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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 Aug 19. 2022

16. 인본적 스마트시티

자율주행차는 아기와 할머니중 누구를 살려야 하나?

스마트 도시의 원래 목적은 똑똑한 정보통신기술을 사용하여 도시 기능을 정보화하고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에 비해 기술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속도는 더디며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자율주행자동차 등 화려한 기술집약적인 스마트시티 서비스가 제시되지만 도시는 익숙하지 않는 새로운 딜레마와 기술 실패에 직면하고 있다.


◆ 스마트 기술의 딜레마와 기술 실패

2014년 MIT 미디어랩(MIT Media Lab)의 연구원들은 모럴 머신이라는 실험을 설계하였다. 모럴 머신은 자율주행 자동차가의 겪을 수 있는 9가지 형태의 사고 상황, 가령‘자율주행차는 아기와 할머니 중 누구를 살려야 할까?’, ‘사고 직전 직진 차선 위에 3명의 노약자가 있고, 바리케이드로 방향을 바꾸면 차안에 있는 젊은 승객 3명이 죽는 상황에서 차선을 변경해야 할까?’와 같은 비교 질문으로 누구의 생명을 우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수집하는 플랫폼이다. 

Moral Machine 시나리오 (MIT Media Lab, 2014)

이 과정에서 생성된 데이터는 문화에 따른 집단적 윤리의 우선순위에서 상당히 많은 차이가 드러냈다. 실험결과 프랑스, 그리스 등의 개인주의 문화권의 사람들은 한국이나 싱가포르 같은 집단주의 문화권 사람들에 비해 젊은이를 살리거나,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선택을 하였다. 또한 법규가 비교적 잘 갖추어지지 않은 빈곤국은 파란불에 횡단하는 보행자들에 비해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에게 더 관대하며, 경제적 불평등이 큰 국가는 사회적 지위 격차에 따라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실험은 자율주행 도입을 검토하는 도시들이 자율주행 도시서비스를 설계하고 규제를 만드는데 있어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제조사는 중국 도시를 위해 보행자보다 운전자 보호를 우선시하는 프로그램으로 내장된 자율주행차를 제시할 것이다. 이처럼 기술의 도시적 적용은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측면과 시민력에 영향을 받는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사고상황에서 노약자, 보행자, 운전자 중 누구를 살려야 할까?


이런 기술적 딜레마에서 한발 더 나아가 스마트시티는 사회문제해결에 기술실패를 겪을 수 있다. 기술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여기 늘어나는 교통체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항조우가 채택하고 있는 인공지능기반의 해결 방식을 살펴보자. 시티브레인이라는 인공지능 엔진은 도로위의 CCTV 영상데이터를 실시간 수집하여 기계 학습하여 교통신호를 조작한다. 차량의 정체가 길어지면 녹색등을 길게 주고, 차량소통이 원활하면 빠르게 신호등을 바꿔줌으로써 교통 정체구간을 해소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교통체증으로 야기한 도시의 근본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 물론 단기적으로 교통문제가 해결된 듯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상황에 마주치게 될 것이다. 도로의 교통흐름이 원활해지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자기 차를 가지고 도로로 나와서 차량은 늘어나고, 대중교통 수송량은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대중교통 수송분담율과 교통흐름은 상호 길항하는 요인이다. 도시는 대중교통 수송분담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항조우 City Brai

스마트 기술을 도시문제에 적용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고 총체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항조우와 비슷한 교통체증문제 해결을 위해 암스테르담이나 바르셀로나 같은 도시는 도심내 자동차 진입을 막거나 도심의 주차료를 높여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같은 문제에 전혀 다르게 접근한다. 또한 과감하게 자전거, 퍼스널모빌리티를 위한 차선을 확대하여 오히려 자가차량 이용을 불편하게 함으로써 전체 도시의 교통흐름을 조절한다.

중앙차선을 자전거 전용도로로 내어준 암스테르담의 실험


여기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최근 많은 도시들이 앞다투어 공공배달앱, 공공 택시호출앱, 공공 숙박앱을 만들어 낸다. 명목은 수수료정상화다. 하지만 실제 플랫폼을 공공이 직접 운영할 수 없기에 민간위탁방식으로 추진하며 홍보와 지역화폐카드와 연결해준다. 민간시장을 교란을 넘어 민간플랫폼에 대응하는 민간 플랫폼을 위해 세금을 충당한다는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플랫폼을 지원하며 축적한 데이터의 소유권 문제, 비식별화된 공공데이터로 공개가능성의 문제, 운영비용과 지역화폐 비용을 직접 소상공인과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가의 문제 등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서울시가 2017년 12월 한국스마트카드와 손잡고 개발한 택시호출앱 '지브로'가 소비자와 택시기사 양쪽의 외면을 받고 결국 실패했던 사례들을 교훈 삼을 필요가 있다.   

주요 지역 공공배달앱 운영현황


대구에서 운영중인 ‘대구로’의 성공사례는 눈여겨 볼만하다. 공공이 통제하는 운영방식을 버리고 지자체 차원에서의 홍보와 지역화폐 프로모션 지원을 제외한 전권을 지역기업에게 맡기는 민관협력 방식의 사업추진을 통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중물로써 공공 재정지원과 지역화폐 프로모션이라는 유인이 없이 자생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하는 것이 관건이다.


◆ 인본적 스마트시티의 등장

 스마트시티 개념이 등장한 이후 지난 20년동안 몇 차례 진화과정을 겪었다. 이는 스마트시티가 사용하는 기술의 진화, 시민력의 성숙, 해결할 도시 난제들의 변화에서 기인한다. 애초 스마트시티는 도시기능의 전산화 혹은 정보화가 목적이였다. 스마트시티는 지금까지 도시기능의 전산화(1단계 U-city), 데이터 표준화(2단계, 데이터중심/시민참여형 스마트시티), 도시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화(3단계, 지속가능형 스마트시티), 인본적 디지털화(4단계, 시민주도형 스마트시티)로 단계별로 진화하여 왔다. 오늘날 스마트시티는 기술을 통한 도시 기능은 효율성도 추구하지만, 시민이 문제해결을 과정에 깊이 개입하여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책임지는 미들 업앤다운(middle up & down) 방식을 추구한다. 각 도시는 자기 수준에 맞는 스마트시티를 선택한다. 가령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이나 항조우 같은 도시는 여전히 탑다운 방식으로 도시 기능을 정보화하는데 중점을 두는 반면 싱가포르는 데이터를 표준화하여 도시를 디지털 트윈화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 헬싱키,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 같은 도시는 지속가능과 탄소중립 같은 도시의 근본적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스마트시티를 추구하는 반면, 베를린 같은 도시는 도시문제에 시민의 적극적인 개입과 인본적 기술 결합을 중시한다. 어떤 스마트시티를 추구할 것인가? 그것은 선택의 문제이며 그 도시의 시민력의 방향이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다. 

시민주도형 스마트시티를 만들어 가는 베를린 City Lab


 도시가 스마트시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기술보다 시민들이 체감하는 도시문제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스마트시티는 시민이 문제해결 기술을 체감하는 효능화 과정이자 시민들이 기술을 수용해가는 사회화과정이기 때문이다. 스마트시티의 성공과 실패의 판가름하는 것도 시민이 겪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나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해결하는 기술 적용 능력에 달려있다. 이는 시민들과 사회계약을 새롭게 쓰는 문제이자, 스마트시티를 운영하는 거버넌스의 문제이다. 


 ◆ 인본적 스마트시티의 운영

 인본적 스마트시티 운영은 공공도 실패할 수 있다는 관용이 필요하다. 실험을 통한 작은 실패들을 축적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시민들과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작은 실험 예산을 제공하여 리빙랩으로 솔루션을 점검하며 경험과 지식을 축적함으로써 실패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도시는 체계화해야 한다. 최근 대구테크노파크가 자치경찰위원회와 함께 만들고 있는 ‘대구형 스마트 범죄예방 환경설계(셉티드, CPTED) 플랫폼 구축’은 이런 인본적 스마트시티의 좋은 사례를 제공한다. 셉티드는 시민들과 함께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인위적 환경을 설계하는 것으로 시민들의 주도적인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감시를 넘어선 시민개입형 범죄예방 환경을 디자인(CPTED)이 필요하다.


본 사업을 통해 시민들은 대상지역의 범죄환경 문제을 함께 정의하고, 인공지능비전이나 지능형 조명등 같은 스마트한 솔루션을 함께 디자인하며 리빙랩으로 실험함으로써 높은 효능감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시민중심의 인본적 스마트시티가 확산될수록 도시는 활력과 회복력을 가진 건강한 도시가 될 것이다. 인본적 스마트시티를 선택하여 기술과 사회문제의 균형감각을 가진 시민력 높은 도시가 많아졌으면 한다. 


<참고자료>

1. 대구시민 기대받은 대구형 배달앱 대구로…이용자 반응 싸늘(2021, 대구일보)

2. 수수료 2%에 지역밀착형 할인까지, 고객 몰리는 ‘대구로’(2022,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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