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갈사람 손들어.”
아무도 반응이 없다. 나는 시큰둥해져서 조용한 언니를 괴롭힌다.
“어제 내가 같이 가 주었으니까 오늘은 언니가 같아가자.”
기억에도 없던 어제 일을 억지로 만들어서 언니를 끌고 화장실을 갔다. 겁이 많은 나는 밤만 되면 집과 따로 떨어져 대문 옆에 있던 화장실을 혼자 못 가고 한 사람씩을 데리고 갔다. 남자 동생들은 화장실까지 안 가고 수돗가에서 소변을 보기도 했다. 그때는 그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난 화장실에 들어앉아서 큰일을 볼 때도 배에 힘을 주면서 볼모처럼 끌고 간 언니나 동생이 화장실 앞에 잘 있는지를 확인 했다.
“언니 거기 있어. 가지 마. 절대 가면 안 돼. 거기 있으면 빨리 대답해.”
무섭다고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 놓고도 대답이 없을까 봐 큰소리를 쳐댔다.
그러던 어느 밤이었다. 착하기만 했던 언니가 그날도 화장실 앞에 서 있었다. 언니가 다정하게 말했다.
“은하야! 오늘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이야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진짜!”
언니는 화장실 밖에 서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떤 아이가 화장실에 갔는데 종이를 안 가져간 거야. 집에는 아무도 없고 ‘어쩌지’ 하고 있는데 어디서 상냥한 목소리가 들리더래.
“빨간 종이 줄까? 하얀 종이 줄까?”
그 아이는 고마워서
“하얀 종이 주세요.”
하고 말했어. 그러니까 화장실 문 밑으로 하얀 종이가 쓰윽 들어 온 거야. 그래서 하얀 종이로 마무리를 하고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는데 문밖에는 아무도 없는 거야.
나는 화장실 안에서 귀를 쫑긋하고 듣고 있다가 언니에게 물었다.
“왜 아무도 없어.”
언니가 대답했다.
“글쎄 모르지.”
그리고 나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은하야! 너는 빨간 종이 줄까? 하얀 종이 줄까?”
눈치라고는 전혀 없던 나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언니야! 난 빨간색이 좋아. 빨간 종이 할래!”
조용히 듣고 있던 언니가 갑자기 큰 소리로 화장실 밖에서 소리쳤다.
“그래! 나는 빨간 종이 귀신이다. 으악!”
화장실에 들어앉아 있던 나는 무섭다고 엉엉 소리치며 울었다. 그날 밤 언니랑 나는 남의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시끄럽게 한다고 어머니에게 혼이 났다. 한참 손이 가는 다섯 명이나 되는 고만고만한 철부지 아이들을 데리고 남의집살이를 해야 했던 어머니의 불편한 정경이 눈앞에 선하다.
나는 여행을 가서 불편한 것은 음식보다는 화장실이다. 프라하에 갔을 때는 화장실 앞에서 돈을 받았다. 청소요금 같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화장실 앞에서 동전을 냈던 기억이 있다. 북한에 있는 금강산 여행을 갔을 때다. 금강산에서 화장실을 가려면 큰일과 작은 일에 따라 각각 다른 요금을 받았다. 큰일 인지 작은 일인지는 북한사람들이 화장실 뒤에 서랍 같은 것을 열어본다. 그리고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한 후 요금계산을 하는 것을 보고 한참 웃은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은 깨끗한 화장실에 만족해한다. 깨끗한 음식도 중요하지만 깨끗한 화장실 문화도 참 중요한 것 같다. 사람이 사는데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설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일인가?
그 옛날 화장실 앞에 당번을 세워서 식구들을 교대로 괴롭히던 나는 지금은 화장실 청소하는 것을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다. 지저분한 화장실이 깨끗해지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내가 수고해서 깨끗해진 화장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면 가슴이 마냥 뿌듯해진다.
‘내가 사는 이 어둡고 냄새나는 세상도 깨끗이 청소된 화장실처럼 깨끗해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 주머니를 오늘도 가슴에 고이 품어본다. 빨간 종이와 하얀 종이가 어울려 아름다운 춤을 출 것 같은 밝고 환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