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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기기만에 능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갑니다

by 현루

인간은 진실을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진실’보다 ‘견딜 수 있는 이야기’를 더 원합니다.
인간은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자기기만은 비겁함의 증거가 아니라,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입니다.
정직하게만 살아가는 것이 반드시 미덕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속이며 살아갈 것인가가 더 현실적인 질문이 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말합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나을 거야.”
그 말은 과연 사실일까요?
근거 없는 낙관일 수도 있고, 막연한 자기 위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하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날들이 있는 겁니다.

이처럼 자기기만은 삶을 유지하는 일종의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자기기만이 없었다면 인간은 스스로 무너졌을 것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삶은 너무 잔인하고 무질서하며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자기기만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거짓말을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진짜 그렇게 믿고 있는 줄 알면서
실은 마음 깊은 곳에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원하지 않으면서 괜찮다고 말하고,
지쳐 있으면서도 멀쩡한 척 웃습니다.
그 모든 말들 안에는 ‘진짜 나’가 빠져 있습니다.

자기기만은 그렇게 일상 속에 스며들어
우리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갉아먹습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점점 모르게 되고,
무엇이 진심이고 무엇이 연기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이렇게 쉽게 자신을 속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진실은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원래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지금 걷는 길이 틀렸다는 사실,
사랑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
스스로가 초라하다는 사실 —
그 모든 진실들은 인간의 자존감과 세계관을 뒤흔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습니다.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그냥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자기 안의 진실을 지워가며,
살아갈 수 있는 형태로 삶을 다듬습니다.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 믿으려 합니다.
타인을 돕고, 착한 말을 하고, 스스로의 선의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타인을 조종하려 들고,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며,
도움을 줄 때조차 내면의 칭찬 욕구를 숨기지 못합니다.

그럴 때 사람은 말합니다.
“난 나쁜 의도가 아니었어.”
“나는 정말 도우려 했을 뿐이야.”
이 말들 역시, 하나의 자기기만입니다.
자기기만은 종종 도덕적 포장지의 형태를 띱니다.
그리고 그 포장지는 진실을 더욱 감추고,
자신을 더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모든 자기기만이 반드시 해롭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인간을 보호하는 마지막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극심한 상실감이나 죄책감, 외로움 앞에서
자신을 완전히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일은
오히려 더 깊은 절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기기만은 인간의 생존 본능에 가까운 감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인간을 가장 멀리 돌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타인을 속이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기만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인식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
“지금 나는,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그 말은 사실인가, 아니면 나를 위로하기 위한 이야기인가.”
“나는 지금 솔직한가, 아니면 견디기 위해 연기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고통스럽지만,
그 질문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비로소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삶은 연속적인 자기기만과 간헐적인 자기 통찰 사이를 오가는 흐름입니다.
스스로를 단단히 붙잡는다는 것은,
때때로 거울을 보고 이렇게 말하는 일입니다.

“나는 완전히 정직하지 않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삶은 언제나 조금씩 우리를 속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까지 속이지 않으려면
적어도 한 줄기의 정직함은 내면에 남겨야 합니다.

자기기만을 통해 인간은 살아가고,
그 자기기만을 인식할 때 인간은 깨어납니다.

이제 묻겠습니다.




지금 당신은, 자신에게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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