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의 새해.
생각해 보면 모든 게 완벽했다. 12월 31일 프라하 성 앞마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재즈와 성탄절 노래가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거기에 영화 세트장의 한
장면처럼. 새해를 한 시간 앞두고 눈이 내렸다. 우리는 러시아 햄과 소시지를 스위스 칼로
북북 자르며, 샴페인을 마시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져, 앱샌트를 마신 것은
좀 실수긴 하지만.
새해가 밝았고 전날 꽤 과음을 했지만, 속이 나쁜 것도 머리가 아픈 것도
아니었고, S와는 아직 그리 많은 대화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걱정거리가 될
만큼도 아니었다. 그저 아침 여섯 시,
아버지에게 삼 개월 만에 온 문자가. 나를 우울하게 했다.
아니, 너무나 미안함 마음에 저 밖 아름다운 프라하를 뒤로한 채 나를 오후 내내 숙소에 머물게 했다.
3개월 만에 온 문자. 아버지는 나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며, 조금은 무뚝뚝한 아들에게 서운
함을 내비치고 있었다. 가족의 건강, 재정상황, 관계는 잊은지 꽤 오래.
나는 창문을 바라보며 그냥 하염없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사랑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
온 스위스, 그리고 물 흘러 가듯이 와버린 프라하. 좋았다. 죽여주는 배경도 좋았고
늘씬한 여자들을 보며 거리를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근데 난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어
다. 작년 이맘쯤, 벼룩에 물려 힘들었던 시간을 보냈던 일주일. 그 기간 그곳에서 나를
되돌아보며 내가 한 여인을 잊고 왔다면, 아버지에게 온 문자는 내게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 누구이고, 내가 걸어가야 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시간이 지나면, 또 무뎌지고. 그때 스스로 다짐했던 거와 달리 다시 가족에게 수화기를
드는 일이 한동안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새해에 들었던 프라하의 감정을 잊고 그곳의
아름다운 거리와 맛있는 음식을 기억하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두 가지를 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되새겼고, 그녀를 마음속에서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