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와 대화하지 않는다.
2년째 이어지는 혼자만의 시위
아빠는 나에게 있어 어떤 사람일까? 일단 나랑 기질적으로 잘 맞지 않는다는 걸 넘어서, 나와 너무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에 도무지 가까워질 수가 없었다. 차라리 뚜렷한 이유가 있어서 아빠를 미워하는 거라면 간단할 텐데.. 너무 얽히고설켜있다.
물론 좋은 기억도 있다. 여섯 살쯤 제주도 한라산에 다 같이 올라간 적이 있는데, 날다람쥐 같았던 내 동생과는 달리 내려올 때 다리가 풀려버린 나를 업고 내려와 주신 아빠.
내가 첫 생리를 할 때 무엇이 갖고 싶은지 물어본 뒤, 선물과 함께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주던 아빠.
나와 둘이 종종 음반가게에 가서 좋아하는 가수의 CD를 사주시고, 내가 좋아하는 송어회를 먹으러 가자던 아빠.
모두 중학교 이전의 이야기이다. 이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 아마도 내 머리가 커지면서 이해되지 않는 아빠의 행동들이 극명하게 보였던 건 아닐까? 그나마 위의 추억으로 아빠는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지금도 마음속으로는 나를 사랑하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전해지지는 않는다.
나는 미국에 이민 온 뒤 아빠와 2년째 개인적인 연락을 한 적이 없다. 간간히 엄마와 통화하는 수화기 넘어 생사여부 확인을 주고받는 정도. 그 짧은 순간마저도 싸움으로 끝내기도 한다.
아빠는 내게 독하다고 했다. 우리 집에서 가장 독한 년이라고. 내가 왜 아빠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엄마와의 전화에도 한국에 가고 싶다. 가족이 보고 싶다 말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거 같다. 혹은 자신 때문이라고 인정하기 싫거나.
나는 신혼여행을 가기 일주일 전에도 아빠와 싸웠는데, 아빠는 상황이고 뭐고 기분이 나쁘면 상대방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화를 낸다. 싸움의 발단은 '부모님의 이혼'. 엄마는 내 결혼식 직전에 이혼을 고민했다. 결국 이혼할 것도 아니면서 내 기분을 지하 끝으로 끌어내렸다. 그저 온전히 축하받고 싶었는데. 제발 아무 일이 없길 바라고 또 바랬는데. 나 아무것도 안 도와줘도 되니까 그냥 그대로만 있어주길 바랬는데. 엄마는 뭐에 꽂힌 건지 다시금 이혼을 입에 자주 올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나는 세상 가식적인 미소를 장착한 체 겉보기에 행복한 신부로 결혼식을 올렸고, 남편의 군 전역 후 신혼여행과 이민을 가야 했기 때문에 친정에 몇 주 더 머물기로 했다. 그때 나는 매우 어리석게도 몇 주 동안은 나에게 정말 잘해주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이 있었나 보다.
어느 날 아빠와 둘이 밥을 먹고 있는데, 평소에도 지긋지긋하게 들어왔던 엄마의 험담을 또 반찬 삼아 꺼냈다. 그 순간 입에 머금은 밥알이 돌처럼 느껴지면서 약간의 분노가 치밀었다.
더는 듣지 못하고 "그래서 이혼은 언제 할 건데? 나 시집도 갔고 이제 진짜 그만해도 되잖아!"라고 소리쳤다. 아빠는 눈이 뒤집혔고 "어디 감히 자식새끼가 부모한테 이혼을 해라 마라야" 하며 밥상을 엎었다. 밥그릇이 식탁에 내려쳐지는 소리와 함께 내 마음도 깨졌다. 이번에는 다시 붙이기 힘들 것 같았다. 아빠는 방으로 들어가 티브이를 틀었고, 나는 우는 걸 들키기 싫어 이를 악 물고 밥상을 치웠다. 그리고 깨진 그릇을 사진 찍었다. 더 이상 예전처럼 덮어두고 다시 아빠를 사랑하고 아빠의 행동을 이해해보려 노력하기 싫었다. 또 용서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사과는 없을 거니까.
그렇게 나는 신혼여행을 가기 전 일주일 내내 아빠와 말을 하지 않았고, 남편이 여행 가방을 챙기러 온 날에야 잘 다녀오라고 한마디 남겼다. 그게 어쩌면 아빠와의 마지막 대화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하지만, 예전만큼 악에 받쳐있지도 그리 속상하지도 않은걸 보니 아빠에 대해 많이 포기한 것 같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아빠에 대한 '마음'을 비워낸다.
언젠가 '미움'도 비워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