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아나운서' 떼고, '다시, 나로' 홀로서기 위한 자발적 방황기
학창 시절부터
나는 1등을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수학 경시대회를 나가고
육상 대회에 나가도
1등은 내 몫이 아니었다
그래도 가까스로
메달을 딸 수 있는 정도의 성적,
나는 늘 3등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성장에 욕심이 많았다
내 앞에 있는 1등을 보고 배우면서
치열하게 관찰하고 흡수했다
나만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습관도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뱄던 것 같다
그렇게 따라가다 보면 1등은 아니어도
꽤나 경쟁력 있는 3등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팀 게임이 좋았다
육상 선수였던 중학생 때
성남시 대표로 경기도대회까지 출전한 종목은
높이 뛰기와 400M 계주였다
개인 종목인 높이 뛰기는 2등이었지만
팀 종목인 400M 계주에서는
나는 처음으로 1등을 했다
개인으로는 불가능했지만 팀으로는 가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함께 성과를 내는 팀 게임이 나는 좋았다
생각해 보면 내 앞의 1,2등에게
3등인 나는 꽤 좋은 파트너였을 것이다
자신들에게 없는 것을 갖고 있으면서
자신들만큼 잘하지는 않는 나의 존재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지 않는,
꽤나 든든한 팀메이트였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우리 팀이 최고가 되면서
다른 팀의 1,2등 보다 나은
3등일 수 있었다
믿음
때로는 특이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다름이 아닌 특별함으로 바라봐주는 것
누군가가 할 수 없는 빈틈을 채운다는 신뢰
나는 굳이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팀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묵묵히 그 역할을 수행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보람도 의미도 찾을 수 있었고
팀원들의 신뢰와 믿음을 기반으로
나는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나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
모든 결정의 기준에는 '나'가 있고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내가 팀을 위해 희생한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팀원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확인하면
나에게는 자연스럽게 책임감이 생겼다
이들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다짐으로
기꺼이 그 일을 해나가는 것
'나를 믿어준다'는 확신이 생기는 순간
이 팀은 더 이상 팀이 아닌 나 자신이 된다
'나의 확장'인 것이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라는 범위에 이 팀을 넣는다
이제부터 이 팀은 나의 일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이 팀을 사랑한다
기꺼이 책임을 다한다
이 팀은 또 다른 '나'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 집에서도
나는 여전히 3등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1,2등은 꿈도 꾸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팀 게임이니까
이 팀을 최고로 만들면 된다
이 팀이 최고가 되면
곧 내가 최고가 되는 것이니까
팀 게임에 최적화된 나는
지금 이 팀이 참 좋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