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명절 잘 보냈어? 시간 되면 연락해. 우리 맛난 거 먹자.” 친구는 몇 년 전 이혼했다. 명절이 다가오면 음식준비를 하면서도 시장은 봤는지, 식구 없다고 외로워하지는 않는지 늘 내 마음 한 켠을 아프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친구라 그저 마음뿐이다. 열심히 살았던 친구가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많이 힘들어했다. 혼자서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 둘을 키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기에 많은 날을 고민했었다.
며칠 후, 나라를 구할 만큼 바쁘지도 않으면서 자주 연락 못 한 미안한 마음을 안고 따뜻한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몇 달 못 만난 사이에도 그녀는 여전히 씩씩해 보였다. 아마 내가 처음 이 친구에게 관심이 갔던 건 오토바이 때문이었다. 자전거도 못 타는 소심한 나에게 오토바이를 타는 친구의 모습은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큰 키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로 여장부 스타일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다른 친구들 소식과 아이들 안부를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아이들 아빠 이야기로까지 이어졌다.
“은하야! 요즘은 더 자주 나에게 묻게 된다. 나 잘 한 걸까? 내 선택이 맞는 거였을까? 요즘은 나이든 부부들을 바라보면서 나도 저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 해봐.”
비슷한 사연들 속에서 서로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한 나와 친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풀지 못한 수학 문제지 앞에선 학생처럼 서로 말을 이어가는 게 힘들었다. 자신 있게 내 삶이 정답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더 자신 있게 너의 삶이 정답이라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하루에 아르바이트 네 군데를 뛰어다녀야 한다는 친구의 긴 한숨 속에서, 우리 앞에 드리워진 삶의 비루함 앞에서 점점 말을 잃어 가고 있었다. 우리 앞에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 잔만 물끄러미 내려 보았다. 우리는 한동안 만나지 못할 걸 알면서도 다시 만나자는 기약 없는 인사를 나누며 돌아섰다.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고 뼈마디만 앙상한 채로 겨울의 끝자락에 떨고 있는 은행나무에 말을 걸어본다.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거니? 그 선택이 정말 맞는 것이었을까?”
친구야!
우리 섣불리 판단하고 아파하지 말자.
우리 흑과 백의 이분법으로 생각하지 말자.
우리 열심히 살았다면
먼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 모든 판단은 오롯이 주님 몫으로 남겨두자.
내가 걸어온 인생길을 되짚어 볼 때가 있다. 그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을 지나쳐왔다. 주어진 사연 안에서 많은 고민과 최선의 선택을 했다. 우리는 남겨진 시간만큼이나 많은 선택 앞에 다시 서게 될 것이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건 무언가를 또한 포기한다는 것이다. 돌아오지 않을 지나간 시간을 품어 안고 그 선택의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며 뚜벅뚜벅 걸어가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인생은 B 와 D 사이의 C 이다. 인생은 Birth 와 Death 사이의 Choice이다.” -프랑스 사상가 장폴 샤르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