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년을 함께한 내 친구

by 김은하

“물이 다시 찼네요”

방금까지 내 고막 안에서 일어난 기계소리의 소음이 가라앉기 전 이다. 허공을 떠 있는 듯 어지러움이 가라앉기도 전 이다. 무표정한 의사는 하던 대로 툭……. 다시 내뱉는다.

“약 먹고 사흘 후에 다시 오세요”

음정의 높낮이도, 선택하는 단어까지 그의 언어는 항상 정형화되어있다. 변함없이 내 기분을 바닥으로 가라앉게 하는 중이염이다. 익숙한 담담함뿐이다. 끝이 안 보이는 터널 입구에 서 있는 기분이다. ‘조심했는데 좀 피곤했었나?’ 또 다시 시작되는 고통 앞에 생각이 많아진다.

중이염은 오십 고개를 넘어선 나와 같이 늙어가고 있다. 친구도 오십 년을 같이 했으면 눈빛만 보아도 서로를 이해하듯이 중이염도 오십 여 년을 함께 한 내 아픈 친구이다. 중이염이 있는 왼쪽 귀는 청력이 거의 없다. 내가 앓고 있는 삼출성 중이염은 피고름이 흐르기 때문에 고막에 붙은 상처의 흔적들을 떼어 낼 때가 제일 고통스럽다. 마취는 생각할 수도 없고 달라붙은 피딱지를 고막에서 걷어낼 때는 온몸에 힘이 들어가면서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

‘주님! 너무 아파요.’

친정엄마를 떠올리면 항상 성냥개비에 솜을 감아 귀를 만지던 모습이 잔상처럼 맴돈다. 난 지금 병원에서 치료라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신 몸 아픈 건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엄마의 젊은 날을 생각하면 무심했던 딸년의 미안함에 가슴이 저리다. 당신과 같은 고통을 겪는 어린 딸을 바라보던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이신 엄마가 내게 해주실 수 있었던 건 딸의 아픈 귀에 참기름을 발라주는 것이었다. 온몸에 퍼지던 참기름 냄새……. 아마도 엄마가 해줄 수 있는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난 친구들과 거리를 두었고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리고 아주 정확히 내 귀의 상태가 반 친구들 앞에서 공개된 것은 중학교 체육 시간이었다. 윗몸일으키기, 달리기, 철봉에 오래 매달리기 등을 했다. 의자에 앉아 두 눈을 감고 체육 선생님이 등 뒤에서 귀에 시계를 대면 들리는 쪽 손을 올리면 되는 시간이 있었다. 어느덧 내 차례가 되었다. 난 자리에 앉았고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등 뒤에 계시던 체육 선생님은 어느덧 내 앞에 서서 날 빤히 쳐다보고 계셨다.

“안 들리니?”

선생님은 왼쪽 귀에 다시 시계를 대었고 난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네”

하며 선생님의 유난히도 새하얀 모자만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내게 부모님과 병원에 꼭 가보라고 말씀 하셨다. 하지만 난 부모님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학 여행비도 주지 못해 힘들어 하시던 부모님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 후에도 중이염은 삶의 고비 때마다 날 절벽 끝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절벽 위에서 나와 함께 울부짖었다. 어느덧 나와 함께 저물어가고 있다. 중이염은 내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 짓게 했다. 또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기준점을 갖게 했다. 사람을 대할 때는 외모보다는 목소리가 주는 울림에 더 집중하게 했다. 듣는 것이 힘들면서 사람들을 만나면 쉽게 지쳐갔다. 다수보다는 소수의 몇 사람을 만났다. 그렇게 스스로를 지키는 벽을 조금씩 쌓아갔다. 어느덧 그 벽은 날 가두는 벽이 되었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벽이 주는 절망감과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깊은 외로움이었다.

낯선 별에 혼자 서있는 느낌.

물 위에 둥둥 떠도는 기름 같은 느낌.

절대로 중앙에 들어서지 못할 것처럼 끝없이 변경만을 맴도는 느낌.

지금 인생의 하프 코스를 돌면서 조금씩 내 안의 벽들을 허물어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 노력 중의 하나가 글쓰기였다. 사람들과의 대화가 불편한 나는 늘 혼자였다. 책과 글은 세상과 연결되는 소통창구다. 처음에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하지만 배움이 짧은 나에게 글은 어려웠다. 깊은 좌절로 이어졌다. 지금도 인정욕구는 내안에서 소리 없는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소탐대실하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의 칭찬에 목말라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안의 작은 울림에 집중하고 싶다.

인생이란 참 묘하다. 가장 숨기고 싶었던 부끄러움이 주저앉았던 나의 무릎에 다시 힘을 주었다. 이해하기 힘든 인생의 한 부분이다. 길고 힘든 중이염과의 동행은 나에게 많은 걸 포기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게 했다.

숨길 수만 있다면 숨기고 싶었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버릴 수만 있다면 버리고 싶었던 연약함이었다. 이젠 그 연약함이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겸손함이 되었다. 겸손할 수밖에 없는 내 연약함을 가만히 안아본다. ‘힘들었지. 우리 함께 한 걸음씩 천천히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가보자.’ 중이염은 마음이 아닌 귀에 있는 병이라 행복하다.

언젠가 내 안의 벽들이 무너져 볕 좋은 작은 창문이 나고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들어 소박하게 노래하며 벽 사이에 자리 잡은 예쁜 문을 통해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

울퉁불퉁 굴곡 많았던 이 마음 밭에도 울긋불긋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새파란 하늘빛에 취한 듯 두 눈을 감아 보았다. 현기증처럼 맴도는 푸르름이 두 눈 가득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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