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추의 모양은 예쁘지 않다. 건강한 목 뼈의 모양은 뒤집어진 C자인데 반해, 내 목 뼈는 거의 일자.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보다보면 신경 쓰인다. C자가 아닌 일자로 내 머리를, 내 생각을 프로메테우스처럼 받치고 있는 목을. 주인 잘못 만나 고생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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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버블버블 게임 같다고 생각했다. 초록색 구슬은 초록색 구슬을 향해, 보라색 구슬은 보라색 구슬을 향해 가야만 하는 게임 말이다. 그렇게 같은 색 구슬을 많이 모야아 구슬이 깨지고, 이번 판을 깨고 다음 판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온통 정체 구간이다. 깨지거나 수월한 곳은 흔치 않다. 고이거나 멈춘 게 흔하다. 그러니까 세상은, 잘 풀리지 않는 버블버블이다. 보라색 구슬과 초록색 구슬과 분홍색 구슬이 모여있는데 노란색 구슬이 다가와서 붙는 세상. 정체된 채로 유지되는 세상. 아니, 정체돼야 유지되는 세상. 구슬처럼 깨져서 사라지면 남는 게 없으니까.
좀처럼 자신을 털어놓지 않는 화자가, 도록도록 소리없이 굴리는 시선으로 인물들을 응시한다. 이 이야기들은 햇빛이 통과된 유리구슬의 역순이다. 유리구슬을 통과한 햇빛이 프리즘을 만드는 것, 을 반대로 유리구슬을 통과한 프리즘이 한 줄기의 빛으로 나아가는 모양. 빨간빛 사람부터 보라빛 사람까지 모아서 하나의 빛줄기로 만드는 건, 이야기의 힘이고 작가의 힘이다. 타인을 응시하는 눈과 인식과 의식의 힘이다.
사람이 하나의 세계라서 아름답고 또 무섭다는 말. 그러나 늘 무서움보단 아름다움에 겨웠기에 우리는, 서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 어쩌면 몸에 있는 근육보다, 마음에 있는 근육의 자리가 더 많을 것이다. 몸의 근육과 마음의 근육에 가장 큰 차이는, 쉽게 말해 PT와 그룹형 레슨이다. 마음의 근육은 개인 트레이닝으론 단련되지 않고 꼭 두 명 이상이 모여 레슨을 해야 한다.
마음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는 건데도, 개인적인 면모가 전부는 아니다.
떨어지고 있구나. 나는 또 붙어있고.
김화진 <근육의 모양> 중에서
사람에게 있어 영영 가시지 않는 것은 아마 또 다른 사람 뿐일 거다. 그리고 그건 아무래도 시간과 마음 때문이겠지. 절단면이 깨끗할 수 없는 그 두 가지 때문에 우리는 늘 질척이고 지긋지긋하고 지겹게, 서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