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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겪은 집단 괴롭힘

너무하다는 생각뿐

by 현루

같은 지역 사람이 아니라고
어른이 이러면 안 되잖아요


병원에 있던 시간들을 떠올리면

나는 여전히 몸이 움츠러든다.

어쩌면 그곳은 회복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내 멘탈이 가장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 장소일지도 모른다.


재활병원


이름만큼이나 희망을 기대하게 만들지만,

현실은 너무 달랐다.

몸이 낯설어진 것보다 더 괴로웠던 건,

사람들과의 관계였고, 고통과 고립 속에서 무너져가는 자존감이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왼쪽 다리와 마비된 팔을 끌고

병원 복도를 걷는 연습을 했다.

(사발 지팡이 짚고)


재활 치료사는 늘 이렇게 말했다.
“천천히 가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계속하는 거예요.”

그 말이 처음엔 참 따뜻하게 들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그 ‘천천히’

라는 단어에 압도당했다.

나는 점점 걷지 못했고, 다리는

매일 밤 경직으로 날 옥죄었다.

마치 내 몸이 ‘회복’이라는 단어를 거부하는 것처럼.


그러는 사이 병실 안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됐다.
내가 배정된 병실은 5인실이었다.

그곳에는 나처럼 뇌병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지냈다.

각자 겪은 사고와 병의 종류는 달랐지만,

모두가 상처 입고 무너진 몸을 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같이 울 줄 알 거라고 막연히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병실은 경쟁의 공간이었다.

누가 더 빨리 걷고, 누가 더 나아졌고,

누가 더 의지를 보이느냐에 따라

미묘한 분위기가 갈렸다.

어떤 이는 자신의 회복을 자랑처럼 말했고,

어떤 이는 남의 실패를 안타깝다는 얼굴로 흘려들었다.

그리고 나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내가 방광 조절이 되지 않아 자주

실수를 하면, 옆 침대에서는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밤마다 고통에 신음이라도 하면,

"좀 조용히 해달라"는 말이 날아왔다.

간호사 호출 버튼을 자주 누른다고 뒷말이 오갔고, 내가 잠든 사이에도 내 얘기는 병실에 떠돌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폐였고, 짐이었고, 시끄러운 존재였다.

그것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서글펐다.

나는 치료 시간에도 입을 다물었고,

복도 끝 창가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통증과 경직은 여전했고, 약은 점점

강해졌지만 듣는 것 같지 않았다.

일어서기 연습을 하다가 쓰러진 날엔

그냥 바닥에 엎드려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나, 재활 안 되는 것 같아.


“이쯤에서 그냥 포기하면 어떨까.


“이게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일까.”



그런 생각이 날카롭게 내 머릿속을 긁었다.

몸은 회복되지 않았고, 마음은 사람들에게서 멀어졌으며, 병원이라는 구조물은 나를 감싸 안아주지 않았다.

나는 한순간도 온전한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재활 도중 나는 다리에 급격한 통증을 느끼고 소리 없이 주저앉았다.

치료사는 내게 다가와 물었다.



“어디가 그렇게 아파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픈 건 다리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 순간,


마음 전체가 골절된 기분이었다.


나는 재활이 싫었다. 병원도 싫었고,

사람도 싫었고, 이 몸도 싫었다.

그렇게 나는 병실의 커튼을 끝까지 닫고,

하루 종일 등을 돌리고 누워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을 완전히

놓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너무 창피했고, 너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날 밤, 오른손으로 메모장을 켜 한 문장을 썼다.


“내가 나를 버리면, 안 돼.”


그 한 줄이 전부였다.
나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멘탈의 정의’였다.

멘탈이란, 강한 것이 아니라는 걸.


멘탈이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게 아니라는 걸.



멘탈이란, 무너진 다음에 무엇을

붙잡고 일어서는가의 문제라는 걸.


나는 병원에서 무너졌고, 무너지면서도

애써 그 조각 하나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지막

의지였고, 나는 그것만으로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물론 이후에도 병실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눈치와 편견은 존재했고,

고통은 날마다 찾아왔다.

그러나 나는 알게 됐다.

‘나는 무너지더라도 망가지지 않았다’는 것.
내 멘탈은 수많은 금이 갔지만,

그 틈 사이로 다시 빛이 새어 들어올 수 있다는 걸.

나는 그곳에서 고통을 배우고,

타인의 벽을 배우고, 무엇보다도

내 마음의 생존 본능을 배웠다.

지금 돌아보면, 병원은 재활의 공간이

아니라 ‘멘탈의 공사장’이었다.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내 마음이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다시

세워지는지를 배웠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날에,


스스로를 위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에도


스스로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 경험은 내게 말해주었다.
회복이란, 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그리고 마음은, 생각보다 오래 살아남는다고.

그날 이후 나는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느리며, 여전히 오른손 하나로

세상을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망가지지 않았다.
망가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여전히 ‘작동 중’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병실 어딘가에서

고통에 울고 있는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지금 멘탈이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니라,


멘탈을 다시 세우는 중입니다.”



그리고 나처럼,
다시 시작하길 결심하는 그 순간,
당신은 이미 살아 있는 것이다.


뇌졸중이지만 아직 작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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