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호떡 드라이브'를

엄마는 부끄러움이 없는 줄 알았는데

by 김고양

경제권은 아버지가 쥐고 있었다. 엄마는 사용처를 말하고 돈을 타서 썼다. 세상 모든 게 그렇듯 예외는 존재했는데, 바로 자동차의 재떨이였다. 아버지가 담배를 끊고는 자연스럽게 재떨이는 동전 통이 되었다. 금연 덕에 아버지는 술자리의 자랑거리를 얻었고, 우리는 재떨이에 모아놓은 잔돈을 얻었으니 그래 금연이야말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


엄마는 재떨이의 동전이 차오를 때면 군것질을 하러 가자고 나를 꼬셨다. 1톤 트럭에 둘이 타고서 닭꼬치와 호떡 같은 걸 먹으러 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건 엄마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였을 게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시집와서는 마땅히 친구가 없어서였을까. 엄마는 즐거워했다. '난 호떡이 제일 맛있어.'라는 고백을 들은 것도 그때였다. 비정기적이었던 우리의 '호떡 드라이브'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후엔 정기적으로 이뤄졌다.


교복은 여러모로 찬양해야 할 존재임에 틀림없지만 한 가지 단점을 가진다. 주기적으로 드라이크리닝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아이비'나 '엘리트'가 아닌 나의 '김설영 교복'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도 드라이크리닝 날은 '호떡 드라이브'를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나와 엄마는 은근히 그날을 기다렸다. 한창 농사일이 바빴던 봄의 어느 날, 엄마는 일을 하다 말고 나를 태우고 세탁소에 갔다. 봄바람이 불어서였을까. 나는 호떡이 아닌 '맥도날드'를 먹자고 주장했다.

햄버거와 콜라, 감자튀김이 세트라는 것은 나도 엄마도 테레비 덕분에 알고 있었지만, 우린 맥도날드에 가본 적이 없었다. 이는 우리의 죄가 아닌 게 분명한데, 내 고향에는 맥도날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로소 맥도날드가 이 시골마을에 오픈했는데, 호떡이 아닌 맥도날드가 먹고 싶었던 것은 중학생에겐 어쩌면 당연한 일이 리라.


쫄깃 달콤한 호떡을 뒤로한 채 엄마는 맥도날드에 가는 걸 허락했다. 하지만 엄마는 맥도날드 앞에 차를 대고선 가게 안을 넘겨다 볼 뿐 도통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 내리고 뭐하냐는 나의 물음에 엄마는 답했다. 옷이 흙투성이라고. '맥도날드'에 가려니 조금 창피하니 네가 사다 달라고.


정말이지 난 그때 처음 알았다. 엄마는 부끄러움 같은 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억척이던 그동안의 엄마의 모습이 스쳐가서 일까. 포장해와 차에서 나눠먹은 햄버거 세트는 별 맛이 없었다.


다음번 교복을 찾고 나서는 우리는 다시 '호떡 드라이브'를 떠났다.




사진의 출처는 http://showroom.tistory.com/397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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