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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Apr 02. 2021

해리포터를 다시 읽다: 마법사의 돌

책장을 정리하다 말고는, 해피포터를 정주행 중이다.

네 번 정도를 완독했지만, 여전히 계속 읽고 싶은 책이다. 이게 벌써 나온 지 20년도 더 지났다니. 책이 먹은 나이와 평행되게 내가 지나온 세월도 같이 되돌아보게 된다.


처음에 해리포터를 읽었을 때는, 앞에서 어디선가 읽었던 플롯이 나중에 복선으로 드러나는 부분에서 전율을 느꼈었다. 이번에 읽으면서는 책 곳곳에 숨어있는 그런 복선들을 정리하면서 읽어보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업이다. 한눈에 보이게 정리하는 것. 아마도 지구 상에 해리포터 덕후 중에 누군가는 나와 똑같은 짓을 이미 해 놓았겠지 생각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부분이 눈에 띄었다.

네빌은 처음부터 자신이 갖고 있는 용기로 맞서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스네이프를 첫 편부터 독자들이 해리포터의 적으로 여기게끔 장치들을 마련했었구나.

수업시간에 계속 질문하며 교수님께 맞장구를 치고 있는 헤르미온느가 내 모습과 비슷하다는 점 등이다.


줄거리를 이미 아는 채로(물론 전혀 새롭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 해리의 지팡이와 볼트모트의 지팡이가 형제라는 사실이 1편에 이미 나온다는 걸 이번에야 깨달았다) 읽어서 인지, 예전에는 '이다음은 어떻게 돼?' 하면서 빨리빨리 읽었다면, 이번에는 줄거리 외에 문장에도 신경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해리가 마법사의 돌을 찾고 난 이후에 덤블도어와 나눈 대화이다.

"교수님? 그 돌이 사라져 버렸다 해도, 볼드...... 제 말은, 그 사람....."
"볼드모트라고 부르거라. 해리. 사물에는 항상 정확한 이름을 사용해야 한단다. 어떤 이름에 대한 공포심은 그 사물 자체에 대한 공포심을 커지게 하니까 말이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2) 193쪽


우리는 그 정체를 모르는 것들에게 막연한 공포심을 느끼곤 한다.

가끔 기분이 나쁜데 왜인지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고 그저 그런 채로 지나가는 때가 있다. 그럴 때 잠시 멈춰서 내 기분이 무엇인지 이름을 찾으려고 노력을 해본다. 공포인지, 불안인지, 미움인지, 분노인지 말이다. 그 감정에 알맞은 이름을 찾고 나면 이번에는 어떤 대상을 상대로 한 감정인지를 또 찾으려고 노력해본다. 그렇게 감정을 구체화시켜서 그 실체에 조금씩 가까워지다 보면 처음에 느꼈던 감정이 점차 옅어지는 것을 느낀다.


덤블도어가 해리에게 한 말을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네가 느끼는 감정(특별히 부정적인 감정)에게 정확한 이름을 부여해라. 그 이름이 정확하고 구체적일수록 (막연한)공포심은 줄어든다.'

사람들이 볼트모트의 이름을 부르기를 극히 무서워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더 금기시하고 꺼려하고 공포의 대상으로 더 크게 자리 잡게 만든 것 같다.

우리의 부정적인 감정도 제대로 직면해서 부르지 않는다면 이와 같이 더 큰 존재로 우리 마음에 자리 잡을 지 모른다.


오늘 아침 내가 느끼는 감정은 기대와 걱정이다.

새로운 일을 마주하고 잘 되리라는 핑크빛 기대가 한 편에 있고, '내가 잘 못해내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또 자리 잡고 있다. 아직 닥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미리 당겨서 걱정하는 버릇이 또 나온 것이다. 닥치고 나서 걱정하자.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느라 오늘을 축내지 말자.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름 지은 다음에 드는 생각이다.


이제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을 집었다. 전에 분명 읽었지만 또 새롭게 다가올 문장은 무엇일지 첫 장을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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