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으로
나는 오랫동안 슈퍼우먼으로 살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불리지도 않았지만
스스로에게는 늘 그 역할을 부여했다.
일을 해내고, 아이를 키우고,
집안의 균형을 맞추는 일까지
빠지지 않고 감당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게 어른이 되는 일이고,
책임을 다하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꽤 많은 것을 해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절의 나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하루하루는 분명히 존재했는데
돌이켜보면 장면 없이 흘러간 시간처럼 느껴진다.
슈퍼우먼으로 살았던 나는
늘 움직이고 있었지만
기억 속에서는 점점 옅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그 방식이 나를 살리고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완전히 무너진 건 아니었지만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는
조용한 신호가 반복해서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크게 바꾸는 대신
아주 작게 내려놓기 시작했다.
다 해내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만들고,
누군가를 돌보지 않는 시간을 허락하고,
아무 쓸모없는 선택을
하루에 하나쯤은 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건 용감한 결단이라기보다
살아남기 위한 조정에 가까웠다.
그렇게 살다 보니
조금씩 나라는 사람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순간에 숨이 편해지는지,
어디까지가 괜찮고
어디부터는 무리인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처음으로 대우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슈퍼우먼이 되려고 애쓰지 않는다.
모든 걸 해내는 사람보다
하루의 중심에
나를 남기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졌다.
완벽하지 않아도,
자주 흔들려도
그날의 내가 기억에 남는 삶을 선택한다.
여전히 일하고,
여전히 돌보고,
여전히 바쁜 날들도 많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나를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는다.
잠깐씩 빠져나오고,
숨을 고르고,
다시 돌아온다.
그걸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는 충분하다.
슈퍼우먼이 아니라
그냥 나로 산다는 것은
덜 애쓰는 삶이 아니다.
나를 희생하지 않으면서
삶을 계속해나가는 방식이다.
가끔은 생각한다.
이 사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지금의 나는 달라져 있을까?
아마도 어떤 부분은
덜 지쳤을 것이고,
어떤 시간은
조금 더 기억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나로부터라도
이 방식을 선택하기로 했다.
앞으로의 시간만큼은
버티는 삶이 아니라
즐기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