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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Jul 12. 2021

시골, 어디서 살고 싶은데?

이상과 현실

다른 삶에 고개가 돌아간 나의 목을 비틀어 다시 정면을 바라보게 잡는다. 내가 마주한 현실을 직면해야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이처럼 살든, 빌딩 포레스트의 어진이처럼 살든지 할 테니까.


사실 뒤로 쭉 이어갈 에피소드는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다. 새우잡이를 실컷 하고 나서 30분 거리에 있는 수문 해수욕장으로 갔고, 잡았던 민물 새우를 기름에 튀겨먹고, 남은 새우로 라면 먹은 것 정도? 그러다 바다에 뛰어들어 물장구치고 노는, 모래성을 쌓겠다고 모래 만지다가 물벌레에 물리는, 그러다 파도에 모래성이 무너지는, 뭐,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


그것보다 전편에서 살짝 풀었던 문장 한 줄, '시골 도로가 익숙하지 않아 몇 번이고 운전대를 다시 잡아야 했다.'로 돌아가 정면으로 응시한 현실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어쩌면 운전을 통해 삶의 주체가 '나'였음을 깨닫게 해 준 중요한 에피소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디로 갈 건데?

이상은 언제나 내 머릿속에 존재할 뿐, 현실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이상을 그저 현실에 맞는 프레임을 씌웠을 뿐, 생각하는 것(이상적인 것)을 그대로 현실로 옮기기 위해선 적지 않는 시간과 꽤 많은 노력이 들어가야 하고 한 10% 정도 운이 따라주어야 한다. 너무 비관적일까? 부정의 의미를 담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이상을 눈앞에 보일 수 있도록 최소한의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는 이야기이다.


다시 돌아가 새우잡이를 실컷 하고 나서 30분 거리에 있는 수문 해수욕장으로 가려한다. 영업이 종료된 휴게소에서 수문 해수욕장까지 가기 위해선 지름길로 돌아가거나 영암 방향으로 국도를 타고 가다가 유턴을 해야 한다. 친구는 출발하기 전에 나에게 물었다. "잘 찾아올 수 있지?" 얼굴은 오만 근심이 가득 차있다. 목소리는 우렁차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아이! 그럼! 나 시골 싸람이여!"라고 말했던 김어진, 머리 박아.


분명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방향대로 가고 있었다. 국도 옆에 회차로로 빠지는 샛길이 있었고 내가 배운 도로 위의 모습은 일방통행이었으나, 왜 이 좁은 길에서 나를 향해 트럭이 달려오는 가. 순간 멘붕이 터졌다. '내가 잘못 들어온 건가?', '저 트럭이 일방통행을 역주행한 건가?', '시골길이라 내가 모르는 길이 또 있는 건가?'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트럭은 유유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는데, 모로 가도 여긴 시골이다. 나도 그냥 직진해서 회차로를 지나갈까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래, 다른 길이 있을 거야. 시골길이지만 경차는 매우 작으니까 빠르게 신속하게 지나갈 수 있겠지.' 하며,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다른 길(매우 좁은 비포장 도로 길)을 선택했다. 혹시나 내가 국도를 역주행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그런데 이게 무슨 일.. 분명 지도 상에 나와있어야 하는 비포장 도로는 없고 그 길 위에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었다. 망했다.


후진을 해야 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몸은 따라주지 않았고 내가 타고 있던 GOOD모닝 붕붕이는 점점 덩치가 커져갔다. 슬금슬금 후진을 하는데 자꾸만 후방에서 경고음이 울린다. 갈수록 더 크게 울린다. 결국 차에서 내려 자동차와 양쪽 사이드에 있는, 움푹 파인 개울의 간격을 보았다. 성인 남자 두 명이 부둥켜안고 지나가고도 남을 간격이었다.


겨우 영업이 종료된 휴게소를 후진으로 돌아갔다. 제자리였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흘렀다. 다시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눌렀다. 괜히 피해 가려다가 개울에 빠질 뻔했다. 물론 체감상이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었다. 식은땀이 줄줄 났기 때문이다.


이번엔 영암 방향으로 국도를 타고 가는 것을 선택했다. 아주 편하게 국도를 탔다. 약 4km 정도 직진을 하다가 유턴 구간에서 차를 돌려 수문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만약 시골길의 지형 특징과 도로가 놓여있는 방식 그리고 역주행하는 트럭 아저씨의 돌발 행동 등을 이해했다면 돌아가는데 딱 718m만 운전을 했겠다.


사실 영암 방향의 국도를 타기 전에도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긴 했지만, 이야기가 길어질 테니 생략하겠다. 요점은 내가 살았던 고향에서 운전대를 잡아도 이렇게 저렇게 헤매는데, 무작정 시골살이가 하고 싶다며 시골에 가는 건 더 무모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난 운전 잘하는데? 초행길도 잘 찾아가.'라는 생각이 든다면 내가 글의 요지를 잘 설명하지 못한 것으로 하겠다.


별 볼 일 없던 도시 생활에서 별 볼 일 많은 시골 생활로 옮기고 싶다면, 운전 면허증 취득하듯 내가 살 곳에 대해 사전 조사/답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운전만 할 줄 알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줄 알았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시골 살이도 거뜬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생각 속에 갇힌 나의 이상이었던 것.


운전대를 잡기 전,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먼저 잡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비게이션은 의존이 아니라 편의성을 위한 도구여야 하는 것. 시골살이가 하고 싶은 이들은 목적지, 즉 목표를 잡아야 하는 것. 이것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막연하게 '어떻게 살고 싶은 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내려줄 것이라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다. 똥멍충이. 목표 없이 떠돌이처럼 떠나도 된다. 하지만 적당히 계산할 줄 알고 가성비에 갓성비를 따지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방향을 잡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그래야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이를 어설프게 따라 했다가 실망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영화처럼 찰나만 모아둔 이상을 현실로 착각하는 일이 줄어들 테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왜, 어떻게, 어디서도 아닌 삶의 목적지. 지향점이다. 그래서 운전대를 잡은 당신, 당신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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