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
어김없이, 비엔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Satisfaction’ 시그널 음악이 흐르며 그만의 특유의 숨쉬기가 포함된 오프닝 멘트를 날린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잠시 숨 쉼) 출발합니다!”
그렇게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매일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며, 현재 대한민국 국내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이 되었고, 며칠 전 ‘배캠’은 30주년이 되었다. 30주년 기념으로 영국 BBC방송국에서 라이브방송도 진행하고, 기자회견도 하고, MBC 다큐멘터리에서는 특집으로 ‘시리즈M-더 디제이’가 방영되었다. 달력에 적어놓고 그 시간에 앉아 본방 사수를 하며 난 잠시 생각에 잠긴다.
“대체 어떻게 30년동안 하나의 직업을 가질 수 있었을까?”
배철수는 자신이 6개월짜리 DJ였다고 옛날을 떠올렸다. 1980년 대학가요제 이후 그룹사운드 ‘송골매’의 리드보컬이었던 배철수는 멤버들의 잦은 인 아웃에도 꿋꿋하게 그룹을 유지하였으며 1990년에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시작하면서 ‘1년은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그렇게 소소한 목표를 세운 것과 다르게, 그는 30주년을 맞는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청취율에서 한번도 1위를 하지 않은 프로그램이 30년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만의 음악에 대한 뚝심이었다. 그의 말투는 거칠었고 타협이 없었다. 방송 초기에는 청취자와 언쟁도 벌일 정도로 투박했으며 제 할 일을 하는 고집쟁이였지만, 욕심쟁이는 아니었다. 30년을 할거라는 욕심도 없었다. 세월을 거듭하면서 그는 20,30대보다 50,60대가 더 멋지게 늙어가고 있다. 그의 가치관은 여전하지만, 표현과 사고방식은 더욱 유연해졌다. 그렇게 배철수 DJ는 그의 직업에 서서히 물들고 있었을 것이다. 이젠 배철수의 직업은 아마 ‘가수’ 가 아닌 ‘DJ’ 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직업은 뭔가요?” 라고 묻는다면, 난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1994년 11월 1일에 나의 첫 인테리어 회사 직장의 시작이었으니, 내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진지 정확히 25년 5개월째다.
90학번이었던 나는 그냥 저냥 학력고사 점수에 맞춰 들어간 학교와 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나의 학교생활은 무료했고, 미래에 대한 딱히 꿈이 없는 나날이었다. 그러던 대학교 3학년 전공선택 과목 중 ‘실내제도기초’ 과목이 있었는데, 요즘은 쓰지 않는 책상 만한 제도판에 트레이싱지를 깔고 평면도, 입면도를 그리는데,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있나 싶었다. 내 숙제를 다하고, 친구들 숙제까지 전부 해주며 난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하며 밤새는 줄 몰랐다. 나의 잡(Job)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땐 내가 25년 이상을 같은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인테리어 디자인’ 이라는 잡(Job) 안에서 난 여기저기 많이도 옮겨 다녔다. 시공부 기사를 하며 진정한 노가다도 했었고, 초급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하루 4시간만 자고 제도판에 달라붙어서 도면만 그렸던 적도 있었고,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로 캐드로 도면도 그리고, 몇 십억짜리 공사현장에서 현장소장도 해봤고, 작은 인테리어 회사를 하나 차려서 운영하느라 정작 내 본업이 아닌 영업과 수금을 하면서 고객에게 아쉬운 소리도 해봤고, 중규모 인테리어 회사에서 시니어 디자이너도 하고, 대학교 인테리어 학과에서 겸임교수도 하고, 대기업 디자인그룹에서 디자인 디렉터도 해보고, 도면 한 장당 몇 천원 받고 알바도 해보고.
그 어느 것 하나 고되지 않은 역할은 없었고, 늘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은 치받아 올라오지만, 고객이 가지고 있는 속상함과 문제점을 같이 고민하고 내가 만들어준 공간 안에서 사용자가 만족하며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스스로 기뻐하는, ‘희-노-애-락’ 을 반복하며 25년을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다.
‘나도 배철수 DJ처럼 한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25년 5개월을 맞이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을 한다. 그리고 그러지 못했던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디자인 인생에 잠깐의 후회를 해본다.
나는 과연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식이 강한 걸까, 아니면 한가지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는 끈기가 부족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같은 디자인 직군이지만 여전히 새로운 직무를 해보고 싶은 모험심 때문일까. 그 이유를 생각해보지만, 26년을 향해가고 있는 내 디자인인생에 왜 한자리에서 25년을 맞이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그리 중요할까 한다.
배철수DJ는 “자기가 음악을 안 들으면, 그 뒤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자기도 안 듣는 음악을 청취자에게 들으라 그러면 안되지” 라며 방송 중 나오는 광고까지 전부 듣는다고 하면서 그것이 음악프로그램의 기본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나 역시 한 직장에서 오랜 근무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닌, ‘공간의 이해’ 이라는 것을 지키는게 내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지속할 수 있는 기본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50대를 맞이한 지금 나도 디자이너로서 멋지게 늙어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오늘도 저녁 6시,
26년을 향해가는 나의 또다른 하루를,
배철수 DJ와 함께, (잠시 숨 쉼)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