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넘어졌고 거기가 교회였다

by 소피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4년 전 겨울, 생전 처음으로 최선은커녕, 차선도, 차악도 생각나지 않는, 최악만이 존재하는 상황을 만났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이 고통에 겨워 소리 지르고 있는데, 나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보다 그 사실이 더 힘들었다. 손도 발도 묶인 채 지켜만 봐야 한다는 사실이. 혼자서 시도할 수 있는 일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교회를 찾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모래만 한 것도 할 수가 없어서, 기도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지금은 안다. 기도가 누군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때 내게 기도는 별 희망 없어 보이는 그러나 마지막 카드였다.

어느 날 그래도 안면이 있는 교회를 내 발로 찾아갔다.

나는 절망 속에 쓰러졌고, 마침 쓰러진 곳이 교회였다.


12월 25일 일요일이었고, 가보니 성탄절이었다.

떠들썩한 교회 분위기와 평소보다 많은 인파는, 내가 쭈뼛거리고 누구를 찾아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상상했던 상황과는 많이 달랐다. 긴장을 하며 들어갔다가 의아해졌다. '아, 오늘이 성탄절이구나' 교회에서 가장 기쁜 날, 나는 가장 절망적인 상태로 여기를 찾아왔으니 아이러니하다 싶었다. 집 근처에 대형교회가 두 개가 붙어 있었지만, 그나마 강의를 들으러 몇 번 들렀던 작은 교회를 찾았었는데, '성공회'가 어떤 교회인지는 나중에 알았다. 내가 찾아간 교회가 대형교회이거나, 나를 지나치게 환영해주는 분위기였다면 아마도 나는 교회를 계속 다니지 않았을 거다. 그 날 그 교회는 참담한 내가 숨어 들어가기 알맞게 소란스럽고, 적당히 내게 무심해 주었다.

나는 기도 하나만을 위해 교회를 찾아갔고, 마침 간 날이 성탄절이었다.

역시, 생전 처음으로 사력을 다해 기도했다. 아이가 아팠으므로, 좋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아는 인맥과 정보력으로 병원을 수소문했고 나름의 판단으로 좋아 보이는 의사 선생님께 예약을 했지만, 내가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도는 왜 하는 걸까?' '하느님이 들어주지 않으신다면 내가 하는 이 외침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하는 분노가 밀려왔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절망도 더 어두워질 수는 있음을 알았다. 한편으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기도가 다 이루어진다면, 그건 또 좋은 일인가?' 하는 질문도 들었다.


이제는 구체적인 기도를 하려다가도 멈칫했다. '이번에도 안 들어주시면 어쩌나?, 나는 그때의 좌절을 또 어떻게 견딜 것인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쳤는지, 왜 나를 구해주지 않는 것인지?' 원망으로 하느님에게 욕도 하고 울부짖기도 했다. 울다 지친 후에 기도는 이랬다. '당신이 이 아이를 맡아주십시오. 저는 이제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알아서 해 주십시오.'


2년 후쯤 알았다. 기도가 이루어졌음을.

나는 좌회전해서 직진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사실은 우회전하고 유턴해서 가야 하는 길이었다. 그 당시에는 내 나름대로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바랐지만, 그 길 바로 앞에는 웅덩이도 있었고 돌밭도 있었는 줄 나는 몰랐었다. 깜깜한 밤에 좁은 산길을, 용케도 벼랑 끝까지 갔다가 방향을 돌리고, 한 발만 더 내디면 떨어지는데 그것도 모르고 용케용케 빠져나왔다. 감은 눈을 뜨고 돌아보니, 지뢰만 간신히 피해 걸은 내 발자국에 화들짝 놀라서 주저앉았다. 내 손을 누가 이끌었을까?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향해 피상적으로 바라는 것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실로 바라는 것에 응답해 주십니다.('기도' 존 프리처드 지음, 출판사 비아)

내 기도에 응답을 안 해주신다고 울고불고했지만, 하느님은 내가 원하는 것 그 이상으로 채워주시고도 남게 해 주셨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최상의 지름길로, 내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선(善)으로.

오늘 나는 기도를 한다. 당신의 뜻을 알게 해 달라고. 이제 내 뜻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인간의 한계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언제나 하느님의 뜻이 더 크고 완벽함을, 당신의 방식대로 차고 넘치게 내 기도를 들어주심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때로 홀딱 다 잊어버리고 하느님께 원망한다. 그럼, 또 그분은 다른 쪽에 더 좋은 문을 열어두신다. 그럼, 또 나는 이럴 줄 미리 알았더라면 원망하지 않았을 텐데 볼멘 불평을 늘어놓는다.

아직도 기도는 힘들고 때로는 지루하고 갸우뚱한다. 아마도 계속 이렇게 오락가락할 것 같다. 해야 할 것 같아 기도하지만, 잘 되고 있는 것인지, 왜 응답은 속시원하게 들리지 않는 것인지 또 들썩거릴때가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은,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나 혼자 있는 것 같을때, 지금은 해야 할 일을 알기 때문에 예전처럼 절망스럽지 않다. 든든하고 세상 확실한 빽이 생긴 듯한 느낌이다. 하느님께 물어보고 하느님과 상의하면 되니까.

가장 큰 절망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

4년 전에 쓰러지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교훈이다.

기도.


앞으로도 신앙 사춘기시절을 겪으면서 생긴 나의 질문과 이걸 찾아가는 과정을 같이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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