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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Mar 21. 2021

정말 존버가 답일까?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브레이브 걸스'가 나왔다.

누구인지 몰라서, 그제서야 알아보니 4년 만에 역주행한 걸그룹이라고 한다.  묻힐뻔한 그룹이 희망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시기에 다시 부활한 감동을, 사람들은 존버한 승리라고 환호하는 것 같다.

훈훈한 미담이지만 이게 정말 맞는 걸까 괜한 의심이 들었다.

인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일들은 존버하면 되는 건지? 존버하지 못하면 나쁜 건지?


힘든 순간 버텨야 할 때가 있다.

인생에서 큰 산 하나를 넘었고, 지금도 수많은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나고 나서 알게  사실은, 끝이 없을 것 같이 보였던 어둠도 끝은 있고, 빛이 보이는 순간은 내가 기대하지 못했던 때에 번개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때로는 아무 해결책이 없어 보이는 시간을 그저 버티는 것, 그저 살아내는 것이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힘들지만, 가장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인생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힘든 시기에 얻은 버릇이 하나 있다. 운전을 하면서, '나는 오늘 죽을지도 몰라. 내가 운전을 잘하고 가다가도 미친 운전자가 나타나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끔찍한 상상이 오히려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준다. 가족을 더 사랑하게 되고,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 떠오른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근심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고, '근심하는 시간에 좀 더 행복해지자'라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런 때 존버는 맞는 방식인 것 같다. '정말로 이 시기를 버티면 좋은 날이 오나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질문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거다. 오늘까지 아무 걱정이 없는 것 같던 사람도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오늘까지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사람에게 갑자기 좋은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버텨보자. 아직 인생을 다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인생은 +, - 가 서로 오락가락하면서 결국은 그렇게 나쁘지만도 그렇게 행복하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걸 생각한다면 지금 너무 힘들 때 이제 올라갈 일이 있구나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말하는 '버틴다'는 '살아낸다'는 뜻이다.

브레이브 걸스의 경우처럼, 존버했더니 가수로서 역주행하는 날을 맞을 수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 살아낸다는 것에는 꼭 지금 하려 하는 일만을 계속한다던지,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는 조건만 있지는 않다. 브레이브 걸스에서, 더 이상 가수로서는 길이 없을 것 같아 취직을 준비하던 멤버도 있었다. 그녀가 가수를 포기하고 취직을 해서 나름대로의 생을 잘 살아갔다면 그건 실패한 삶이었을까?

내가 응원하는 존버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꼭 하고 싶은 일들은 도전해보되, 그게 잘 되지 않더라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조건들은 모두 소수에게만 허락된 듯하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좋은 직장 들어가기, 높은 연봉받기. 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몇 년을 준비하고 도전하지만, 한정된 숫자에는 언제나 실패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들이 오랜 시간을 도전했지만 결국은 되지 않았을 때, 그들에게 '그래도 존버해봐'라고 말할 수 있을지? 내가 말하는 '버틴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아무도 무엇이 잘 살아낸 삶인지 함부로 정의하지 못한다.

잘 살아낸 삶은 잘 버틴 삶이다. 어떤 누구도 순풍에 돛 단 듯이 인생을 유유자적하지만은 못한다. 거센 바람에 내가 지는 듯이 보여도, 배 위에 그저 누워서라도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때도 있다. 그 태풍이 지나고 나서 항로가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정말로 가는 곳이 어디인지 늘 고민하고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 '존버하자', 단, 각자의 삶 안에서 버틸 수 있도록 역시 존중하자.

각 개인에게 혼자서 버텨보라고 던져놓는 사회도 책임이 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에 도전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안전망을 사회가 준비해 줘야 하는데, 사회는 그건 네가 버텨야 하는 거야. 왜 좀 더 버티지 못해 라고 개인의 책임으로 모는 것 같다. 최소한 굶지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도전할 수 있는 여러 꿈들이 존재해야되는 것 아닐까?


버티되, 그 길이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버텨나가면 된다.

인생은 한 가지 정해진 길만이 아니고, 여러 모습, 여러 갈래 길들이 있다. 이 길이 아니면 돌아서 가면 되고 내가 샛길이라고 생각한 길이 나중에 돌아보면 가장 빠른 지름길였을 수도 있다.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오늘 하루하루 살아가다보면, 어느 새 뒤돌아보았을 때 '아, 저 곳에서 나는 잘 버텼었구나. 그래서 오늘 여기에 잘 있구나'생각하게 될 거다.


오늘을 버티는 많은 사람들, '잘 하고 있어요. 조금만 지나면 힘들게 버티지 않고 걸어나갈 수 있는 날이 올겁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제가 그랬으니까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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