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고백건대 커피를 즐긴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크게 말하자면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커피는 너무 썼고, 카페인은 밤을 지새웠다.
나는 줄곧 유자차를 마셨는데, 이는 소개팅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는 그건 너무 할아버지 같지 않냐고 빵 터졌지만, 어쩌겠는가 처음 본 자리에서 인상을 찌푸리는 것도, 처음 본 날 잠 못 이루는 것도 이상한데.
수학 및 연습 1 조교님이 너무 예뻐, 질문하러 가는 길에 유자차를 사들고 간 적이 있다. 2학기 기말고사를 앞둔 어느 날 이었을 텐데, 날씨가 꽤나 쌀쌀해 따뜻한 유자차가 어울리는 날이었다. 토스트 판매대에서 종이컵에 담긴 유자차를 사서, 골판지 쟁반에 조심조심 들고 찾아갔다. 한걸음 한걸음이 쉽지 않았는데, 이는 유자차가 흘러넘칠까를 걱정한 것, 그녀와 함께할 장밋빛 환상에 대한 기대, 그리고 창피함의 조합 때문이었다.
꽤나 많은 계단의 위기를 거쳐, 문 앞에 다다랐지만 아뿔싸!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office hour를 확인해 보았지만 그렇다고 닫힌 문이 열리는 것은 아니었다.
두 잔을 먹기엔 유자차는 너무 달았다. 그래 두 잔이었으니 달고도 달았다 라고 적는 게 맞겠다.
커피를 마셔야겠다 처음 마음먹게 된 건 따뜻한 커피에 설탕을 듬뿍 넣고, 젓지 않고 커피를 마신 후, 스푼으로 남은 설탕을 먹는 장면이 떠올랐을 때였다. 그 장면은 어느 소설의 한 구절이었는데, 그래 사실 그게 누구의 어떤 소설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책은 그녀가 추천해 준 것이었다. 기억은 흐려져간다. 다만 이렇게 나에게 흔적을 남겼으니, 그래 우리 의연해지자. (사실 내게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그녀가 마땅찮아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이해해 달라. 그렇게 간섭 혹은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 연애 아니겠는가.)
자 이제 책에 나온 대로 커피를 마셔보자. 문헌자료가 존재한다는 것은 나보다 이미 선행된 공부가 있다는 것이며 그걸 그대로 답습한다는 것은 어쩌면 표절일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설탕을 넣기로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에 설탕 스틱 4~5포. 그리고 젓지 않고 컵을 약간만 흔든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시면, 빨대를 타고 커피와 설탕이 동시에 입안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 때 자연스럽게 설탕을 씹어먹게 된다.
자. 쓰지 않은 그리고 바삭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완성되었다.
타 커뮤니티에 게시했던 것을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