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6번에게 보내는 위로

by 소피아
성심수녀회에서 하는 에니어그램 워크숍을 다녀왔다.

에니어그램을 접한지는 15년이 훌쩍 넘는 것 같다. 이전 회사 워크숍 때 처음 접하고는, 다른 심리유형과는 다르게 내 근본에 놓여 있는 질문들에 답을 해준다는 느낌을 받아서 꾸준히 공부도 하던 차였다. 우연히 프로그램이 있는지 알게 되었고, 갑자기 결정해서 접수하고, 번개같이 주말에 다녀왔다.


6번인 나: 책임감 쩌는 K장녀

3번, 7번인 줄 알았다가 현재스코어, 가장 나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유형 6번이다.

6번 유형은 충실한 사람으로 불린다. 충실하고 안전을 추구하는 유형으로 책임감 있고 의심과 불안이 많고 사람들에게 호감을 준다.(에니어그램의 지혜, 돈 리처드 리소 지음)

나는 기본적으로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근심, 어떤 일이 잘못될까 걱정한다. 그 불안을 잠재우고자 권위 있는 것에 기대고 충성한다. 또한 내가 맡겨진 역할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책임감을 갖고 임한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에니어그램 유형은 단순한 몇 줄로 쓰인 묘사로는 잘못 선택할 가능성이 많다. 1번부터 9번까지의 유형 중에, 어느 페이지를 골라 읽어도 나 같은 모습은 늘 발견하기 때문이다. 6번에는 인접한 번호로 5번과 7번 날개(부수적인 유형)를 사용할 수 있고, 발전을 하면 9번 방향으로 후퇴를 하면 3번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나만해도, 6,5,7,3,9의 5가지 유형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게다가 2,6,7형은 같은 행동양식을 보여주는 의존형이기 때문에 겉모습만으로는 서로 비슷하다.

나도 처음에는 3번유형인 줄 알고 3번그룹에 끼여있다가, 거기에 있는 진짜 3번분들이 '선생님은 여기가 아니신 것 같아요'해서 쫓겨난 적이 있다.


때문에, 에니어그램의 정확한 유형은 설문지로 측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나를 관통하는 질문이 무엇인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내가 정말로 피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전문가와 밀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하지만, 정말로 나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유형을 만나게 되면, 그동안 내가 풀지 못했던, 나를 설명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한 번에 풀리는 느낌이다. '아, 그래서 내가 이때 힘들었구나', '아, 나는 이런 사람이어서 이런 실수를 반복하는구나'

나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에니어그램 유형은 절대로 기쁘지 않고, 많이 아프다. 그동안 내가 은연중에 꼭꼭 숨기려 했던 내 벗은 모습을 들여다보는 아픔이 있다. 하지만, 한 번 인식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될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다른 심리유형 분석과는 다른 점인 것 같다.


에니어그램이 보여준 나의 현재 모습은 이렇다.

우리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 가정 내에 생긴 문제를 진화하는 해결사, 그리고도 혼자서 고군분투하다가 기진맥진해 쓰러져 있는 패잔병이다. 그렇게 쓰러져 있으면서도 걱정에 또 몸부림친다. '앞으로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되나?'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좋지도 않지만 그렇게 절망스러운 상황도 아니다. 하지만 이미 쓰러져 있는 채로 걱정에 또 짓눌려 아무 힘 없이 그냥 흐느끼고만 있다.


에니어그램은 내 어릴 적 상처 받은 아이의 모습도 보여준다.

집은 부도가 났고, 우리 가족은 하루아침에 아파트에서 건물 옥상에 있는 단칸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 뒤로도 방 하나짜리 살림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고, 엄마는 빚쟁이를 피해 도망간 아빠를 대신해 힘든 가장 노릇을 평생 하셔야 했다. 장녀인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없는 집에서 엄마가 해 놓은 반찬에 밥을 해서 동생들을 챙겼다.

어느 겨울날 밤이다. 밖은 이미 어두운 지가 한참 되는데, 집에 어른은 아무도 없다. 방 한쪽에서 동생들은 벌써 잠에 곯아떨어졌지만, 나는 누구가 깨어있으라고 이야기한 적 없지만 혼자서 엄마를 기다린다. 그때는 집에 전화도 없었고, 연락할 길도 없다. 그저 기다리는 길 밖에는.

'혹시 교통사고라도 난 건 아닐까?', '엄마가 죽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나만의 징크스 같은 의식이 있었다.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를 걱정하면, 그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내가 만들어낸 미신이었다.

동생들은 있었지만 내게는 비어있는 것 같았던, 그 어두운 방에서 혼자 웅크려 울고 있는 10살짜리 아이. 그게 나였다.


에니어그램은 내게 최고의 위로도 건네주었다.

나를 돌아보고,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을 더 깊게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고 울림이 크게 남아있는 시간은, 나를 치유하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때였다.

먼저 '나의 일상을 지배해온 메시지'를 쓰고, 다른 한쪽에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를 적어 본 이후에 서로 짝을 지워서 상대방이 내 메시지를 읽어주는 것이다.

'가정을 잘 지켜내야 한다 '는 나를 지배해온 메시지에 짝을 지워서,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를 들려주었다.

'내가 참고 이겨내야 우리 가정이 행복해질 수 있어'에는 '너 자신을 돌보아야 가정도 행복해질 수 있어'로

'예측할 수 없다면 무서워'에는 '하느님의 뜻대로 잘 이루어질 거야'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내 짝인 수녀님이 나를 위로해주는 메시지를 나지막하지만 또박또박 읽어주었을 때, 몸 안에서 나를 흔드는 울음에 어린아이처럼 수녀님 무릎 위에 엎드려서 엉엉 울었다. 수녀님의 따뜻한 손은 나를 쓰다듬어주었고, 나는 내 안에 웅크리고 상처 받은 어린 나를 안아주며 마음껏 불쌍하다 슬퍼해 주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내가 안아주었던 어린 나를 과거에 놓아주고 올 수 있었다.

오늘 지쳐있는 나는 수녀님이 하느님을 통해서 안아주고 위로해주셨다.


오늘을 과거와 연결시키지 않고, 오늘에 두자.
내일 걱정을 오늘 하지 않고, 오늘을 살자.

내가 현재 상황에 가장 불안했던 점은,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아마도 어렸을 때의 내 모습이 내 아이들을 통해서 재연될까 봐, 그게 가장 무서웠던 것 같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미래의 걱정을 오늘 당겨서 무서워하느라,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할 행복을 담보 잡고 있었다.

나는 나 혼자 우리 가족을 책임지고 걱정하느라 힘들고 억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나까지 포함한 우리 가족을 정말로 책임지고 걱정하는 이는 하느님이셨다. 진정한 우리 집의 가장을 놔두고 내가 가장입네. 엄살을 떨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 잠들었던 내 동생들처럼, 나도 우리를 모두 책임져달라고 하느님께 맡기려고 한다.

내 울음과 함께 씻겨 내려간 내 어깨의 짐들 대신에, 오늘을 재미있게 의미 있게 채우는 수만 가지 방법을 하나씩 해 보아야겠다.


태산같이 지고이고 다녔던 짐을 하느님이 벗겨주시면서, 내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곁에 있다'(이사야 41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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