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했어, 선생님이 많이 미숙했어

한 마디의 무게 - 예은이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진심

by 김해
삽화: 정하람(배재대 게임애니메이션학과 25학번) l

교습소에서 아이들과 웃고, 때로는 울기도 하며 지낸 9년 동안 저는 참으로 많은 실수와 잘못을 우리 아이들에게 했습니다. 일부러 아이들을 마음 아프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맹세코 아니었지만, 그때는 많이 미숙하고 경험이 부족해서 제 제자들을 참 슬프게 했습니다.


제가 실수하고 잘못했던 경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항상 생각할 때마다 가장 기억에 남고 마음이 아픈 학생이 있습니다.


'이예은'


제가 교습소를 개원하고 난 후의 첫 제자입니다. 예은이는 참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처음 예은이가 어머님과 함께 교습소 상담을 받으러 왔을 때도,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어서 그 아이가 마구 편하게 있지는 않았지만 저를 많이 불편해하거나 어려워하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상담을 할 때도,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긴장을 하지도 않고, 제가 꺼내놓은 과자도 '우걱우걱'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흐뭇하고 기뻤습니다.


예은이가 상담 후 제 교습소로 다니기로 결정을 해서 저는 무척 행복했습니다.

'아! 나의 교습소에 첫 제자가 드디어 생겼네! 잘 가르쳐보자!'

의욕이 불끈불끈 솟아올랐죠. 첫 제자라는 타이틀이 주는 설렘과 책임감, 그리고 기대감이 제 가슴을 가득 채웠습니다.


하지만 예은이는 영어 공부를 좋아하지도, 열심히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죠. 예은이가 눈을 반짝이며

"선생님! 세븐틴이라는 가수가 있는데요! 제 친구들이 엄청 좋아해요! 우지, 도겸, 승관, 버논....."

이렇게 저에게 설명해 주고

"울고 싶지 않아 울고 싶지 않아..." 하며 노래를 부르고 제 앞에서 춤을 추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에게 자신의 친구들 이야기도 하고, 학교 수행 평가 이야기도 하고, 현재 느끼는 감정 등 참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죠.


예은이는 애니메이션을 그리는 것, 소설을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보여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정령', 'OO의 신'을 소재로 하는 소설과 그림이었어요.

그 아이의 세계는 상상력이 넘치고 창의적이었습니다.

눈빛이 달라지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손짓이 활발해지는 모습을 보면 그 열정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정령이나, OO의 신에 대해서 딱히 관심도 없고,

그것이 저에게는 재미있는 소재도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수업 진도를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습니다.

예은이는 공부를 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했고, 저는 강사로서 책임감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만 들어주고 공부로 전환해보려 했습니다.

"그렇구나, 정말 재미있겠다. 잠시 후에 더 이야기해 줄래?"

하지만 예은이는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멈추기 어려워했습니다.

눈앞에 있는 아이의 열정과 강사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저는 갈등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너무나도 큰 상처를 주고 말았습니다.


예은이가 그날도 수업은 뒷전이고 자신의 소설, 그림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말했죠.

"예은아! 우리 수업하자. 수업 진도가 많이 안 나갔어.

그리고 정령이나 소설이야기 선생님은 사실 별로 재밌어하지 않아."


말을 내뱉는 순간, 저 자신도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이미 말은 공기 중에 떠돌고 있었고, 예은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눈빛에서 생기가 사라지고, 입가의 미소가 사라졌습니다. 그 아이가 많이 당황하더라고요. 그래도 자기 이야기 들어달라고 하면서

"저 그러면 교습소 안 다닐 거예요"라고 하더라고요.


제 말을 들었을 때, 예은이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아찔합니다.

아마도 그 아이에게는 자신의 세계를 공유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을 텐데,

제가 그 세계를 무가치하게 만들어버린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그때 열등감 덩어리였습니다.

원생도 많지 않고, 내가 특별히 잘 가르치는 것 같지도 않고 이래저래 의기소침해 있고 자신감도 없는데,

예은이가 그런 말 하니까, 화가 났다기보다, 원생도 없는 것 티 내고 싶지도 않았고,

불쌍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면의 불안정함이 제 반응을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그래라, 그럼"


이라고 말해 버렸습니다.

학생에게 큰 상처를 준 너무 후회되는 순간입니다.

다시 되돌리고 싶은 순간입니다.

다섯 글자의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웠습니다.


예은이의 표정이 굳어지더군요.

그 아이의 눈빛에서 배신감, 실망, 그리고 깊은 상처가 보였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아이의 마음속에 제 말이 어떤 의미로 새겨졌을지.

'너는 중요하지 않아'

'네 이야기는 가치가 없어'

'너 없어도 상관없어'...

이런 메시지들이 제 짧은 한마디에 담겨 전해졌을 것입니다.


저는 바로 사과를 했습니다.

"예은아, 선생님이 잘못했다. 방금 한 말은 정말. 잘못했네. 수업도 해야 하고, 그림이나 소설은 지금 아니더라도 다음에 같이 보자."

하지만 제 사과는 이미 생긴 균열을 메우기에는 너무 늦고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예은이는 그 뒤로 계속 태도가 안 좋았습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강의실에 들어올 때의 발걸음이 무거워졌고, 눈을 마주치는 일도 줄었습니다.

가끔 훔쳐보는 그 아이의 눈빛에는 여전히 상처가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예은아, 네가 안 다니면 선생님이 많이 슬프지. 너는 내 교습소의 소중한 학생이야.

선생님이 정말 실수했다. 미안하다"

라고 말을 했지만 예은이는 대꾸도 안 하고, 책만 펴놓고 그림 그리고 있고,

수업 태도가 너무 안 좋았습니다. 저의 사과가 진심으로 전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예은이는 제가 단지 학생을 잃지 않기 위해, 혹은 형식적으로 사과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저의 진심이 전해지지 않았던 것이 지금도 가슴 아픕니다.

제가 더 인내심을 가지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신뢰를 회복하려 노력했어야 했는데,

저는 또다시 성급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또 바보 같은 실수를 했습니다.

"예은아, 선생님이 싫으면, 교습소 안 나와도 된다. 싫은데 억지로 나올 필요 없어. 부모님께는 내가 나오지 말라고 했다고 말씀드리고, 나오지 않아도 돼."

이 말은 제 좌절감과 무력감의 표현이었을 뿐, 해결책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예은이는 조용히 자신의 짐을 싸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교습소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날의 뒷모습이 지금도 선명히 기억납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발걸음을 질질 끌며 나가던 모습.

제가 더 이상 붙잡지 못했던 그 순간이 지금도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저는 정말 학생에게 너무 큰 잘못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분명히 해야 했습니다.

참다 참다 학생에게 내가 정령이나, 신에 대해 관심 없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제가 별로 재밌어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했어야 했고, 또한, 학생이 장난이더라도

"저 교습소 안 나와도 돼요? 저 없어도 돼요?"

이런 말 할 때 학생에게

"너는 없어도 되는 학생이야"

라는 느낌을 주는 일은 없어야 했습니다. 모든 학생은 소중하고, 모든 학생의 이야기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교육의 목표를 함께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야 했습니다.


저는 학생을 배려하지 않는, 학생을 생각하지 않는 미숙한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학생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면 진심으로 많이 미안하고 후회합니다.

한 마디의 말이 얼마나 큰 무게를 가질 수 있는지, 한 번의 반응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예은이는 아마도 지금 성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가끔 거리에서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을 보면 예은이가 생각납니다.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성장했을지,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는지, 그때의 기억이 그 아이에게 어떤 상처로 남아있는지...

만약 다시 만난다면, 그때 하지 못했던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고 싶습니다.


"예은아, 그때 선생님이 네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네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존중하지 못했어.

네 상상력과 창의성은 정말 특별했는데, 그걸 알아주지 못했어.

선생님으로서 더 많은 이해와 인내를 보여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저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선생님입니다.

다만, 저는 과거의 실수에서 머물러 있고 싶지 않습니다.

그 실수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지금의 제 학생들에게만큼은 그런 실수를 다시 반복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예은이와의 경험은 제게 값진 교훈을 남겼습니다.


완벽한 선생님은 아니더라도,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아이들을 배려하고, 아이들을 아끼는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잘 가르치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실력 향상으로 이어지게 하는 유능한 강사가 되고 싶습니다.


오늘도 부족하지만 저는 앞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예은이에게 배운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매일 조금씩 더 나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예은이에게, 늦었지만 진심을 담아 전하고 싶습니다.

"미안했어, 선생님이 많이 미숙했어."



"선생님의 작은 다짐: 학생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진심으로 귀 기울이며,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더 나은 선생님이 되자."



* 글에 등장하는 '이예은'은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사용한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