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다른 반대편으로 건너가봐"
내 인생 영화
천칭 : 저울의 유사어를 뜻하는 이것은, 지레의 균형의 원리를 이용해 물체를 측정하는 장치라는 사전적 의미, 즉 이것과 저것의 사이를 헤아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천칭 자리로 태어난 나의 무의식의 관심사는 경계, 문지방, 한계점, 문턱 이었나보다. 20년 넘는 디자이너 생활 중, 나의 디자인 주제는 ‘Old vs. New’, ‘Less vs. More’, ‘Solid vs Void’ 등 경계를 가져다 쓴 적이 무척이나 많았다. 경계에 대한 명확한 나만의 정의가 없어서일까를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경계’란 광범위한 의미에서 유연성을 말할 수도 있지만, 그 어느 쪽도 아닌 애매모호한 우유부단함으로도 연결될 수 있는 치명타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경계’라는 관점에 대해 내 별자리가 천칭자리라서 혹시 늘 중간을 유지하려는 나의 운명일거라 믿었던 적도 있었다.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흑인과 백인의 차별이 심했던 1962년, 교양, 품위, 완벽주의자 천재 피아니스트인 ‘돈 셜리’는 입담과 주먹으로 살아가던 ‘토니 발레롱가’를 운전사 겸 보디가드로 고용하여 당시 위험하기로 소문난 미국남부투어 공연을 하기로 한다. 생각, 행동, 취향, 가치관 등 너무 다른 두 사람은 ‘흑인의 남부 여행을 위한 <그린북(Green Book), 피터 페럴리 감독, 2019년작>’ 에 의존해서 특별한 남부 투어를 시작한다. 어느 한쪽의 커뮤니티에 속하지 못하고 그 경계선에 머물고 있는 존재들-그러한 주인공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한 것이 마치 늘 나에게서 보여지는 애매한 모습이 닮아서 마음을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난 충분히 흑인이지 않고, 백인이지도, 충분히 남자이지도 않다. 그러면 난 대체 뭐야?” 당시 흑인=하층민, 농부, 후라이드 치킨을 좋아한다는 편견이 있었으나, 주인공 돈 셜리는 일반적인 흑인의 커뮤니티에 포함될 수 없었다. 토니 발레롱가는 백인이긴 하지만 완전히 백인이 아닌 역시 경계선의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그 경계의 반대편으로 건너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한번 다른 반대편으로 건너가봐” 라는 해결책은 두 주인공에게 함께 적용된다. 토니는 셜리 박사에 의해 무질서, 폭력의 경계에서 교양과 품격의 세계로 차츰 인도하게 되고, 토니는 흑인의 모든 생활방식을 의도적으로 거부한 셜리 박사에게 켄터키 치킨을 건네면서, “한번 해봐”라는 경계 넘기를 시도한다. 결국 두 주인공 모두가 물리적 경계를 넘어 심리적 경계 허물기에 도전하는 그들의 ‘용기’ 가 이 영화의 주제이다. <그린북>은, ‘나는 어떤 경계에 서있고, 또 어느 만큼의 용기를 내어 저 건너편으로 가봐야 하나’를 생각하게 했다면 나에겐 2019년 내 인생영화라 해도 부족하지 않다.
또 올해는 어떤 영화가 내 마음을 움직일지 아직은 모르겠다. 내 인생 영화라 하기에는 때와 장소 그리고 나의 상황에 따라 너무도 달라지는 나의 영화에 대한 taste 때문이다. 2018년까지만 해도, 약 30번 정도를 본(어디 가서 얘기하긴 창피하지만), 좀비 영화인 ‘월드워-Z’가 내 인생 영화였으니 말이다. 영화가 너무 멋지고, 주제가 무겁고, 영화제 상도 많이 받고, 평론가들의 평가도 좋고, 교훈적이고, 감동적이고, 사회적 이슈가 있어야만 인생 영화가 되는 것일까!
그냥 내 마음에 훅 들어오고 ‘나’에 대한 단 한번의 고찰을 하게 된다면 그게 내 인생 영화가 되는 것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