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공무원 외벌이 가정의 전업주부로 사는 법

부업 챌린지와 종교를 뛰어넘은 절약의 콜라보

by 김용주

일기예보를 보지 않아도 날씨를 대략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교복 차림의 나는 비가 내리기 전부터 낮게 깔리는 공기의 무게를 느끼며 습기 가득한 냄새를 들이마시는 걸로 비를 점치곤 했다. 이제 나이가 드니 공기니 냄새니 하는 것보다 정확한 기준이 생겼다. 늘어난 무게를 이기기 힘들어하는 내 무릎이다.


"푸- 푸푸-"

"아이고, 야가 푸푸 바람 부는 거 보니까 비가 올라나보다."


할머니들은 아기가 입바람 부는 걸 보고 날씨를 예상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오래 쓰인 관절이 일기예보를 담당한다. 우리 집에서는 강나비의 오른쪽 어깨가 그 역할을 했다. "비 올라는 갑다." 중얼거리는 말과 함께 오른쪽 어깨를 주무르면 최소한 기상청보다는 높은 적중률을 보였다.


강나비의 어깨는 인천으로 온 뒤 시작한 망치질로 망가졌다.


어릴 때 살던 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동네 아줌마들과 다 같이 둘러앉아 타이어 냄새가 나는 고무 뚜껑 같은 걸 신나게 뜯던 장면이 펼쳐진다. 창문을 열어 놓아도 집 안 가득했던 고무 냄새와 사방에 널려 있던 시커먼 고무판 더미들. 고무판에 볼록 솟아 있는 모자 모양의 무언가를 쉬지 않고 뜯어서 커다란 비닐에 넣고 있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움과 함께.


"그거 내가 할 거야, 이리 내! 너는 저거 작은 거 하면 되잖아!"

"이건 손 아프고 뜯기 힘들단 말이야. 나도 줘어-"


뽁뽁 잘 뜯어지는 큰 고무 모자는 뜯기 쉬워서 나와 동생이 선호하는 판이었다. A4용지보다 더 큰 판을 다 뜯으면 오십 원인가, 육십 원 정도였다. 뜯기 힘든 가장 작은 고무를 한 판 다 뜯으면 백 원쯤 쳐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무를 열심히 뜯으면 시간당 오백 원에서 천 원 정도를 벌 수 있었기 때문에 고무판 당 단가가 그보다 비쌌을 리는 없다.


이 고무판에 대한 기억이 이토록 상세한 이유는 어린아이들이 할 수 있는 부업이 그것뿐이라서다. 나머지 부업은 어린아이가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옆에서 구경만 했다. 아직 망치질은 시작도 안 했는데 얼마나 다행인가. 부업을 하나씩 설명했다가는 이 글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강나비는 몇 푼 안 되는 돈을 벌기 위해 바지 밑단을 뜯고, 어른들이 '마이'라고 부르던 겉옷의 어깨 부분을 꿰매고, 인형 눈알을 뜯고, 다시 인형 눈알을 달고, 또 다른 인형 다리를 말고, 망치질을 했다. 집 안에는 인형에서 나왔는지 옷에서 나왔는지 모를 털과 실이 날렸다. 온갖 옷감 냄새, 털 냄새, 고무 냄새가 뒤섞인 와중에 망치로 기다란 나무판에 높이가 다른 못을 박는 소리가 일정하게 울렸다. 못이 박힌 나무판은 피아노 건반 밑에 들어가는 부속이었다. 힘든 일이라 다른 부업에 비해 단가가 좀 높았던지라 강나비는 무리해서 망치질을 했다. 야구팀의 운명을 짊어진 투수도 아니면서, 얼마 안 되는 수입에 어깨를 소모해 갔다.


특별한 자격증 없는 전업주부의 노동력은 값이 아주 쌌다. 물려받은 돈 없는 공무원 외벌이 가정의 살림을 맡은 강나비는 사는 게 팍팍한 만큼 미친 듯이 푼돈을 벌면서, 한 편으로 지독하게 아껴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고정비 지출을 제하고 나면 결국 아낄 곳이 식비밖에 없다. 아이들 옷은 당연히 주변에서 얻어 입히며 키워서 아낄 대상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어쩌다 새 옷을 사야 할 때는 최소 3년은 입을 수 있는 큰 옷을 샀다. 옷을 산 해는 크게 입고, 다음 해는 맞게 입고, 그다음 해는 딱 맞는 옷에 몸을 끼워 넣어서 입었다. 식비 얘기로 돌아오자면, 강나비의 딸은 타고난 효녀답게 정말 아무거나 잘 먹었다. 밥에 케첩만 비벼서 줘도 맛있게 잘 먹고, 밥을 우유에 말아서 김치와 먹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강나비는 딸을 선교원에 보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선교원은 교회에서 운영하던 유치원이다. 강나비는 평생 교회에 다닌 적이 없고, 양가 부모님의 제사를 절에 모시고 있다. 그런 그녀가 딸과 아들을 왜 선교원에 보냈을까? 당연히 돈 때문이다. 당시 선교원은 수업료가 무료였다. 갑자기 선교원 얘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선교원에 갈 때 싸준 도시락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선교원 도시락 통에 든 점심은 늘 밥과 김치였다. 반찬 투정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딸의 탓도 있었다. 그렇다고 매일같이 김치만 싸주지는 않았다. 어쩌다 한 번 참치를 반찬으로 보낸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그날 하원할 때 만난 원장님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고 한다.


"오늘 용주 생일이에요?"


그게 얼마나 민망하고 미안했으면 살면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이야기했을까. 예전에는 그저 웃긴 에피소드라고 생각했는데, 자식을 먹이고 입히며 키워보니 이제는 그 안에 회한이 담긴 것을 안다.


나중에야 찾아올 얼마간의 후회는 미래의 강나비에게 미뤄두고, 젊은 강나비는 일단 돈을 아끼는데 집중했다. 교육비 절약은 유치원 다니는 비용을 지출하지 않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강나비의 딸은 친구들이 모두 학원에 다니는 동안 학원을 한 군데도 다니지 않아서 "나도 학원이란 데를 한 번 다녀보자."라고 말할 정도였지만, 학원의 도움 없이도 공부를 제법 잘했다. 학원을 안 보내도 집에서 공부는 시켜야 했기에 강나비는 이웃의 아이들이 풀었던 문제집을 얻어와 지우개로 답을 다 지웠다. 연필 자국이 약간이라도 남아 있으면 답을 알 수 있으니 안 보이게 하려고 아픈 어깨로 얼마나 빡빡 지웠을지.


다행히 주로 문제집을 얻어오는 집의 아들은 공부에 별로 뜻이 없어서 초반 몇 장만 고생하면 중간부터는 지울 필요가 없었다. 그 집 부모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강나비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남이 풀다 만 문제집으로 공부한 딸의 학업 성취는 자세하게 말하면 재수 없을 테니 시도하지 않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김소장이 공무원이라 적은 월급일지언정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나왔을 테고 찢어지게 가난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게까지 돈을 아껴야 했던 건가 싶기도 하다. 그 덕분에 큰 부자는 아니어도 걱정 없이 살게 되었지만 말이다. 지금의 강나비는 더 이상 절약에 목을 매지 않는다. 큰 계기가 있긴 했지만 나름대로 잘 쓰고 산다. 그럼에도 여전히 돈을 낭비하거나 비합리적인 가격을 지불하는 일을 견디지 못하는 걸 보면, 비가 내릴 때마다 강나비의 한쪽 어깨가 가난했던 시절을 잊지 말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집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물가도 너무 오르니 요즘은 '티끌 모아 태산' 대신 '티끌 모아 티끌'이라는 말이 더 힘을 얻는다. 강나비도 티끌 모아 큰 산까지는 만들지 못했지만 작은 동산은 만들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걸려 강나비가 만들어 낸 동산까지 닿으려면 좀 더 함께 가보아야 한다. 부업을 열심히 하던 강나비의 이야기를 계속해보겠다.


티끌을 열심히 뭉쳐 한 포대 정도를 만든 강나비는 첫째 딸이 아홉 살이던 해, 오래된 단층집을 허물고 이층 집을 새로 지어 올리는 공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공사가 한창이던 어느 날, 임신테스터기에서 선명한 두 줄을 발견했다.


셋째가 찾아왔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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