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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리 Aug 24. 2020

미국의 해장술 블러디 메리(Bloody Mary)

“언니 몰랐구나? 미국 사람들도 아침에 해장술 마셔!”


이건 무슨 소리지? 해장술은 자고로 대한민국에만 있는 게 아니었나? 새벽 2시까지 소주로 싸늘해진 위장을 새벽 국밥집에서 해장국에 소주 딱 한 잔 마시면 온몸이 개운해서 다시 새로운 아침을 시작할 것만 같은 그 맛을 미국 사람들도 안다고?


전날 친구의 송별회를 하느라고 마신 술이 아직 깨지 않은 상태였다. 아는 동생 두 명과 약속한 브루클린의 브런치 카페에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앉아있었다. 아직 술이 덜 깬 상태라서 아무것도 못 먹겠다는 나에게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반은 미국인인 승현이는 블러디 메리(Bloody Mary)를 마셔보라고 권했다.




블러디 메리(Bloody Mary)는 피로 물든 메리라는 뜻이다. 영국 여왕 메리 1세의 별명이기도 했다. 그녀는 가톨릭을 국교로 세우고 성공회와 청교도를 심하게 탄압했다. 메리 1세의 악독하고 잔인한 탄압으로 인해 붙여진 별명이었다. 얼마나 악랄하고 가혹했으면 블러디 메리 한잔 마시면 속 아픈 게 싹 낫는다는 건지.


메리 여왕 1세


속설은 하나 더 있었다. 서양의 괴담이다. 한밤중에 거울 앞에서 입에 칼을 문 채 ‘블러디 메리(Bloody Mary)’를 3번 외치면 블러디 메리 귀신이 나타난다. 그녀에게 미래의 남편을 알려달라고 하면 거울에 남편의 얼굴이 나타난다고 했다. 단, 메리 양 기분이 안 좋으면 자신을 부른 사람의 눈을 빼가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블러디 메리(Bloody Mary) 귀신


그렇게 탄생한 칵테일의 한 종류가 블러디 메리(Bloody Mary)였다. 색깔이 피를 연상시키는 빨간색이기 때문에 여왕 메리 1세를 연상시킨다고 불린 이름이었다.




“뭐로 만들어졌어?”

“보드카, 토마토 주스, 우스터소스, 핫 소스, 마지막에 셀러리를 꽂아줘.”

“뭐? 해장하는데 토마토 주스, 우스터소스랑 셀러리까지? 그게 무슨 맛이야?”


승현이는 토하는 시늉을 하는 나를 뒤로 한 채 한잔을 시켰다. 시뻘건 토마토 주스 위로 싱싱한 셀러리 한 줄기가 꽂혀서 나왔다. 잔 주위는 달착지근한 소금이 묻어있었다.


조심스럽게 한 모금 입술을 댔다. 잔에 묻어 있는 소금에 입술이 까슬거렸다. 피범벅 메리는 입술과 짭조름한 혀끝을 지나 목구멍으로 빠르게 넘어갔다. 눈을 감으니 16세기 메리 여왕 1세의 매섭고 날카로운 눈빛이 금세 위장에 닿아 있었다. 속이 뜨끈해지면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잉글랜드 국민의 모습들이 뱃속에서 아우성을 쳤다. 맛은 시큼 털털 짭짤 매콤 달콤한 모든 맛이 섞인 토마토 주스였다. 주스라기보다는 술이 들어간 토마토 수프 맛이었다.


“이거 괜찮은데?”

“원래 토마토가 해장 역할을 한대. 한국의 콩나물 같은 역할이지.”


한잔 마시고 20분 지나니 아메리칸 브랙퍼스트의 뻑뻑한 빵이 입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제 뭘 마셨나 싶을 정도로 개운했다.


그날 밤 기숙사에서 룸메이트가 없었고, 갑자기 미래의 남편이 궁금해진 나는 주방에서 칼을 가져왔다. 고민하다가 너무 무서워서 칼은 입에 물지 않은 상태에서 화장실 거울 앞에서 작은 소리로 소심하게 블러디 메리를 불렀다.


“블러디 메리, 블러디 메리, 블러디 메리.”


끝내 메리 양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입에 칼을 물지 않아서였나? 그날 지금의 남편 얼굴이 나타났으면 난 비혼으로 살았을까? 그때 남편의 얼굴을 봤다면 혹시 바꿀 수 있었을까?




지금 내 옆에서 기름진 얼굴로 잠들어 있는 남편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당신 그날 거울에 안 나타나길 잘했어!”


다음에 우리 집에 결혼 안 한 후배가 놀러 오면, 밤늦게까지 잡아놓고, 주방 칼 입에 물리고 ‘블러디 메리’ 주문 외쳐보라고 시켜봐야겠다.


블러디 메리(Bloody Mary) 만드는 법 :
토마토 주스 200㎖, 보드카 60㎖, 레몬즙 2작은술, 타바스코 소스(핫소스) 2방울, 우스터소스 2방울, 얼음, 소금 한 꼬집, 후추 약간
마지막에 셀러리 한 줄 꽂고 레몬 한 조각 장식


블러디 메리(Bloody Mary)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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