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을 버리는 순간, 삶은 선명해집니다
어떤 직업을 가질지, 몇 살에 결혼할지,
언제쯤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될지.
그러나 살아본 사람은 압니다.
삶은 대체로, 그리고 냉정하게도,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예기치 못한 질병, 사고, 배신,
경제적 파국, 또는 사소한 우연 하나가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스스로를 탓하거나,
세상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삶이란 애초에 인간의 예측이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삶은 수학 공식이 아닙니다.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있고,
준비 없이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정하지 않으며, 일관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계획하는 법을 배우며 자랍니다.
계획은 곧 성실함의 증표였고,
미래를 보장하는 수단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그 기대를
비껴가곤 했습니다.
그 비껴감은 곧 실망을 낳고,
실망은 자책으로 이어지며,
자책은 자기 삶 전체를 부정하는
습관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계획은
작은 안도감을 줍니다.
“내가 준비하고 있으니 괜찮을 거야.”
하지만 그 준비가 절대적인 기대가 될 때,
삶은 오히려 취약해집니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철저한 계획으로
하루를 설계하고, 그 계획이 틀어질 경우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습니다.
심지어 일상의 작은 변수에도
감정을 잃고 맙니다.
왜일까요?
그 사람에게 삶이란 ‘예정된 것'
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정이 틀어졌다는 건 곧 삶이
잘못되었다는 뜻으로 여겨지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예측이 틀어졌을 뿐,
삶이 틀어진 것은 아닙니다.
삶은 원래 틀어지는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나는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 해요.”
이 말속에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
즉 삶을 통제하고자 하는 본능이
숨어 있습니다.
그 욕망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통제는 환상입니다.
우리는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지금 이 순간 내 몸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완벽히 통제하지 못하며,
삶은 더더욱 통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은, 끊임없이 ‘예외’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그 예외를 불행으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 예외를 계기로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
사이에는 삶의 질에서 커다란 차이가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계획을 세우지
말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계획은 필요합니다.
다만 그것은 삶의 전제가 아닌,
참고 사항 정도로 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방향은 있어야 하지만,
그 방향이 하나의 길만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돌아가야 하고, 멈춰야 하며,
전혀 엉뚱한 길로 흘러가기도 해야 합니다.
계획이 어긋날 때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틈에서 다시 삶을
구성해 나갈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
이것이야말로 계획보다 훨씬 더 필요한 자산입니다.
그 유연함은 쉽게 생기지 않습니다.
낙관도 비관도 아닌,
현실을 직시하는
힘에서부터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 힘은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예측이 어긋난 순간들을 살아낸 경험,
그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했던 시간들.
그것이 유연함의 뿌리가 됩니다.
삶은 끊임없이 우리를 실험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예고 없는 사건들이 문을 두드립니다.
우리는 늘 선택 앞에 놓이고,
그 선택은 언제나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선택이라도 해야 합니다.
완벽한 타이밍은 오지 않고,
모든 조건이 갖춰지는 순간도
오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측이 아니라
대응의 기술
을 배워야 합니다.
삶을 잘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잘 예측했다’는 뜻이 아니라,
‘예측이 틀려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예측이 빗나간
그 지점에서 가장 본질적인 성장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삶을 계획하고 계셨습니까?
그 계획 중 몇 가지는 이미
틀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이제 막 흔들리기 시작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