작농 관리하는 일에, 제대로 상속이 이루어지지 않은 재산 정리하는 일, 진품명품에 나올 법한 유물과 온갖 고서들이 이리저리 빼돌려지는 고난까지. 강나비가 걸어가는 길은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속으로 뻗어 있었을 게다.
음전하지도 않고, 음전할 수도 없었던 어린 시절이었기에, 음전이라는 이름은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별명으로 사그라들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던 세월 속에서도 가슴에 품은 나비 한 마리와 함께 혼자 외롭고 고달픈 시간을 견뎌 내어야 했다. 겉보기에는 아름다워도 살기 위해 쉬지 않고 날갯짓해야 했던 그녀에게는 나비라는 이름이 꽤 잘 어울린다.
하나, 그저 막막하고 바쁘게 소모해 버릴 것 같던 청춘에도 나비와 잘 어울리는 화창한 봄날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