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함께" 작가 소개 및 브런치북 리뷰
짧아진 텔로미어의 브런치스토리입니다.
삶을 진료하고 마음을 치유하고픈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해금과 피아노를 배우며 가슴속의 말들을 '시'라는 그릇에 담으며 하루를 건너갑니다.
작가의 책소개
처음 써보는 소설이라 서툽니다.
하지만 언젠가 진짜 소설'을 쓰기 위한 시간들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첫걸음을 막 시작한 글이라 훗날 다시 읽어 보면 부끄러운 글에 얼굴이 화끈거리겠지요.
<닥터 트랜스퍼>는 성악설을 믿는,
특별 한 능력이 있는 응급실의 의사의 이야기입니다.
허무맹랑한 지만 가끔 상상해 보던 이야기입니다. 그는 환자의 병을 잠 시자신의 몸에 옮긴 후, 악을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살아가 는 자들에게 다시 전이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 72시간 내 전이를 마치지 못하면 병은 곧 그의 것 이 되기 때문에 3일 이내에 병을 옮겨야 합니다. 질병은 그 의 무기이자 형벌, 그리고 족쇄가 됩니다.
고통이 가득 찬 응급실, 그곳에서 시작되는 스토리를 끄적거려 봅니다.
https://brunch.co.kr/@507538001888438/251
°인간의 도덕신경계를 자극하는 의료 윤리 판타지
『조건부 통증』 제7화는 단순한 의료 스릴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고통’이라는 감각을 매개로 한 철학적 사유의 실험이 정교하게 자리합니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이라는 실제 의학 질환을 서사의 토대 위에 올려놓고, 신체적 고통이 어떻게 도덕적 감각으로 치환될 수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작품의 중심인물 닥터 트랜스퍼는 이름 그대로 ‘전이’를 수행하는 존재입니다.
그는 타인의 고통을 자신 혹은 제삼자에게 옮길 수 있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작가는 이 설정을 통해 단순히 ‘고통의 나눔’이 아닌, 도덕적 책임의 이식 가능성을 실험합니다.
누군가의 죄와 폭력이 다른 이의 신경계를 통해 재현될 때, 그것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라 ‘양심의 신체화’로 전환됩니다.
작가는 이 설정을 의학적 사실성과 철학적 추상 사이의 긴장 속에서 구축합니다.
예컨대 통증의 전달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 신경전달물질, 교감신경의 과흥분, 감각섬유의 발화 같은 의학적 리얼리티는, 작품의 상징성을 허공에 뜨게 하지 않고 지상으로 단단히 붙들어 둡니다.
반면 그 리얼리티 위에서 작가는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질문을 던집니다.
“만약 인간의 도덕감각이 신경계의 구조물이라면, 양심은
뇌의 한 부위에 불과한가?”
이 질문은 곧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기도 합니다.
고통을 단순한 감각이 아닌 윤리의 언어로 치환하려는 시도, 그것이 『조건부 통증』의 미학적 실험입니다.
7화에서 제시되는 정치인의 이야기는 이 작품의 윤리적 심장을 드러냅니다.
권력과 부패, 위선으로 점철된 인물에게 닥터 트랜스퍼는 ‘조건부 전이’를 시도합니다.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그 순간의 고통이 자신의 신체로 되돌아오는 장치입니다.
이 ‘조건부 통증’은 일종의 윤리적 피드백 시스템으로 작동합니다.
이 설정은 성서의 신학적 구조를 떠올리게 합니다.
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고, 그것은 신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신이 되어 버립니다.
작가는 이 지점에서 섬세한 아이러니를 세웁니다.
즉, 그는 고통을 통제함으로써 인간을 교화하려 하지만, 그 순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죄의 경계에 발을 들입니다.
결국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신의 역할을 자임할 때,
인간은 어디서 타락하는가?”
이 물음은 의료 윤리의 본질
"인간이 인간의 생리적 한계를 다룰 수 있는가 "
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그 순간 작품은 현실의 의학을 넘어 윤리적 메타의학의 세계로 도약합니다.
작품의 미학은 ‘통증의 방향성’에서 완성됩니다.
작가는 고통을 징벌로도, 정화로도 동일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고통은 그 자체로 도덕의 추(錘)이며, 인간의 행위가 기울어질 때마다 균형을 잡기 위한 내적 조정장치로 작용합니다.
정치인은 악행의 순간마다 몸속 신경계가 과흥분하며 극심한 통증을 겪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이 멈추는 순간은 오직
이때의 통증은 단순한 벌이 아니라, 인간을 ‘도덕적 선택으로 밀어 넣는 힘’으로 전환됩니다.
작가의 관점에서 고통은 신이 아닌 윤리적 진화의 촉매입니다.
결국 우리는 역설적인 결론 앞에 서게 됩니다.
이 문장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윤리의 긴장을 압축합니다.
통증이 외부에서 부과되는 순간, 선은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 됩니다.
즉, 인간은 도덕적으로 선할 수밖에 없도록 프로그래밍된 존재로 전락합니다.
작가는 그 불편한 아이러니 속에서 ‘자유의지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습니다.
『조건부 통증』의 구조는 의학 논문처럼 정밀하고, 철학 에세이처럼 서정적입니다.
응급실 장면, 수술 도구, 전기자극 실험 등
세밀한 묘사들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상징 장치로 기능합니다.
이러한 상징의 결합은 서사의 속도를 늦추지만, 작품 전체의 밀도를 압도적으로 높입니다.
특히 닥터 트랜스퍼가 마지막 장면에서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대신 느낄 수는 있으나,
『조건부 통증』은 결국 인간이 왜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탐색합니다.
작가는 고통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장애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은 윤리적 방향성을 부여하는 생리적 나침반으로 제시됩니다.
인간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곧, 여전히 선을 인식할 수 있는 존재라는 증거입니다.
고통은 인간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을 통해 인간은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통증은 인간의 윤리적 근육을 단련시키는 훈련장과 같습니다.
작가는 인간의 신경계에 윤리라는 전선을 심어놓고, 그 회로가 불꽃을 튀길 때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변화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닥터 트랜스퍼는 결국 신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
그 자체입니다.
통증은 이 작품 속에서 형벌이 아니라 구원이며, 절망이 아니라 성찰입니다.
고통의 존재 이유를 묻는 모든 이에게, 이 이야기는 조용한 신경 자극처럼 오래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