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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봉 Oct 22. 2021

왜 네가 화를 내?

망할 것

회사를 다니면 그런 게 있다.

한번 호구 잡히면 계속 호구다.


회사원이라면 특히 디자이너라면 저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왜?


시답잖은 거 한번 수정해주면

그게 지 권리인 줄 아는 호이둘리들이 아주 적반하장 고추장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근데 또 디자이너도 사람인지라

어떤 날은 작은 일에도 화가 나는가 하면

어떤 날은 웬만한 일에는 또 관대하게 넘어가기도 하는데

최근 나는 관용을 베풀다 둘리를 만났다.


시시콜콜한 수정이야 요즘엔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해주고 있었다.


문제는 지난 어느 날

전날 또 되지도 않는 문구 수정을 해주고 출근하자마자 메신저가 왔다.


'어제 수정주신 거 문구 처음으로 돌려놔주세요.'


솔직히 이건 태도의 문제다. 태도!

자기가 남에게 하지 않아도 될 추가적 노동을 하게 했으면

또 그걸 다시 처음으로 돌릴 거면

인간이 최소한의 상식과 인생을 살아오며 배운 예의라는 게 있다면

적어도


'죄송한데 문구 처음에 들어갔던 대로 다시 넣어 주실 수 있을까요?'


저 정도로 말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근데 '처음으로 돌려놔주세요.'

내가 바꾸자고 했냐? 지가 바꿔놓고 저 말투는 뭐야?


순간 차오르는 빡침을 참으며

최근에 최종본 넘긴 뒤로 수정이 너무 잦으니 처음에 잘 컨펌해서 문구 보내달라고 했더니


자기네 부서가 일이 바쁘고 변동사항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왜 이해를 못하냐는 식으로 힐난을 가득 담은 개소리스러운 답장을 받았다.


지는 툭 던져주고 내일까지 해달라는 게 다반사면서

문구 한 번 제대로 해달라고 말했는데

지네 부서의 섭리를 이해하라느니 관련 규정에 따라 적는건데

네가 뭘 아냐는 식으로 텍스트에 정색을 가득 발라서 

한바탕 혼자 지껄이다 한참 답장이 돌아오지 않자

(대답할 가치도 없어서 그냥 보고있었다.)

그 짧은 새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찾아온 건지

갑자기 수그리고 잘 협의해보겠다고 한다.


아니 근데 예를 들면

'컬링 최고 마스카라!'  이 문구를  '속눈썹엔 최강 컬링 마스카라!' 

이딴식으로 바꾸는데 그렇게 온 팀이 들러붙어서 협의하면서

최종본이 넘어가기 전까지도 정하지 못할 일인건가..?


그래.. 이게 다 내 잘못이지..

좋게 좋게 해 보자고 초반에 군말 없이 해준 소인의 잘못이옵니다.


이 사건에 통쾌한 결말따위는 없다.

팀원이 겪는 부조리에 관심 없는 상사를 둔 짜바리 하층민인 나는

굳이 직급이 높은 갑질순이호이에게 굳이 더 따지지 않았고

오늘도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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