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양귀자의 『모순』, 2013년에 나온 오래된 소설책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 몇 년 사이, 마치 역주행하듯 다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자주 등장한다.
나 역시 예전에 읽었지만 내용이 가물가물해져, 결국 나도 이 ‘역주행 열차’에 다시 올라탔다.
소설의 주인공은 25세 미혼 여성 ‘안진진’.
그녀는 시장에서 내복을 팔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어머니, 집을 떠돌다 가끔씩 돌아오는 방랑자 같은 아버지, 그리고 조폭의 보스를 꿈꾸는 엉뚱한 남동생과 함께 살아간다.
이 소설에서 강조되는 인물 중의 한명은 진진의 어머니와 일란성 쌍둥이 자매인 이모이다. 이모는 부유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삶이 너무 지루해서 권태에 빠져 있다. 반면, 진진의 어머니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현실의 문제들을 처리하느라 지루할 틈조차 없다.
똑같은 얼굴을 하고 태어난 두 사람의 삶이 이렇게나 다르게 흘러가는 것에 대해서 진진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진진은 이 모순된 삶의 결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사랑과 원망, 충돌과 이해 사이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선다.
이십대란 나이는 무언가에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p.17
나는 똑같은 조건 속에서 출발한 두 사람이 왜 이다지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그만 삶에 대한 다른 호기심까지도 다 거두어버렸다. 이런 것이 운명이라면, 그것을 내가 어찌 되돌릴 수 있으랴. 인생은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이것이 사춘기의 내가 삶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어머니의 경험이 나에게서 멋진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동기 유발을 앗아가 버린 것이었다.
p.20
어머니는 자신 있다는 듯 하하, 웃었다. 어머니의 웃음은 나날이 힘차진다. 어머니에 대해 연구할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것, 불가사의한 활력일 것이었다. 전혀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어머니는 끊임없이 자신의 활력을 재생산해서 삶에 투자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의 재생산 기능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젊어서는 그렇게도 넘치던 한숨과 탄식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삶에의 모진 집착뿐이다. 내 어머니는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새로 태어난다.
p.64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참 할 말이 없구나. 그것이 나의 불행인가봐. 나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내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것 말야. 어려서도 평탄했고, 자라서도 평탄했으며,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이후에는 더욱 평탄해서 도무지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한 삶.
그래서 그만 끝낼까 해.
p.283
삶 속에 존재하는 ‘모순’을 인정하는 것.
아마도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그것 아닐까.
정형화되지 않은 가족, 감정의 불협화음.
그러나 그 안에서도 묘하게 따뜻하게 빛나는 관계들.
『모순』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덮여 있던 수많은 감정의 결을 하나하나 들추어 보이며, 읽는 이로 하여금 자기 가족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젊은 시절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땐, 진진의 시선과 말들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읽으니, 오히려 진진의 엄마와 이모의 삶이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한다. 특히 진진의 이모처럼, 스스로 삶에서 멀어지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도 생각보다 자주 보게 된다.이 소설에서는 지루해서..... 라고 표현했지만,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과 무게가 느껴져서 한참을 울었다.
인생은 짧다.
그러나 삶 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