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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도시 하코다테

또다시 홋카이도 3 : 도야-하코다테

by 김고양

다행히 도야에 머문 날은 날씨가 맑았다. 파란 하늘과 푸른 호수가 반겨주는 아침이었다. (물론 늦잠을 잤기에, 아침이라고 하기엔 약간은 창피한 시간이었다.) 태풍 덕에 홋카이도 기차선로는 여전히 말이 아니었고, 미리 짜두었던 일정은 쓸모가 없었다. 따라서 오늘은 오늘의 일정을 짜야하는 매우 흥미진진한 휴가였다. 도야호 한편의 제과점에서 아점을 먹으면서 하코다테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20160827_101332.jpg 도야호수 와카사이모 わかさいも 제과점 / 말그대로 아름다운 아점이었다.


버스를 타고 도야 역까지 나왔더니, 다음 열차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남았다. 조금만 걸어가면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역 근처는 작은 동네가 있었다. 편의점 커피를 먹으며 슬슬 산책하기에 좋았다.

C360_2016-08-27-11-51-47-018.jpg 기차를 기다리며 바다를 보면, 낭만적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태풍이란 잔악무도한 놈 때문에 일정을 급하게 바꿔 우연히 들른 도야였지만, 참으로 예쁘고 고즈넉한 곳이었다. 여기는 이렇게 평온한데 다른 곳은 태풍이라니! 약간은 억울했지만 참기로 했다. 도야는 그만큼 좋았고 왠지 태풍을 잘 피해서 이 여행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하코다테는 홋카이도 남서부의 해안도시다. 일본 본토와 연결되는 항구이자, 삿포로에서 출발하는 철도 하코다테선의 종착지다. 본토와 가까워 일본인들의 홋카이도 진출의 교두보가 되는 항구도시였다고 한다. 과거 건물과 흔적들이 조금 있긴 하지만 지금은 그냥 바닷가 작은 마을이 되었다.

따라서 하코다테에서 기차선로가 끝난다. 선로의 끝을 본적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우리의 평범한 삶은 길도 끝도 정해진 것은 아닐까.

20160827_144308.jpg 더는 갈 수 없어요. 여기가 끝이에요.


홋카이도에 신칸센이 들어왔다고 엄청 광고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본토에서 홋카이도 초입까지만 딱 깔아놓은 거라 홋카이도에선 신칸센을 탈 수가 없다. 어쨌든 하코다테다.

C360_2016-08-27-14-44-18-035.jpg 과대광고는 신고해야 한다.


역 앞에는 구르메 페스티벌을 하고 있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하코다테 맛집들이 노점을 차려서 먹거리 장터를 열었을 뿐이었다. 규모가 어쨌든 여행 중에 만나면 반가운 장터다. 당연히 일본풍의 음식일 거라 생각했지만... 세계 음식 장터였다. 여기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을 먹었는데, 그럭저럭 먹을 만은 했지만 문제는 아직도 내가 뭘 먹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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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60_2016-08-27-15-27-35-103.jpg 빵/고기/샐러드/순대집에서 파는 머릿고기편육과 비슷한 어떤것
20160827_153156.jpg 연어/야채/소스/부침개

왠지 이제 보니 저 부침개위에 연어는 둘둘 말아 크레페처럼 먹는 거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코다테는 노면전차와 언덕길 그리고 시오라멘, 야경으로 유명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같이 엄청 화려하거나 매력적이진 않았다. 별 기대를 하지 말고 고즈넉함을 즐기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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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을 타고 베이 에어리어에 갔다. 과거 항구의 물류창고를 개조해 쇼핑몰로 운영하고 있다. 큰 붉은 벽돌 건물이 여러 채 있고, 각종 기념품 및 식당이 있어서 둘러보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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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다테에는 럭키삐에로 라는 지역 프랜차이즈 햄버거집이 있다. 간판 꼭대기의 마스코트만 보면 무슨 햄버거 가게보단 유령의 집이 어울린다. 게다가 왜인지 모르게, 하코다테 곳곳에 엄청 많이 있는데 저 못생긴 삐에로가 도시를 지배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햄버거뿐만 아니라 패밀리 레스토랑처럼 다른 메뉴들이 있다. 인테리어는 꽃무늬와 청록색 벽, 이상한 삐에로가 있어서 정신 사납다. 맛은 나쁘지 않아서 가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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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 에어리어에서 언덕길을 조금 올라가면 무슨 유명한 언덕길이 나온다. 이름도 까먹었는데 무슨 언덕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길이 되게 이쁘고 유명하다고 관광지화를 해놨는데 거품이다. 별거 아닌 걸로 관광지를 꾸며놓아서 심지어 돈을 내는 곳이 아닌데도 바가지 쓴 느낌이 들었다. 뭐 별것도 없는데 다들 사람들이 모여서 사진 찍고 있어서, 나도 한방 찍었다. 이놈들 포장에 소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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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사실 길이 엄청 못생겼거나, 골목이 구린 건 아니다. 과거 상류층의 거리여서 잘 정돈되고 예쁜 건물들도 간혹 있다. 특별한 관광이 아니라 찬찬히 산책하기엔 좋았다. (그러니까 도야에서도, 하코다테에서도 산책이 충만한 하루였다.)



트램 탈 때 일본어를 못한다고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기사 아저씨 옆에 책받침 같은 게 있는데, 저 통역 책받침 들고 하고 싶은 말을 손으로 찍으면 알아서 해준다. 물론 엄청 바보 같을까 봐 나는 안 했다.

사실 저 통역 책받침은 일상에서 필요할 것 같다. 누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면 '그건 아닌데요'를 너에게는 '좋아해'를 고마울 땐 그저 '고마워', 미안할 땐 그저 '미안해'. 이 한마디들이 어려워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망치고 있지 않은가.

C360_2016-08-27-18-21-55-396.jpg 12개 단어로 문장을 열심히 만들어 보자.


한국에는 없는 트램이어서 색달랐다. 트램길에 차도 같이 다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트램과 차는 나란히 가지만 다른 길을 간다. 아니, 다른 길을 가지만 나란히 간다가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너와는 다른 길일지라도, 나란히 가고 싶다.

C360_2016-08-27-18-22-02-111.jpg 사고가 날 것 같았지만 다들 천천히 다니니까 안심하자



밤에는 야경을 보러 가자. 하코다테 산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야경인데, 산까지는 버스나 케이블카(로프웨이)로 갈 수 있다. 물론 버스가 싸니까 나는 버스로 갔다. 산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전망대에선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여기서 보는 야경을 혹자는 세계 3대 야경 혹은 일본 3대 야경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이쁘긴 한데...... 그 정도는 아니다. 이놈들은 서울 야경을 본 적이 없는 게 분명하다. (일몰 시간 전에 가서 시시각각 해가지고 어둠이 내리는 광경을 보면 더 이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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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다테는 양쪽에 바다 사이에 있는 좁은 땅에 위치한 도시라서 흡사 모래시계 같은 야경이다. 나름의 매력이 있는 야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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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캔 우유를 먹었는데 안 먹는 게 나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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