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경잠(長沙 景岑) 백척간두 진일보

두려움을 뚫고 나아가는 용기의 조화

by 현루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안전한 울타리를 가집니다.

그 울타리는 내가 쌓아온 지식일 수도 있고, 사회적 지위나 익숙한 습관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안주하며 '이 정도면 됐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곤 합니다.

하지만 삶은 끊임없이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우리는 두려움에 떨며 멈춰 서고 맙니다.

이때 당나라의 기봉 넘치는 선사, 장사 경잠 대사는 우리에게 생사를 건 결단을 촉구합니다.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

, "백 척이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서 있다면, 그 끝에서 다시 한 걸음을 더 내디뎌라"라는

이 사자후는 안일함에 빠진 우리 영혼을 깨우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장사 경잠 선사는 남전 보원 선사의 법을 이은 제자로, 그의 가르침은 매우 날카롭고도 명쾌했습니다.

이 유명한 구절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10권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사는 게송을 통해 이렇게 읊었습니다.


"백 척 장대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이 비록 깨달음의 경지에 들었다 하나, 아직 참된 도는 아니다. 반드시 그 끝에서 한 걸음을 더 나아가야만 온 시방세계가 바로 자신의 본래 몸임을 보게 되리라."


​여기서 '백 척 장대'는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성취나 안락한 상태를 상징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정도 높이에 오르면 만족하며 내려오지 않으려 합니다.

혹여나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가 추락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사의 안목에서 볼 때, 그 멈춤은 집착의 또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진정한 자유와 함께의 가치는 내가 가진 마지막 '나'라는 상(相)까지 완전히 던져버리는 그 찰나의 용기 속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우리가 세상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나를 지키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내가 손해 볼까 봐, 내가 상처받을까 봐, 혹은 내가 가진 정의가 훼손될까 봐 우리는 마음의 성벽을 쌓고 타인을 경계합니다.

장사 선사가 말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은 바로 이 견고한 자아의 성벽에서 뛰어내리는 행위입니다.
​백 척 장대 끝에서 발을 떼는 순간, '나'라는 개체는 소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순간 우리는 온 우주와 하나가 됩니다.

허공으로 몸을 던질 때 비로소 허공이 나를 받쳐주고 있음을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대용맹심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을 배려의 대상이 아닌 '나의 다른 모습'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내가 죽고 전체가 사는 이 장엄한 도약이야말로 차별과 갈등이 소멸한 원융무애한 세상을 만드는 열쇠입니다.

​우리들에게 '진일보'는 무한 경쟁 속에서의 승리를 의미하곤 합니다.

하지만 조사어록이 전하는 '진일보'는 승리가 아니라 '내려놓음'이며, 전진이 아니라 '초월'입니다.


지금 당신을 붙들고 있는 그 장대는 무엇입니까? 남들보다 조금 더 가졌다는 자부심입니까,

아니면 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는 도덕적 우월감입니까?
장사 선사는 우리에게 그 장대 끝에서 과감히 손을 놓으라고 말합니다.


추락할 것 같지만, 실상은 비상(飛上)하는 길입니다.

내가 지키려 했던 그 작은 장대를 버릴 때, 비로소 무한한 대지가 나의 발아래 펼쳐집니다.

고통받는 이웃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이유도, 낯선 존재와 소통하기를 주저하는 이유도 결국 추락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용기를 내어 한 걸음을 더 내디딜 때, 그곳은 낭떠러지가 아니라 모든 생명이 서로의 존재를 찬탄하며 어우러지는 눈부신 축제의 장입니다.

'나'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온 세상을 품에 안으십시오.

당신의 그 용감한 한 걸음이 멈춰있던 조화의 수레바퀴를 다시 돌리는 동력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하모니는 죽기를 각오하고 나를 던지는 자만이 부를 수 있는 자유의 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