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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리 Aug 18. 2020

뉴욕의 첫 끼 Mike’s Coffee

“Hungry?” ……… (끄덕끄덕, 작은 소리로 예스~)
“Burger and coffee?”....(끄덕끄덕, 작은 소리로 땡큐~)

Mike 할아버지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1월의 어느 일요일 저녁 늦은 시간, 눈은 질척이게 내리고 있었고, 인적 없는 카페에 낯선 동양 여자가 신발과 바지가 전부 젖어 들어온 이유를.
낯설고, 춥고, 영어는 당연히 익숙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한 듯한 말투였다.
소고기 패티가 들어간 아주 저렴한 햄버거와 따끈한 커피 한잔은 춥고, 배고프고, 불안한  나에게 천국을 선물했다.

여러 말 묻지 않고 상대방에 맞춘 그의 또박또박한 질문과 자상한 인상은 나를 안심시켰다.


2009년 1월 25일 일요일 한국시간으로 새벽 03시 15분 무사히 기숙사로 입성했다.


‘미쳤지! 무슨 짐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왔을까…’

한국을 출발하기 1주일 전, 남대문시장에서 산 이민 가방 3개와 집에 있던 여행용 가방까지 가지고 왔다.


겨울방학이라 학교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개방 첫날인 그날은 막 들어온 유학생들로 기숙사 건물만 북새통을 이루었다. 엄청 빠른 영어로 정신없이 쏟아내며 설명을 한 기숙사 총괄은 대표 학생에게 나를 인계했고, 나는 열쇠를 받고 방을 배정받았다. 기숙사 규칙, 세탁실, 층간 쓰레기통, 주의할 점, 주변 카페 등을 설명하는 내내 정신이 없었다.

1월같이 않게 온몸은 땀범벅이었고, 뭐가 뭔지도 모르게 기숙사 방 배정받은 후 짐 정리를 시작했다.


이민 가방 3개와 기숙사 책상, 책장, 침대, 서랍장(러그는 룸메이트 것)


나에게 주어진 것은 침대, 책상, 책꽂이, 서랍장 하나씩뿐이었다. 긴장감은 사람을 빠르게 움직이게 하나보다. 짐 싸는 데 며칠이 걸렸는데, 푸는 데는 2시간 만에 끝났다.


‘젠장! 이불이랑 베개도 안 주네. 당장 내일 사야겠다.’ 투덜거리며 비행기에서 살짝 짐에 넣어두었던 색동 무늬 얇은 담요 한 장으로 침대 커버를 만들었고, 가져온 옷 중에 두꺼운 것으로 베개를 대충 만들었다.

갑자기 긴장이 풀렸는지, 잠시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생각해보니 12시간 넘게 굶고 있었다. 배가 고픈 줄도 몰랐지만, 먹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비 같은 눈이 질척거렸다. 어떻게 온 줄도 모르게 정신없이 와서 그런지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그냥 저 멀리 불빛 하나만 보고 찾아간 곳이 바로 학교 앞 ‘Mike’s Coffee’였다.

간판만 coffee였지, 안 파는 게 없는 전형적인 뉴욕 학교 앞 식당이었다. 한국에서 동네 분식집에서 A~Z까지 파는 것 같은 그런 가게였다.


Mike 할아버지는 허겁지겁 먹는 나를 바라보고 웃음 짓고 있었다. 나에게 와서 말을 시킬까 봐 살짝 긴장했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알기나 하는 듯 아무 말 없이 그냥 웃고 계셨다.


Mike's Coffee 집과 Mike 할아버지


‘아~내가 미쳤지…이 나이에 무슨 영광을 보자고 뉴욕까지 와서는…’

배부르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할아버지는 계산하려는 나에게 금액을 종이에 써서 주시고, 눈물 닦으라는 시늉을 하면서 냅킨도 몇 장 챙겨주셨다.


학교에도 봄은 찾아왔고, Mike’s Coffee 집은 나의 아침 식사를 해결해주었다.

그 어느 브런치 집보다 Mike 할아버지의 팬케이크는 일품이었다. 나의 가벼운 주머니를 채우기엔 가격이 저렴했고, 맛은 기가 막혔다.

특히 당 떨어졌을 때 Mike 할아버지가 타주는 아이스 라테는 딱 한국 커피 믹스 맛이었다. 얼음 아래 깔린 아직 녹지 않은 설탕 덩어리들은 당 충전이 필요한 학생들 입맛에는 딱이었다.


뉴욕에서의 춥고 외로웠던 첫날 이후 Mike 커피집은 단골이 되었고, 할아버지와는 절친이 되었다.

엄마가 보내주신 김치도 맛본 정도라면 Mike 할아버지가 나의 절친이 맞지 싶다.

다시 뉴욕을 가는 날, 첫 끼니는 Mike’s Coffee로 향할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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