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이 몸은 애타게 당신을 찾습니다'(시 42:1)
ㅣ 내가 하느님께 말을 건넨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일들을 바란다. 감사함이 밀려올 때는 마음이 반짝반짝한다. 고민을 털어놓는다. 내가 겪는 고통이 불공평하다고 불평한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폭풍처럼 나를 감쌀 때는 울부짖고 몸부림친다. 기도하는 내용은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절실히 말을 건네고 싶을 때 하느님을 찾는다는 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갈망한다. 갈망하는 것이 돈, 음식, 권력, 건강일 수 있다.
하지만 돈은 많지만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 권력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의 권력을 모두 가진 사람이 정말로 아무것도 부러운 것이 없을까?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유,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이유를 알며, 바닥에 쓰러져 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힘을 모두 갖고 있지는 않다.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고, 남들에게 특별히 해되지 않게 나름 성실히 살고 있는 사람도 문득문득 '비어있음'을 느낀다. 나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충족되지 않는 그 '비어있음'이 신의 존재를 증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목마르면 시냇물을 찾듯이, 내게 부족한 것이 있어서 찾는 대상이 하느님이다. 감사하고, 간구하고, 애원하고, 탄식하고, 부르짖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하느님을 찾는다.
그럴 때, 나는 하느님에게 말을 건넨다. '따르릉, 여보세요'
'나의 주여, 일어나소서. 어찌하여 잠들어 계십니까?'(시 44:23)
ㅣ 나는 하느님의 말을 듣지 못한다고 불평한다.
그렇게 많은 말을 쏟아내었건만, 하느님이 듣기는 하셨는지, 어떻게 이루어주시는지 막막하다. 내가 간구한 대로 이루어지면 '아, 이게 응답이구나'짐작하지만, 열심히 원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원망과 함께 '그럼, 어쩌라는 거지?'라는 의문이 든다. 속 시원하게 자초지종을 들으면 좋겠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하느님의 뜻은 어디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교회에서 배운 침묵기도를 해 보았다. 20분 동안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냥 지켜보면서, 분심이 나면 조용히 하느님께 다시 집중하기를 반복한다. 마음이 그 어느 시장통보다도 시끄럽다.
'기도를 잘해야 되는데,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기도를 하지 않고 기도를 할 궁리를 하고 있구나.
'글을 뭐로 쓰지? 이 정도면 매력 있는 글감일까? 조회수가 많이 나오면 좋겠어' 글쓰기에 욕심을 부리고 있구나.
'점심 메뉴를 뭘로 한다. 대충 먹을까?'조금만 방심하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정말로 하느님에게 집중하기란 힘들구나.
집중할 때는 호흡을 들이마시면서, '하느님이 내 안에 함께 계시는구나.' 생각한다. 내쉴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마음으로 '내가 여기 있습니다'생각한다. 그럴 때는 마음이 편안해지면서도 콩콩거린다.
마음이 이렇게 일초도 조용하지 못하니, 하느님이 내게 말을 건네신다 해도 알아들을 수가 없겠다 생각이 든다. 어떤 감정이 강력할수록 마음은 더 시끄럽다. 누구를 미워할수록, 세상 일이 번잡할수록, 하느님이 내 바로 옆에서 소리치셔도 나는 듣지 못한다.
하느님이 푸념하시는 듯하다. '소피아야, 나 지금 누구랑 말하니?'
생각해보니 이런 상황이다. 나는 내 할 말만 다다다 하고 전화를 끊는다. '이상이에요 끝. 뚝. 뚜뚜뚜'
'불길이 지나간 다음, 조용하고 여린 소리가 들려왔다'(열상 19:12)
ㅣ 하느님은 내게 여러 방식으로 말을 건네신다.
침묵기도가 끝나도 아무 응답이 들리지는 않는다. 다만, 마음이 좀 평안해지고 조급해지지 않아진다. '하느님의 소리는 이렇게 조용하고 여린데, 내가 그것을 들으려면 내 마음이 같이 조용해져야 하겠구나'를 느낀다. 지금 당장 답을 안 들어도 된다. 하느님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주시겠지.
정말 힘들다고 푸념했는데, 주위 사람들이 내게 뜻하지 않은 위로를 건네는 경우가 있다. '아, 하나님이 이 사람을 통해서 내게 위로하시는구나'
마음에 어떤 생각이 혼자 들었다가는 잊어버렸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이 같은 말을 내게 하는 경우가 있다. '아, 하나님이 그게 맞다고 이야기하시나 보다'
아직도 내 생각이 하느님의 응답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저 이러저러한 길을 통해 하느님이 내게 건네는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그리고, 집중하게 된다. 아마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면 이루어지지 않겠지. 그럼, 또 나는 하느님께 묻고 대답을 기다리겠지.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 옆에서 말은 건네고 계시는지도(기도: 존 프리처드, 출판사 비아)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느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시 57:1)
ㅣ 나의 기도는 언제나 부족하다. 내가 부족한 만큼 한없이.
원하기만 하고,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피하고만 있다. 나는 하느님께 나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면서, 정작 나는 하느님의 말을 들을 용기가 없다니.
나의 이 찔리는 마음도, 하느님 소리를 들을 용기도, 나의 나약함도 다 기도가 되겠지.
내 비워진 마음에 오직 한 마디만 채워지기를 바란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