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난 그대 꿈을 이뤄주고 싶은, 행운의 나비

안동여자와 부산남자가 인천으로 간 사연

by 김용주

첫날밤에 신랑, 혹은 신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하는가?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결혼식을 지방에서 치르면서 그날 저녁 몰디브로 떠나는 비행기표를 끊어놓은 어리석음에 통탄하며 인천공항으로 가는 내내 가슴이 바짝 타들어가던 기억만 남아 있다. 아무 죄도 없는 새신랑을 맹렬하게 구박하면서.


첫날밤의 기억은 무슨, 비행기 안에서 피곤에 찌들어 잠만 잤겠지.


"당신은 꿈이 뭐라."


나와 달리 강나비는 첫날밤에 남편의 꿈이 뭔지 물었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식의 꿈도 아닌 남편의 꿈같은 건 전혀 궁금하지 않을 테니, 그때 묻는 게 맞았다.


김소장은 꿈을 묻는 아내의 말에, 만화방 주인이 되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지독하게 돈이 없어서 십원 짜리 만화책 한 권을 못 빌려 봤다고. 만화를 좋아했고, 만화 그리기도 좋아했던 그는 만화에 한이 맺혀 있었다.


"그까짓 거 남편 꿈이라는데 내가 못 이뤄주겠나."


강나비는 친정 엄마에게 받은 돈으로 김소장을 위한 만화방을 차려줬다. 공무원이던 김소장은 퇴근한 뒤에는 만화방에서 꿈을 펼쳤다. 출근한 낮 동안에는 강나비가 꿈의 공간을 지켰다. 그 많은 만화책이 모두 김소장의 소유였다.


만화방은 성업을 이루었다. 허니문 베이비도 생겼다. 바로 나다.


가난한 부모에게 여유가 좀 생긴 것을 알았던지, 나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오만 것을 먹고 싶어 했고, 많이 먹었고, 또 먹기 싫다고 했다. 입덧이 극에 달한 강나비를 졸라 김소장 월급의 반 정도는 차지했을 비싼 수박을 먹고 바로 뒤돌아서 수챗구멍에 토하도록 했다.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다. 만삭의 몸을 여성회관으로 이끌어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다. 강나비의 뱃속에서.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예정일 보다 한 달이나 일찍 나왔는데도 삼 킬로가 넘었다. 주수를 다 채워서 나왔으면 얼마나 대단한 우량아가 되었을지 두려운 일이다. 만화방에서 자란 나는 낮에는 손님들 방해 안되게 조용히 자고, 밤에는 기다렸다는 듯 빽빽 울었다.


그러니 만화방을 닫는 것은 계획에 전혀 없던 일이었다. 건물 주인이 퇴직을 하고 나서 갑자기 "이제 내가 거기서 사업을 해야겠다." 며 신혼부부에게 나가라고 통보했다. 어쩔 수 없이 급하게 만화책을 헌책방에 팔고 정리하고 나자, 김소장은 두 번째 꿈을 말했다.


"내 꿈은 소방관이었다."


대사를 문어체로 적고 있다는 오해는 말아달라. 부산 사투리 억양으로 읽으면 자연스러울 것이다.


김소장은 이직에 성공하여 꿈꾸던 소방관이 되었으나, 곧 그만두었다. 24시간 교대근무였기 때문이다. 24시간이나 집에 들어갈 수 없으니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딸과 아내가 눈에 밟히고 걱정되어 도저히 직장에 다닐 수가 없었다.


원래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해 떨어졌는데 가족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을 극도로 불안해한다. 딸에게만 그런 게 아니라 아들에게도, 처제에게도 처남에게도 공평하다. 같이 살면서 "어디냐.", "언제 오냐.", "왜 이렇게 늦냐." 해가 넘어가려고 하면 시작하는 잔소리 삼단 콤보를 안 들어 본 사람은 없다.


비록 24시간이지만, 가족과 견딜 수 없을 시간만큼 오래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사직서를 던지고 나온 김소장은 세 번째 꿈을 말했다.


"나는 사업을 하고 싶다."


이번에는 부산일보를 돌리는 신문 지국을 시작했다. 첫 달에는 돈이 잘 맞게 들어왔다. 지리멸렬하게 끌고 싶지 않아서 간략하게 말하자면, 총무가 돈을 들고 튀었다. 십 개월 만에 도저히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는 지경으로 탈탈 털렸다. 그 사이에 둘째를 임신한 강나비는 만삭의 배로 부산일보 본사를 찾아가 제발 신문 지국을 넘기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거절당했다. 그 이후로는 뭐, 온갖 고생 끝에 어찌어찌 겨우 정리하고 이제 정말로 백수가 된 김소장이 남았다.


이쯤에서 걸그룹 <소녀시대>가 부른 <소원을 말해봐>에 나오는 가사가 떠오른다.


'그래요 난 널 사랑해 언제나 믿어 꿈도 열정도 다 주고 싶어 난 그대 소원을 이뤄주고 싶은 행운의 여신'


소원은 세 가지만 빌 수 있는 것이 클리셰다. 사랑하는 사람의 꿈을 이뤄주고 싶은 행운의 나비를 만난 김소장은 세 번의 기회를 다 썼다.


"당신은 사업은 영 아니거든. 공무원이 제일 낫다."


정말 돈이 없었지만, 강나비는 김소장을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에 보냈다. 어린 자녀 둘을 둔 김소장도 사업에 대한 꿈을 접고 고분고분 학원으로 갔다. 첫 시험은 떨어졌다. 우체국이었다. 이제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시험 공고가 나오면 뭐가 됐든 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무조건 다니기로 약속했다.


그때 김소장에게 다시 한번 소방관이 될 기회가 찾아왔다. 소방공무원 시험 공고가 붙었다. 전국에서 딱 두 곳. 인천과 부산에만 지역 제한이 없었다. 부산은 이미 소방관이 되었다가 그만뒀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남은 선택지는 인천뿐. 이번에는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보였다.


김소장은 인천시 소방관이 되었고 나중에 소방파출소 소장이 된다. 물론 더 높은 직급으로 퇴직하긴 했으나 소방파출소 소장으로 있던 기간이 워낙 길고 익숙해서 아빠를 김소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게 나와 동생을 포함한 네 식구는 갑자기 인천으로 오게 되었다. 잠깐, 네 식구라니? 이모들은 어쩌고?


신혼집에서 함께 살던 이모들은 그 사이에 취직을 하고 자리를 잡아 부산을 떠나지 않았다. 함께 살던 처제들과 정이 들었을 텐데 김소장이 쓸쓸해하지 않았느냐고? 걱정 마시라. 얼마 뒤 처남이 재수학원에 다니기 위해 인천에 올라와서 함께 사니까. 외삼촌을 위해 재수학원 다니면서 공부보다는 기타 치며 여자친구들 만나는 일에 더 재능이 있었다는 말은 자세히 하지 않겠다.


강나비는 김소장과 함께 인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연고도 없는 곳에 자리 잡은 부부가 공무원 외벌이로 살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동생과 나는 아직도 자조적으로 "우리는 가난뱅이근성이 몸에 배어있다."라고 말하며 돈을 허투루 쓰는 일을 몹시 경계한다. 지금은 다들 먹고살 만한 형편인데도 그 시절 지독하게 돈을 아끼고 모았던 경험이 뼛속까지 각인되어 있다.


그 각인은 티끌 모아 동산이라도 만들기 위한 강나비의 처절한 사투 속에 새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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