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야 워낙 화려하게 피니 그 존재를 모를 수 없지만, 일단 꽃이 지고 나면 잊어버린다. 대략 여기쯤에서 개나리가 피었었지, 봄에 벚꽃이 만개했었지 라는 기억을 더듬거릴 뿐이지, 낯선 장소에서 똑같은 식물을 분간하라고 하면 알 도리가 없다.
내가 분명히 아는 식물은 소나무 정도? 은행나무도 그 잎이 완전히 노랗게 변해야 알 수 있고, 단풍나무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또한 집에 들어온 식물을 죽여서 내보내는 재주를 갖고 있다.
이 집을 처음 장만하고 집들이를 온 친구가 잘 살라고 금전수라는 화분을 선물해 주었는데, 처음엔 잘 크는 것 같다가 내가 관리를 소홀히 하자 말라죽어버리고 말았다.
얼마 전 집안 정리를 시작하면서, 베란다에 쓰지 않은 물건, 말라비틀어진 화분들을 싹 다 정리하고 나니 화분을 버리는 데에도 돈과 노력이 든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집에 식물은 없다 다짐했었다.
그런 내가, 뭐에 홀린 듯 어제 라벤더 화분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 책상 위치를 창가 쪽으로 옮겨서인가 보다. 오래된 서랍장을 버리고 그 자리에 책상 하나를 들여놓았더니, 내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안방 베란다 창문 옆이 되어버렸다. 내 자리에서 보이는 가까운 풍경은 아무것도 없는 썰렁한 베란다뿐이다. 내 눈길이 미치는 곳에 초록색이 있으면 어떨까 바랐던 것 같다.
이제 개나리는 꽃이 지고 초록색 잎들이 나오고 있고, 벚꽃도 벚꽃답게 만개하자마자 그 꽃잎들을 우수수 떨어뜨리고는 떨어진 자리에 보라색 꽃뿌리를 보여주고 있다. 아직 철쭉은 봉우리인 채 언제쯤 짜잔 하고 나타날지 계산하고 있는 눈치이다. 라일락은 항상 꽃을 보아서 존재를 안다기보다는, 어디선가 라일락 꽃 냄새가 퍼지면, '아, 이 근처에 라일락이 있었나 봐'라고 알게 된다. 아직은 우리 동네에 라일락이 꽃을 피우지 않았나 보다. 아, 그리고 키 큰 나무들은 연한 초록색으로 잎을 틔우고 있다. 그 색이 너무 말랑거리면서 연하다.
아마 봄이 주는 그 색들에 취해서 나도 그 색의 한 귀퉁이라도 곁에 두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버스 네 정거장을 걸어서 라벤더 화분을 사서 안고 왔다. 식알못이 화분을 분간이나 할까.
날씨가 너무 좋아서 '걷자'하고는 화분들이 잔뜩 있는 농협을 갔다. 이름도 낯선 화분들이 잔뜩 나와있었고, 사람들은 이맘때 다 나와 같이 초록에 끌리는지, 꽤 붐비고 있었다.
처음부터 무엇을 살지 작정을 하고 간 것이 아니었어서, 선택은 더 어려웠다. 뭐라도 알아야 그중에 선택지도 있겠는데, 이건 하나같이 다 낯선 존재들이니 무슨 기준으로 뭘 골라야 할지 막막하기만 해서, 화분들 사이를 세 바퀴 정도 두서없이 돌아다녔나 보다.
너무 큰 건 자신 없어, 패스. 선인장은 뾰족해서 싫어, 패스.
꽃이 너무 활짝 피어있는 애들은, 꽃이 쉬 지면 아쉬울 것 같아서 패스.
허브 중에서 골라볼까 했는데, 바질은 원래 그런 건지 생각보다 향이 나지 않아서 패스. 나머지는 생전 처음 보는 애들이라 몰라서 패스.
그렇게 전혀 근본 없이 식물들을 평가하고 있는데, 한 귀퉁이에 '라벤더'라는 표지가 눈에 띄었다. '아, 나 라벤더는 알아. 샴푸에도 비누에도 많이 있지.' 일단 익숙한 느낌이 좋군. 꽃이 핀 화분도 있었지만 아직 잎만 나 있는 녀석들도 꽤 있었다. '좋아, 이걸 가져다가 꽃이 나는 과정을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잎을 손바닥으로 훑어보니, 손바닥에서 은은한 향이 났다. '아, 향도 같이 가져갈 수 있는 거구나.' 좋아 너로 한다.
순전히 느낌적인 느낌으로만 선택을 했지만, 일단 내게 건네지고 나니 갑자기 소중한 친구처럼 여겨졌다.
집에 와서 적당한 크기의 접시를 찾아서 받쳐놓고(찾다 보니, 딸내미 초등학교 때 만들었던 도자기 접시가 선택된 것은 안비밀), 안에 흙을 만져보니 아직 촉촉하다. 2-3일에 한 번씩 물을 주면 된다고 했으니, 오늘은 안 줘도 되겠네. 아기 시간 맞춰서 젖 먹이는 때로 돌아간 듯하다.
작은 화분 하나가 거기 있는 것뿐인데, 자꾸 시선이 그리로 향한다.
집에 온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꽃은 피었는지 물은 줘야 하는지 신경이 쓰인다.
이제 오늘 화분 하나 놓았을 뿐인데, 벌써 옆자리가 허전해 보인다.
식알못이라도 지금이라도 알아가면 되겠지, 스스로에게 용기를 준다.
누구를,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뜻인 것 같다. 이제부터 알아간다면 나도 식알못 타이틀을 뗄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최소한 식물 전체를 잘 알지는 못하더라도 내 화분 하나, 라벤더 하나만큼은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자꾸만 고개가 돌아간다. 아마 꽃을 처음 틔우게 되면 100프로 사진을 찍어대고 있을 것 같다. 식알못에서 라잘알로 거듭날 그날을 위해서.
라벤더 하나에 정성을 쏟을 준비가 끝나면, 눈에 아른거리는 환하게 피어있던 수국도 욕심내어보리라. 언제나 열 걸음씩 서둘러 보는, 내 조급함을 탓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