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색약이라고 했다.
동생은 연두색에서 길을 잃었다. 나는 하나뿐인 형이다. 길 잃은 동생을 인도하는 것은 형의 당연한 의무다. 보리싹과 노란 색종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그를 타박했다. 동생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자꾸 보리싹더러 노란색이라 한다고, 엄마한테 일렀다. 동생은 이것도 모른다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형이 그러면 쓰나 하며 차근차근 설명해 주라 했다. 동생은 형을 보고 배우는 거라고-. 왜 듣고도 몰랐을까. 그가 나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것을. 내가 그를 타박하면 세상이 그를 타박한 것었을 게다. 그는 다섯 살, 나는 열 살이었다. 나도 충분히 어렸으니 내 잘못은 아니리라. 그게 문제다. 상처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그래, 창피하지만 나는 아직도 사과를 못했다.
부모는 좋은 것만을 물려주고 싶었으리라. 동생이 색약임을 판정받아왔을 때, 내 아비는 형에게 전화를 했다. 아비의 형은 배움이 길었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때면 답을 구하곤 했다. 형은 동생의 물음에 응당 답을 내어주어야만 하니까. 생각 보다 색약은 흔하다는, 신호등을 구분할 수 있으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답은 명쾌했으나 내 아비를 채울 수 없었다. 신호등을 구분하는 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넌 색약이니 병원에 가보라는 담임의 그 말이, 색약이 뭐냐는 친구들의 질문이 이미 어린 아들놈에게 행했는데.
'유전자냐 염색체냐 이런 게 뭐냐?'
몇 년 전이었을까. 전화기 너머 엄마가 물었다. 시골 양반이 이런 걸 알아서 무얼 하나 싶어 이유를 되물었다. 멈칫대는 게 되려 내가 심각해졌다. 아침마당을 보는데 색맹 이야기가 나왔다고, 서울대 교수님이 나와서 설명을 해줬다고.
'색맹 유전자는 X염색체에 있는데, 아들의 경우 이건 엄마에게 받는 겁니다.'
남편이 없는 집은 쓸쓸하니 테레비를 틀었을 게다. 평소 즐겨보는 아침 마당이었겠지. 색맹 이야기가 나오니, 작은 아들이 떠올라 귀가 쫑긋했을 것이다. 혹시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나올까 하고. 배움이 짧으니 교수가 나와서 설명해주는 테레비에게 감사하면서.
말 그대로 벼락같았겠지. 너무 깜짝 놀라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남편은 집에 없다. 왜 하필 이럴 때 집을 비웠을까.(물론 그 남편도 이 내용을 알 리가 없겠지만, 흔들리는 정신을 잡아주기엔 충분한 남자니까.) 유전자니 염색체니 하는 건 과학의 내용일 것이다. 그래 첫째 아들은 과학을 곧잘 했고 대학도 다니는 녀석이니 전화를 해보자.
어떻게 엄마의 억장이 무너졌고, 차라리 확인해 보고 싶은 그 사정이 찰나에 그려져 숨이 턱 막혔다. 아들이 색약인게 이 애미 때문이라니,그럼에도 염치도 없이 본인은 정상이라는게 과연 내 어미에겐 어떻게 다가왔을까.
개똥 같은 아침 마당은 농담 따먹기나 할 것이지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 시골 사는 양반들 허파에 바람을 집어넣느냐고 말도 안 되는 비난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