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결혼할 때 받은 오봉 하나

상대의 모든 것을 수용하는 사랑이란

by 김용주

동네에 <오X집>이라는 식당이 생겼다. 새로 생긴 음식점은 다 함께 방문해줘야 한다. 보쌈을 주문하니 예스러운 무늬로 가득 찬 커다란 양은 쟁반 위에 음식이 담겨 나왔다.


"이게 오봉이다."


갑자기 뭔 소리야?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내 눈빛을 읽었는지, 강나비는 다시 말했다.


"이게 오봉이라고. 내가 결혼할 때 받았다는 거."


아, 어쩐지 식당 이름이 낯설지 않더라니. 강나비는 자기가 결혼할 때 받은 건 오봉 하나가 전부였다고, 정말 수십 번을 말했다. 결혼해서 잘 살라고 하면서 시아버지가 오봉 하나를 주었단다. 정확히 뭔지는 모르고 강나비의 손 모양을 보면서 크고 둥그런 어떤 물건인가 보다 했는데, 드디어 실물을 마주했다.


이게 오봉이구나. 강나비가 자기 남편을 보고 "맨 몸으로 장가들지 않았냐"라고 하다가, "아 맨 몸이 아니라 오봉 하나 들고 장가들었지?" 하고 수정하곤 하는 그 오봉의 존재감이란.


강나비는 헌팅으로 만난 김소장과 7년 동안 롱디 연애를 이어가다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결혼했다. 여기서 김소장은 우리 아빠다. 그 시절 여자 치고는 늦은 결혼이었다. 강나비와 김소장은 주민번호 앞자리의 연도가 같다. 당연히 두 사람이 동갑내기라고 생각했는데, 김소장의 주민번호는 음력 기준이었고 그게 12월 말이다. 그러니까 실제 생일은 강나비가 태어난 다음 해 2월이라는 뜻이고, 양력 기준으로는 김소장이 한 살 연하였다.


여자 나이가 한 살 많은데도 결혼을 빨리 하지 못하고 오래 기다린 건 김소장이 둘째이기 때문이었다. 첫째보다 둘째가 먼저 장가들기는 쉽지 않을 때였다. 연애기간이 너무 길어지자 김 씨 집안의 장남도 동생 보기 미안해서인지 선을 보고 3개월 만에 결혼했고, 김소장과 강나비도 그다음 해 3월로 바로 날을 잡았다. 날을 잡고 보니 7년이나 만나도 확신이 서지 않았던지, 강나비는 궁합을 보러 다녔다.


"안돼. 둘이 너무 안 맞아."

"바로 본 거 맞니껴? 다시 잘 좀 보지요."

"안된다니까. 불과 물이야. 완전 상극이라고."


궁합은 엉망이었다. 강나비는 포기하지 않았다. 잘 본다는 곳이 있으면 찾아가서 두 사람의 사주를 내밀었다. 열심히 쏘다녀도 결과는 같았다. 하나같이 입을 모아 궁합이 안 좋다고 하자, 강나비는 오히려 오기로 불타올랐다.


'어디 내가 진짜 그렇게 안 맞나 보자. 반드시 잘 살고 만다!'


어차피 남의 말 안 듣고 자기 마음대로 할 거면서 궁합은 왜 그렇게 보러 다녔는지. 결국 강나비는 김소장과 결혼식을 올렸다. 딸의 입장에서 보면 그 궁합이란 게 영 못 믿을 것은 아닌 모양이라는 결론이 난다. 두 사람은 하나부터 아홉까지 정말 안 맞다. 그래도 열까지는 아니겠지. 하나 정도는 맞는 부분이 있겠지.


결혼을 했으니 신혼집이 필요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김소장은 결혼할 때 한 푼도 지원을 받지 못했다. 집은 남자가 해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강나비의 뒤통수가 얼얼했다. 김소장은 억울했다. 그동안 일하면서 받은 월급을 전부 자기 엄마에게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 돈을 잘 모아 결혼 자금을 만들어 두었을 거라고 생각한 김소장의 뒤통수도 반쯤 날아가고 없었다.


김소장은 삼남일녀 중 둘째로, 장남도 아니고 하나뿐인 딸도 아니며 귀여운 막내도 아닌, 전통적인 한국 가정에서 가장 관심을 받지 못하는 순서였다. 큰 아들에게는 갓 지은 따뜻한 도시락을 먹인다고 쉬는 시간에 교실 앞에서 도시락을 전해주면서도, 그 손에 둘째 아들에게 갈 도시락은 없는 어머니를 향한 애정에 늘 굶주렸다. 애정만 굶었다면 좋으련만, 밥 굶는 일도 일상이었다. 수학여행 한 번 못 간 것은 당연했다. 소풍을 가도 오십 원짜리 사이다 한 번을 안 사주더란다. 대학은 형만 갈 수 있었다. 김소장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일을 시작해야 했다.


이쯤에서 앞서 말했던 김소장의 일기장이 떠오른다. 나비 만나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썼던 그 짠한 일기장. 그래서 돈이 없었구나. 잠깐 눈물을 좀 닦겠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다 맡겼는데 막상 결혼할 때 받은 게 하나도 없으니......, 정정한다. 결혼할 때 오봉 하나를 받았으니, 아내에게 면도 안 서고 배신감이 들기도 해서 끙끙 앓던 김소장은 결국 폭발했다. 당시 부산에 구한 신혼집은 보증금 백만 원에 월세가 삼만 원이었다. 김소장은 엄마, 그러니까 내 할머니에게 달려가 아들이 장가드는데 집은 못해줄 망정 월세 보증금 할 백만 원도 안 주느냐고 들이받았다.


소란이 일자, 할머니는 패물을 팔아 마련한 오십만 원에 이웃 사람들에게 빌린 오십만 원을 들고 아들의 신혼집을 찾아왔다. 순순히 돈을 주었을 리가 있나. 당연히 엎드려 앉아 장판을 내리치며 "내 아들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나"하고 며느리를 잡았다.


돈을 요구한 적도, 남편 옆구리를 찌른 적도 없었던 강나비는 황당했지만 일단 잘못했다고 빌었다. 시어머니가 빌려왔다는 오십만 원은 그 자리에서 돌려보내고 나머지는 금 열 돈을 사서 돌려주었다. 당시 금 시세는 한 돈에 오만 원이었다고 한다. 결혼할 때 받은 지원이라고는 그렇게 오봉 하나만 남았다.


그렇다면 이 결혼은 오로지 강나비의 희생 위에서만 꽃 피었는가 하면, 그것은 또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주야, 니 어렸을 때 '빅X이' 많이 먹었던 거 기억 안 나나."

"어릴 때? 몇 살 때?"

"한 두세 살쯤 됐을 걸. 이모들이 월급날 되면 너 맛있는 거 사준다고 'X파이'를 박스로 사 와서 먹이잖다. 아기가 잘 먹는다고 깔깔거리면서."

"그 어린 아기한테 '빅파X' 같은 걸 먹이니까 살이 쪘지!"


아주 어릴 때 이야기를 나누면 배경에는 꼭 이모들이 있었다. 강나비에게는 동생이 다섯 명 있었고, 대부분 학생이었다. 안동에 전부 두고 올 수 없어서 동생들 중 몇 명을 부산으로 데려왔다. 예전엔 별생각 없이 부산에서 이모들이랑 같이 살았구나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세 들어 사는 신혼집에 처체들을 데리고 살았던 김소장도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해야만 오봉 하나를 든 맨 몸도, 딸려 온 처가식구도 모두 품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조건이 마음에 걸려서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떠나보내기도 하고, 그런 결정을 불특정 다수의 댓글로 응원받기도 하는 요즘 세태와 달랐던 것만은 확실하다. 완벽한 사람을 원해서는 안된다거나,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받아들여야 한다거나 하는 구태의연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강나비와 김소장은 상대를 위한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과 같이 받아들여, 결국 지극한 사랑을 완성했노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 이제 두 사람이 첫날밤에 나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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