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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Mar 23. 2021

나는 어디서 충전받을까?

핸드폰 충전기를 강아지가 해먹어서 핸드폰을 노트북에 연결해 충전하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충전하는 속도가 너무 느리고 노트북이 자주 꺼져 있어서 노트북이 자동으로 꺼지나 보다 생각하고는 화면이 꺼져 있으면 전원을 다시 누르곤 했다.

오늘 원인을 알았다. 전원코드가 빠져 있는 채로 며칠 있었던 거다. 노트북은 자신은 충전되지 않은 채 배터리 잔량을 핸드폰에 나눠주다가 여력이 안된 걸 오늘 발견했다.


노트북에 갑자기 감정이입이 들었다. 얼른 노트북에 전원을 꽂고 나니, 방전된 채로 있던 노트북이 그저 사물인데도 안쓰럽고 딱한 마음이 들었다.

그 노트북이 나 같아서.


사람에게 있는 에너지 잔량을 눈에 볼 수 있다면 나는 몇 %가 남아있을까?

지금 내 잔량은 얼마 전까지는 '전원을 연결하십시오'라는 메시지가 떴었고, 지금은 재충전된 상태이다.

한동안 육체적인 소모는 별로 없지만, 걱정하고 근심하고 화내고 서운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어서, 정신적인 소진이 컸었다.


고3 딸이 부리는 짜증을 받아주고, 그녀의 속상한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괜찮다 위로를 건네느라 에너지 사용.

허리가 아픈 아들을 근심하고 공연히 잘못될까 걱정하고 마음 쓰는데 에너지 사용.

집안의 가계가 예전 같지 않은데,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전전긍긍하는 데 사용.

강아지가 너무 처져있지는 않나 살피는 데 사용.

이러느라 나는 '배터리가 부족합니다. 충전해 주십시오'라는 문구가 언제부터 떴는지도 모르게 지내왔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새 저절로 꺼져버리고 말았고, 급하게 전원을 연결해서 전원을 눌러도 켜지지 않는 상태까지 왔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종종 충전하라는 경고가 뜨는지도 모르게 자신을 소진하며 살아가고 있다.

핸드폰과 다르게 눈에 보이게 경고가 보이는 게 아니니까, 혹은 경고가 떠도 그걸 나도 모르게 무시하고 살아가다 보니까. 이렇게 전원조차 켜지지 않는 상황까지 자신을 몰고 가서야, '내가 왜 이럴까? 내가 왜 움직여지지 않지?'당황하는지도 모르겠다.


충전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내 자신의 에너지 레벨을 체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무작정 질주하지 말고, 멈춰서 나는 지금 어떤가, 나는 계속 내 배터리를 일에, 남에게 쓰기만 하고 채우지 않고 있는 건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

내 스스로에게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다독여주고.

얼마 전, 나는 혼자서 하는 충전보다 훨씬 강력하고 마음을 울리는 충전을 경험했다. 하느님이 전해주시는 위로. '너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네가 잘 살아야 남도 돌볼 수 있어', '걱정하지 마.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셀프 충전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충전을 해도 억울하고 나밖에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혼자서 쓰담쓰담해도 마음이 뻥 뚫린 것 같은 서늘함을 감출 도리가 없다.

내가 충전이 되고 나니, 이렇게 내 주위에 다른 사람에게서 충전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게 된다. 추워서 혼자 웅크리고 일어서 보려 하지만, 이미 방전이 된 사람들. 그들에게 다가가 안아주고 내가 들은 메시지를 역시 말해주고 싶다.

'잘하고 있어', '너니까 이 정도 하고 있는 거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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