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비로소 이제 알았다.
'돈 쓰는 재미가 도대체 뭔가 했는디 나도 이제 알겄어!'
어느 날 고향에 내려갔더니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엄마는 말했다. 내가 고향에 내려가는 건 일 년에 다섯 번이 채 되지 않는데,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게 뻔히 보여 마치 학교에서 노래를 배워온 아이같았다. 짐짓 모르는 척 약을 올려볼까 하다가 도대체 돈을 어디에 얼마나 쓰고 다니나 싶어 이유를 되물었다.
'모임에서 어딜 가면 종규 엄마가 커피를 매번 사드라고. 사면서 으스대지도 않고 말여'
'종규 엄마'는 이웃 동네 사는 아줌마다. 아들이 둘인데, 큰아들 이름이 '종규'다. '종규 엄마'라. 내 어미가 그렇듯 이 땅의 모든 엄마의 호칭일 것이다. 이름으로 불리는 건 처녀 적일 테지. 시집을 와서는 누구의 색시로, 자식을 낳고 나면 자식의 엄마로 불리는 삶이다. 그러니 이 땅의 모든 아줌마들이 처녀 적을 그리워할 법하다. 가장 아름다웠을 때였기에 혹은 꿈 많던 청춘이었기에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롯이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웠을 그 시절이 그립지 않다면 어찌하랴.
'종규 엄마' 혹은 그 여인과 엄마는 같은 계 모임을 한다. 보통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어쩌다가는 바다 바람을 쐬러 가거나 단풍구경을 떠난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항상 종규 엄마는 까페에서 커피를 한잔씩 돌린다. 설악산 케이블카에서도, 몽산포 바닷가에서도. 열명은 족히 넘어 가격이 부담될 법도 한데 항상 조용히 커피를 사는 그 모습을 보며 항상 고마웠다고 한다.
'이번에는 내가 한 번을 샀는디, 야 그거 몇 잔 샀다고 가슴이 벅차대. 이게 돈 쓰는 재민가 싶더라니까. 내가 돈을 더 열심히 벌으야겄어.'
언제나 그렇듯 모임에 다녀와서 시시콜콜 아버지에게 말했을 것이다. 삶을 공유할 유일한 사람은 그 남편뿐인 것이 중년의 아줌마일 테니. 몇 번 커피를 얻어먹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아버지는 몇 만원을 건네며 말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당신이 한 번 사주라고.
평생 다람쥐 볼주머니 채우듯 움켜쥐기만 한 삶이다. 부르튼 손에 쥔 작은 돈도 허투루 쓰진 못했다. 손에 쥔 얼마 안 되는 돈 마저도 자식에게로 흘려내리기 바빴는데, 엄마는 이제 처음 돈 쓰는 재미를 알았다. 고작 몇 잔의 커피에 '돈 쓰는 재미'라니. 가소롭고 귀여워서 일까. 목이 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