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라는걸 모르는 삶이다.
평범하기가 어제와 다르지 않은 날들을 살고 있노라면, 모르는 번호의 문자를 받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문자가 대출이 얼마나 쉬운지 증명하고자 하거나, 속임수 없는 '불법'도박장을 홍보하고자 하는 문자가 아니라면 조금은 드문일이 된다. 게다가 미지의 인물이 별다른 말없이 가족의 사진을 달랑 보낸다고 하면 그건 매우 드문일이 될 것이며 당장 경찰에 전화를 걸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유괴나 납치를 의심하는 편이 합리적일 테니까.
아버지 사진을 처음 받았을 때 잠시나마 112를 고려했었다. 하지만 그 양반이 누구 손에 잡혀가서 돈을 요구하는 인질이 되기엔 너무 늙었고 우리 집은 남들이 탐낼만한 가진 게 없다는 걸 깨닫는데 까지는 채 5초가 걸리지 않았다. 아마도 아버지의 친구가 사진을 찍고 나한테 전송을 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2G 폰은 사진 찍기에도, 사진을 보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나는 그럴 땐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답장을 보낸다. 마땅히 할 말도 없을뿐더러, 상대가 아버지의 친구일 경우뿐만 아니라 만에 하나 납치범일 경우에도 훌륭한 대답이 될 테니까.
세상천지 옛날 양반인 아버지의 교육방식 혹은 자녀 양육 방식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를테면, 놀다가 늦게 들어온 9살 꼬마에게 다리몽댕이를 뿌려 뜨려 버린다 협박을 하는 식이다. 단순한 으름장이라면 내가 아버지 납치범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문자를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어디선가 큰 오함마를 가져와서 다리를 분지르게 쭉 뻗어 봐라 하며 허공에 망치를 휘두르는 정도까지 간다면 사람들은 그래 납치범에게 감사할 수도 있지 하며 납득할 수도 있으리라. 납득이 안 간다고? 나는 그날 술 취한 아버지에게 '잘못했어요' 대신 '살려주세요'라고 빌어야 했다. (심지어 이것은 빙산의 아주 아주 작은 일각이다!)
세월은 흐르기 마련이다. 받아 마신 나는 자랐고 흘려보낸 아버지는 늙었다. 따라서 아버지의 육체를 바탕으로 한 위협은 더 이상 나에게 먹혀들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는 새로운 무기를 찾아내야만 했고 세상 가장 무서운 걸 그 무기로 골랐다. 바로 돈이다.
세상이 변해감에 따라 말이 가진 뜻도 변하기 마련인데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라는 말은 충분히 그 증거가 될 것이다. 그 말은 옛 속담임이 분명하고, 우리 집에선 다른 사람들이 쓰는 뜻 외에도 다른 의미를 다진다. 적어도 우리 집에선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건 물뿐만 아니라 돈과 사랑을 포함한다. 즉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라는 말은 우리 집에선 부모의 숙명을 드러내는 말이다. 가정형편에 따른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녔으니 우리 집에 돈이 많은 것은 분명히 아닐진대,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따라서 내가 부모의 재산을 갖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늙은 내 아버지는 이것을 무기로 삼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너 요즘 돈이 많으냐?' 혹은 '니 장가 밑천 벌쌔 다 모았냐?'라는 말을 굉장히 능청스럽게 건네곤 하는데, 이는 아버지의 공격이다. 처음엔 이제는 하다 하다 돈줄을 가지고 쥐 흔드는 아버지에게 넌더리가 났는데, 요즘은 애잔하다. 평생을 농사를 지은 그 뼈대는 머리가 희끗해지는 나이에도 건장하지만, 세월도 허투루 흐른 건 아니기에 그도 이제 힘이 예전 같지 않다. 다 큰 아들에게 내세울 건 평생을 일군 얼마간의 돈뿐이다.
'그건 버튼이 없는디 누르기가 불편하잖어'
스마트폰이 없어 친구 폰으로 사진을 찍어 나에게 전송하는 그는 하나 사주겠다는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항상 그런 식이다. 직접 만질 생각은 하질 못한다. 단지 적절한 (혹은 적절하다고 믿는) 버튼을 누를 뿐이다. '걱정이 되니 일찍 들어와라'라고 터치하는 것보다는 '오함마'라는 버튼을 누른다. '내 몸이 바스러져도 돈걱정은 말어라' 대신 '니 장가 밑천 벌쌔 다 모았냐?'다. 21세기에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