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 당신은 어떤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가?

[김한별 아나운서의 '아나운서 멘토링' #26]

by 스타킴 starkim


당신은 어떤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가?

(김한별 아나운서의 '아나운서 멘토링')


그럴 때가 있다. 너무 명확해서 오히려 당황스러운 경우이다. 어떻게든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려고 고민하고, 각종 꼼수나 기교를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며 판을 뒤엎으려고 해도 오히려 혼란스럽기만 하다. 남들과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려는 순간 오히려 자신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꼴이 된다. 말 그대로 ‘정공법’이 필요한 경우이다. 이런 문제가 그렇다.

‘어떤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가?’

꼼수는 필요 없다. 기교 따위를 부릴 틈도 없다. ‘정공법’ 이런 유형의 문제는 옆, 뒤, 앞이 아닌 정면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이다. 필자가 대학교에서 ‘방송 원론’이라는 수업을 들을 때 그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들은 기말고사 문제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먼저 그 수업을 들은 선배들에게 족보를 요구하지 않았다. 족보 따위가 필요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기말고사 문제는 늘 이것이었다.

‘좋은 방송이란 무엇인가?’

수업을 열심히 들은 학생이나, 수업 시간에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었던 친구에게도 똑같은 문제가 출제됐다. 우리 모두는 첫 시간부터 이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스터디 그룹을 하고, 다른 선배의 족보를 참고한다고 도움이 될 리 없었다.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이 보는 책은 비슷한 답을 생산할 뿐이었다. 좋은 점수가 나올 리 만무했다. 남들이 쓰지 않으면서 교수님을 만족시킬 답이 필요했다.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외워서 그저 많이 작성한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런 답은 이미 오래전부터 선배들이 써왔을 것이며, 내 옆에 있는 친구도 작성할 내용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험으로 기억한다. 교수님께 문제가 너무 어렵다며 애교 섞인 투정을 부리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면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좋은 방송을 만들고 싶다는 놈들이 이 문제가 왜 어려워?”

당신은 어떤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가?


생각해보면 이런 유형의 문제는 언론사 시험에서 꽤 많이 나온다.
KBS의 경우, 표현만 바꿨을 뿐 ‘공영방송의 역할’과 ‘자신의 직종’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다른 언론사도 마찬가지이다. 2013년 EBS는 ‘ 는 왜 PD가 되고 싶은가?’라는 주제의 작문 문제를 출제했으며, 표현이나 방법만 다를 뿐 ‘10년 후 나의 모습’이나 ‘기자의 미래’ 등과 비슷한 주제로 계속 출제한다. 자신이 꿈꾸고 목표로 하는 직장, 직업, 직종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묻는다. 평소 어떤 고민을 했는지를 묻는다. 작문이 아니라면 면접을 통해서도 한 번쯤은 접해볼 문제들이다. 가장 기본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공법, 정면 돌파가 필요하다.

‘왜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가?’
‘어떤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가?’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은가?’
‘어떤 아나운서를 좋아하는가?’

표현만 다를 뿐 사실 모두 같은 말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아나운서는 무엇이며, 당신은 앞으로 어떤 아나운서가 되길 원하고 준비했는가? 본인은 ‘아나운서’라는 직종에 대해서 어떤 고민을 얼마나 치열하게 했는가? 당신의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묻는 것이다. 아나운서뿐만 아니라 언론인을 꿈꾸는 모두에게 필요한 부분이다.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좋은 언론인을 꿈꾸면서, 좋은 언론을 만들고 싶으면서 이 부분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자격 미달이다. 정작 중요한 부분을 고민하지 않고 상식 준비나 방송 진행과 같은 ‘기술’적인 것만 준비한 것이다. 수험생의 목표는 ‘시험 합격’이 아니다. 시험 합격을 넘어 그 이후의 모습까지 그릴 수 있어야 합격할 수 있다. 준비돼 있지 않다면, 운 좋게 합격했어도 버티기 힘들다. 힘든 순간 나를 버티게 해주는 직업의 사명감이고 가치관이며, 나의 ‘꿈’에 대한 철학이기 때문이다.

작문이라는 것이, 면접의 대답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면접은 말로, 작문은 글로 표현하는 것일 뿐 결국은 ‘나를 표현하는 과정’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내가 고민했던 것들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내 이야기’가 필수다. 이 과정에서 이 사람이 회사에, 이 직종에 어울리는 사람인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들은 어렵다고 미뤄놓을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내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내가 정말 아나운서를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내가 정말 꿈꾸는 아나운서는 어떤 모습인지? 내가 잘 할 수 있고, 하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은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때로는 많은 수험생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보다 더 ‘멋있게’ 포장하거나, 회사의 논조나 분위기를 생각해서 나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잘 못 된 접근법이다. 심사위원이 원하는 것은 대학 시험 답안지 같은 ‘정답’이 아니다. 잘 쓴 모범답안 보다 거칠지만 진솔한 생각을 원한다. 심사위원이 원하는 것은 ‘당신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다른 꼼수는 통할 수도 없고 통하지도 않는다. 심사위원들의 출제 의도는 명확하다. 솔직한 생각을 들려주고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했는지를 평가받으면 되는 것이다.
합격한 모두가 열심히 했고, 모두 다른 방식으로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이런 질문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정답’은 아닐지라도 어렴풋하게나마 자신만의 ‘해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해답이라는 점이다.
명심하자. ‘어떤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가?’에 대한 어렴풋한 해답을 찾을 때쯤, 그때 비로소 합격 소식을 듣게 된다는 사실을.
(여기서 ‘어렴풋한 해답’이라는 표현은 현직 아나운서인 필자도 현재 ‘정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을 하는 누구에게나 끝없는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분석이 필요하다


<새로운 답안>

“제발 부탁이니 자네만 알고 있어주게.”
성격 좋고 유쾌하기만 했던 학장님이 힘겹게 꺼낸 고백이었다. 함께 알고 지낸 2년 동안 단 한순간도 상상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본인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비밀을 고백하는 학장님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다르게 힘없고 의기소침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난 더욱 따뜻한 미소로 학장님을 위로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에게는 ‘아나운서’라는 꿈이 생겼다.
성남의 작은 공부방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집이 어려워서 부모가 모두 일터에 나가야만 하는 중학생들. 밤 10시에나 집으로 돌아오는 부모는 아이들을 집에 놔두고 일을 해야만 했다. 아이들과 가정을 위해서였다. 그 아이들을 위한 작은 공부방에서는 8명의 교사들이 돌아가며 저녁밥을 해 먹이고, 부모가 오는 시간들이 아이들에게 수학과 영어, 국어 등을 가르쳤다. 사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이었다. 영리 단체가 아니었기에 운영은 늘 힘들었다. 하지만 성격 좋고 유쾌한 학장님은 늘 걱정하지 말라며 특유의 너털웃음만을 보였다.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교사들도 걱정 없이 아이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고 교사들은 거리로 나가 모금 운동을 해야 했다. 공부방을 살리기 위해 추운 겨울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돌리며 호소했다. 학장님이 나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한별 선생님은 대학교 축제 MC도 보고 했으니 잘 하겠지? 부탁해.”
교사 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됐을 때였으니 아무것도 몰랐지만 오로지 공부방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6시간을 외쳤다. 추운 겨울날이었지만 춥지 않았다. 아이들과 공부방을 살리기 위해 열심히 외쳤다. 다행히 후원이 손길이 이어졌고, 그 후 2년 동안 몇 차례의 모금활동을 했지만 공부방은 운영됐다. 그때마다 난 마이크를 잡았다.

‘무대 공포증, 마이크 공포증’
학장님이 혼자 간직한 비밀이었다. 평소 그렇게 유쾌하고 말도 잘하는 학장님은 마이크만 잡고 무대에만 올라가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말을 더듬었다고 한다. 남들은 몰라도 본인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이고 콤플렉스라고 말했다. 그때 떠올랐다. ‘말하고 싶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낼 수 없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말이다. 단순히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던 내가 누군가의 목소리,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유난히 의기소침하던 학장님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던 그 순간의 뜨거움을 잊을 수가 없다.

요즘 세상은 자꾸 높이를 강조한다. 꽤 많은 사람들이 높이 올라가려고, 소위 ‘뜨는 것’에만 주목하며 ‘한방’을 노리기도 한다. 높이나 외적 규모가 성공의 기준이 된 지도 오래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것들이 높이만 올라간다고 모두 옳은 결과로 나타나는지는 다시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이어령 씨는 ‘젊음의 탄생’에서 ‘뜨는 것’과 ‘나는 것’의 차이를 설명했다. 일본식 가오리연과 한국 식 방패연. 한국식 방패연에는 가운데 구멍이 있다. 그래서 처음에 뜨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일본식 가오리 연은 구멍이 없어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금방 뜬다. 처음 연을 날리는 사람은 가오리연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것은 ‘뜨는’ 것이지 ‘나는’ 것은 아니다. 방패연은 처음 뜨기가 어렵지만 한번 뜨기 시작하면 오랫동안 날 수 있다. 바람을 활용하는 것이다. ‘한방’을 노리는, 일단 높이 뜨기만을 바라는 사람은 절대 날 수 없다. 처음 나를 띄운 바람 이상의 바람을 만나면 추락하고 만다. 하지만 방패연은 단순히 높이 뜨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바람을 충분히 이용할 때까지 기다리고 그 후에 뜨기 시작한다. 바람이 강해지면 더 강해진 바람을 이용해 더 오래 날아오른다. 단순한 높이가 전부는 아니다.

‘높이보다 중요한 깊이의 가치.’
아버지는 항상 나무의 높이보다 보이지 않는 뿌리의 깊이를 보라고 가르치셨다. 사람들이 자꾸 위를 향해 높이 오르려고만 할 때 보이지 않는 뿌리, 그 깊이에 주목하라고 강조하셨다. 어릴 때에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어렴풋하게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세상이 높이만 올라가려고 할수록 그 높이만큼 생기는 그늘이 있다. 그리고 그 그늘 안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사람은 더 많아진다. 방송과 채널이 많이 질수록 오히려 그 목소리를 듣기는 힘들어지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더 큰 목소리, 더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소외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낮아져야 한다. 낮아짐과 동시에 나의 깊이에 주목해야 한다. 시련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낮은 곳의 목소리를 듣고 전달하려면 뿌리를 깊게 내리고 더 안정적인 것에 무게를 둬야 한다. 낮음과 깊이는 맞닿아 있다.

“아나운서를 잘 모르는 사람은 아나운서가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아나운서를 조금 아는 사람은 아나운서가 별것 아닌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아나운서를 잘 아는 사람은 아나운서가 소중한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은퇴한 KBS 원로 아나운서가 본인의 책에 쓴 말이다. 아나운서는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도, 앵무새처럼 다른 사람이 써준 원고나 읽는 별것 아닌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아나운서는 소중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뉴스나 방송을 하고, 우리말을 지키며 세상에 소식을 전하는 것만이 소중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낮은 곳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사람이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세상을 보다 넓고 아름답게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을 따뜻하고 의미 있게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런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 기꺼이 낮은 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되고 싶다. ‘높이’보다는 ‘깊이’의 가치를 알고,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표현할 수 있는, 소중한 일을 하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 그리고 먼 훗날 아나운서로 시간을 보내고 이 글을 다시 봤을 때, 그 다짐이 계속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그런 아나운서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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