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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an May 29. 2022

경남 하동 베이커리
'반달곰상회' 최성훈 대표

https://youtu.be/i7xiLlCF9Qs


오늘의 이야기는 지난 달달 하동에 이어 하동의 두 번째 스토리라고 볼 수 있겠다.

이강희 대표가 하동의 상권을 살리고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청년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자 했었다. 거기에 동의하며 함께 힘을 보태고 있는 곳. 바로 최성훈 대표가 운영하는 빵집 '반달곰상회'다.


다른 파도에 소속된 여러 가게들이 있지만 우리가 굳이 최성훈 대표를 만나고자 한 것은 그의 남다른 이력 때문이었다. 빵이라는 키워드와 연결 지었을 때 어찌 보면 독특하고,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의 이력은 도자기 공예가로서의 경력이다.  그는 말한다.


빵이나 도자기나,

다 똑같이 굽는 거잖아요?


이 한 마디에 나는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젊은 청춘에 그는 무엇을 위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고향 하동으로 돌아와 도자기와 더불어 빵을 만들고 있을까? 오늘은 하동에서 다른 파도와 함께 미래를 그리고 빵을 곁들여가는 #반달곰상회 의 최성훈 대표를 만나보도록 하자.




중학교 졸업할 때쯤 가게에 계신 부모님께 그랬죠.

"나 도자기 배워보고 싶어."

당시에 부모님이 알고 계시던 지금의 스승님과 그렇게 인연이 되어

고등학교도 가지 않고 바로 도자기를 배우러 가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중인 최성훈 대표


하동에서 자란 그가 도자기에 입문하게 된 계기도 독특하다.

어렸을 적 그의 가족은 우연히 도자기를 업으로 하던 어떤 분이 사셨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의 집에는 그래서 지금도 도자기 화덕이 있단다. 그렇게 도자기라는 것을 접하게 된 그는 중학교 시절 부모님께 도자기를 배워보고 싶다고 이야기하게 되고 부모님은 인연이 되었던 그분에게 전화를 해 자기 아들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는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은 채 도자기를 배우러 스승님을 찾아뵙게 된다.


담담히 이야기하는 최성훈 대표의 모습을 보며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역시도 중학교 시절 쓰고 있던 글이 잘되어 고등학교를 가지 않고 글을 쓰겠다고 아버지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마 종종 내가 글을 쓸 때 썼던 말이다.) 그때에 아버지는 나와 지혜롭게도 이메일로 다툼(?)을 주고받았고 나는 결국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말씀으로는 그때가 자신의 결정이 가장 후회된다고 하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 그때부터 지금의 나이까지 계속해서 글을 썼다면 웹 소설 분야에서 나도 나름은 어느 정도의 탑을 쌓아 올리지 않았을까.


어찌 되었건 중학생의 자녀가 하고 싶다는 일에 대해서 결국 그 길을 응원하고 도왔던 최성훈 대표의 부모님에게 존경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무엇보다 최성훈 대표는 그 과정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워 나갔다. 요즘 학교를 자퇴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특별하지 않은 교과 과정이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삶을 키워낼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걸까? 물론 고생하시는 모든 학생들의 스승님들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분들을 존경하고 나의 학창 시절 스승님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다만 너무 많은 학교와 그에 비해 너무 똑같은 교육 과정은 이제는 조금 바뀔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 그저 수치적으로 점차 드러나는 것 같아 생각이 많아질 뿐.


어찌 되었던 그렇게 도자기에 입문하게 된 그는 성인이 되고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그곳에서 어떻게든 도자기라는 자기의 기술로 성장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어디 쉬우랴, 그 역시도 방황이라는 것을 겪는다.




원하는 대로 뭔가가 나오지 않았어요.

창작이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막힌 것 같은 느낌.

그때 스승님은 그냥 해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냥 만들어 보라고.

제 마음은 아니었거든요. 저는 진짜 이 도자기에 진심이었거든요.

그 마음을 전하니 스승님이 한 마디 하셨어요.

"그럼 됐다."

그 한 마디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반달곰상회 현판


누구나 그렇듯 성장하기 전에는 방황과 고뇌의 시간이 존재한다. 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배움의 자리에서 떠나 서울에 올라와서 어떻게든 자기의 작품으로 세상에 나아갈 때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스승님과 통화해 봐도 스승님은 그저 '무엇이든 만들어만 보아라'라고 답할 뿐 명쾌한 어떤 해답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여전히 동일한 답을 말씀하시는 스승님에게 답답함을 느꼈던 그는 그의 진실한 마음을 전했다.


"도자기에 있어서는 진심입니다. 저는 이걸 계속 업으로 해 나갈 거예요."


"그럼 됐다."


스승님의 한 마디를 듣고 당시에는 그렇게 큰 깨달음이 다가오진 않았지만 "그럼 됐다"라는 말을 계속 곱씹어 보자 무언가 알 것만 같았다. 스승님은 그의 마음에 각오, 다짐을 단단히 다지기를 원하시지 않았을까. 어쩌면 도자기는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회피하는 길이다. 그의 스승이 만난 사람들 중에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은 앞을 포기하고 멈추고 돌아섰을 것이다. 그의 스승 역시 잘못된 도자기는 구워가는 과정에서 미리 깨어버리듯 그 역시 이 길을 계속해서 가지 못한다면 미리 멈춰 서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그런 그에게서 들은 굳은 다짐은 최성훈 대표 스스로의 마음에도 앞으로의 길에 단단한 마음을 지니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며 뿐만 아니라 그의 스승에게도 뭉클한 순간이 되지 않았을까.


그랬던 그가 갑자기 왜?

빵집을 열었을까?




하동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친구와 마음이 맞았죠.

글쎄요, 뭐 꼬임에 넘어간 쪽이 더 맞긴 한데...

하동을 살리고 커뮤니티를 만들고

제가 취미로 좋아하던 베이킹을 연장해서 빵집으로 함께 하면 어떻냐는 제의에

동의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소금빵에 오일을 바르는 중


하동에서 달달 하동을 창업하고 하동의 소멸에 대해 고민하던 친구 이강희 대표의 권유로 그는 빵집을 창업하게 되었다. 사실은 꼬임에 넘어간 거라고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와 이강희 대표와의 관계는 꽤 두터워 보였다. 고향이 사라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참 슬픈 일이기 때문에 하동을 위해서 뭉친 그들은 각자의 사업지 이외에도 다른 파도의 일원으로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빵을 굽는 것이나 도자기를 굽는 것이나 유사한 점이 참 많다고 이야기한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도자기도 흙을 치대서 모양을 빗고 돌려서 성형을 하고 화덕에 넣어 구워낸다. 구워 내고 나서도 식히는 과정을 통해서 모양을 잡고 2차, 3차 작업을 거쳐 작품을 만들어 낸다. 기다리고 노력을 더하는 과정은 빵도 같다. 정말 놀랍게도 같은 과정이다. 그가 베이킹에 취미를 붙인 이유도 어쩌면 그의 말처럼 도자기 덕분에 더 진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가 도자기를 멈춘 것은 아니다.

도자기 만드는 일들도 계속해 가면서 빵집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서두에 이야기했듯 하동의 집에는 화덕이 있기 때문에 집에서도 작업이 가능하다. 굽고 만드는 일을 계속해서 해 나가는 것. 참 매력적이다.




가끔은 사람들이 물어봐요.

학교 안 가고 나서 살아보니 어떻냐고.

글쎄요.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기에 자기가 살아가고 싶은 대로 살아도 나쁘지 않아요.

내가 나를 잃지 않는 선에서 살아간다면

저는 정말 괜찮은 것 같아요.

아침에 갓 만들어진 빵들


중졸 출신

대학교도 가지 않고 도자기를 만들며 살아감

서울 생활을 접고 하동으로 내려와 창업


이런 타이틀들 때문일까?

그에게 종종 위와 같은 질문들이 들어오는 모양이다.


대학교를 가지 않고 살아가는 건 어떤가요?

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지금의 삶에 대해서요?


이런 질문 앞에서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다.


"나쁘지 않아, 괜찮아."


달달 하동의 이강희 대표 역시 같은 뉘앙스의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잘 사는 삶'의 틀을 교육받아왔다. 정직하고 신뢰받는 삶은 이런 것이라는 듯이 세상이 떠들어 댔다. 어느 정도의 부와 어느 정도의 삶이 주변에서 인정받는 삶인지 각인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다 알고 있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모두 그런 삶을 부정하고 있다. 틀에서 벗어나야 넓은 세상이 보이고 그 과정의 두려움을 이겨낸다면 우리는 더 큰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최성훈 대표가 이야기 한 부분도 일맥상통이다. 그와 하동에서 느낀 자유와 편안함은 서울과 또 다른 활기와 생동감을 주었다. 틀린 삶이 아니다. 그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도자기의 공예를 이어가면서도 빵집까지.

그는 반달곰상회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의 할 일을 명확히 알고 있다. 자신은 결국 도자기를 구워 공예를 이어가며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살 것이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말이다. 그렇기에 이 '반달곰상회'는 때가 됐을 때 또 다른 누군가가 그의 철학을 이어가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가게가 곧 자신이 되지 않기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다.


나는 그를 응원하고 반달곰상회를, 그리고 하동의 아름다운 청년들을 응원한다.


반달곰상회의 이강희 대표님

그 앞길에도 오늘의 열정이 밑거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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