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중매결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 시부모님은 두 분 다 50년대생으로, 집안끼리 정해주는 결혼을 하셨다. 그 시절 시골 처녀, 총각의 결혼이란 보통 어느 집 여섯째 딸이 아직 시집을 안 갔는데 참하고 손끝이 야무지니 맏며느리로 들이면 시부모 공경을 잘할 것이다, 하는 지인의 중매로 이루어지곤 했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를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 만난 날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같은 50년대생이자, 우리 시어머니보다 두세 살 많은 안동 시골 처녀 강나비는 어땠을까? 이걸 집안 어르신의 중매라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내가 착한 신랑감 찾아놨다. 나가 봐라."
증조할아버지가 이끄는 대로 밖으로 나가 보니 어떤 키가 큰 남자가 마당을 쓸고 있었다. '이 사람이 내 남편 될 사람이라고?' 강나비는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가 소개해준 남자의 얼굴을 보다 꿈에서 깼다. 당시, 강나비는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초상을 치르고 난 후 상속을 정리하던 때였다. 증조부 명의 선산 상속을 위한 서류 정리 때문에 안동에서 부산까지 가야 했다. 부산행에 몸을 싣고는 피로로 깜빡 잠이 들었단다. 스트레스로 꾼 꿈일까? 강나비는 꿈이 의식 아래로 흩어지게 두고 일단 움직였다.
새벽부터 출발해 부산으로 갔지만, 친척 집에 전화를 걸어보니 퇴근 후 저녁이 되어야 서류에 도장을 찍을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저녁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관광이나 하자.' 강나비는 용두산 공원에 올랐다. 공원을 구경하고 나오는데 어떤 남자가 말을 걸었다. 강나비의 말로는 그가 시간을 물은 것 같았다고 한다.
"아, 지금 1시 5분이요."
"...... 네?"
하와 흐의 중간쯤으로 들리는 가벼운 한숨 비슷한 웃음소리가 났다. 이상하게 손끝이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어서 저도 모르게 꼼지락거렸다. 그러니까 시간이, 뭐라고 했었지? 바람이 불었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이었다. 그런데도 어딘가 따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게 아니라, 저기, 시간 있냐고요."
강나비는 고개를 조금 더 들어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키가 컸다. 꿈속에서 마당을 쓸고 있던 남자가 이렇게 키가 컸는데. 신랑감이라던 꿈속 할아버지의 말이 떠올라서일까, 아니면 시골 남자들과는 다른 도시 남자여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로 시간이 남아돌아서일까.
"저 시간 많아요! 저녁까지 있어요!"
강나비는 이 낯선 남자를 향한 단 1할의 경계심도 없이 신나서 말했다. 심리학 수업을 수강할 때 들은 이야기인데, 첫눈에 반한 사람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한다. 첫 만남의 순간을 되새기는 말을 몇 번이고 했던 걸 보면, 강나비는 그 남자에게 첫눈에 반했던 게 틀림없다. 스스로는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저녁까지 뭐 하고 싶어요?"
"저 태종대 가보고 싶어요."
70년대에 길거리 헌팅으로 연애를 시작하는 게 흔한 일이었는지, 드문 일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강나비는 그날 그 남자와 태종대에 함께 갔다. 남자는 저녁에 강나비가 가야 하는 친척 집을 찾아서 데려다주기도 했다. 헤어질 때는 집 주소를 교환했다. 도시는 몰라도 시골에는 집마다 전화기가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간 강나비는 부산에서 구경 잘했다고, 안동으로 놀러 오라고 편지를 썼다. 그해 봄, 둘은 안동에서 만나 도산서원과 안동댐을 구경했다.
우리 엄마에 대해 내 입으로 말하자니 객관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강나비는 마을에서 예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길 가다가 헌팅까지 당한 걸 보면 도시에서도 먹히는 미모였던 모양이다. 은행 업무를 보러 간 강나비에게 반해서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따라다녔다는 농협 직원은 지금까지 우리 집에서 회자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동창들과의 에피소드도 많지만 그분들의 명예를 위해 말을 아끼도록 하겠다. 그렇게 좋다는 사람이 많았는데도 강나비는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 부산 남자와 롱디 연애를 7년이나 이어나갔다.
어디가 그렇게 좋았을까? 나는 답을 알 것 같다. 강나비는 종종 여러 불운이 겹쳐 약속에 늦었던 날의 이야기를 한다. 1시에 만나자고 전보를 쳤지만, 도착했을 때는 이미 4시를 넘긴 후였다. 미안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안고 기차에서 내렸다. 너무 늦어서 이제 없겠지? 이미 가버렸겠지? 혹시나 하고 두리번거리던 강나비의 눈에 기운 없이 어깨를 늘어뜨린 남자가 들어왔다. 안 그래도 처진 눈이 더 축 처져서 너무, 너무 착하고 안쓰러워 보였다.
"너무 오래 기다렸지요."
"왔으니까 됐어요."
남자는 강나비를 발견하고는 안도한 듯 웃었다. 부산역 시계탑. 그 공간이 통째로 마음에 들어찼다. 아마 그날이 강나비가 그 남자를 진짜 사랑하게 된 날이리라. 그렇다면 첫사랑이었다. 이 또한 인정하지 않으려 들겠지만.
"그렇게 착하던 남자가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예상하는 대로 그 남자는 우리 아빠다. 아직도 식당에서 혼자 밥을 못 먹을 정도로 소심한 내향인이 그 옛날 무슨 수로 헌팅을 시도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정말 강나비의 증조할아버지가 증손녀 사윗감으로 점찍은 다음 만나라고 등을 떠민 것인가? 지금까지도 강나비는 자기 남편이 꿈에서 소개해 준 그 신랑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니까 헌팅으로 만난 두 사람이지만 집안 어른의 중매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냐는 말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고백하자면, 나는 몰래 아빠의 결혼 전 일기장을 훔쳐본 일이 있다. 강나비의 이름이 잔뜩 쓰여 있기도 하고, 보고 싶다는 말도 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기는 '나비(실제로는 본명으로 쓰여 있었다.)를 만나야 하는데 돈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멀리 떨어진 여자 친구를 만나서 데이트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걱정인 20대의 젊은 아빠를 떠올리면 얼마나 짠한가.
항상 돈이 문제다. 그놈의 돈. 헌팅으로 만나 7년 동안 롱디 연애를 하고 나서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어도, 문제는 또 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