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영화 <서브스턴스>

나는 나를 증오하고, 나를 욕망한다.

by 희구


거울 속의 나


나는 거울을 꽤 자주 본다. 어딘가 더 나아져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을 지우고, 지금의 내 모습을 눈에 가득 담아본다. 거울 속의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화 <서브스턴스>에는 자극적이고 끔찍한 장면들이 많다. 하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외출을 하려던 엘리자베스는 문 손잡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울을 보며 서둘러 화장을 고치다가 결국 자신의 얼굴을 무섭도록 거세게 문질러버린다. 이 장면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충돌하는 자기혐오와 자기애


엘리자베스는 사람들에게 더이상 사랑받지 못하고 늙어버린 자기 자신을 증오했다. 자기혐오에 시달리던 엘리자베스는 어느 날 ‘서브스턴스’라는 이름의 형광빛 약물을 자신의 몸에 주입한다.

새로운 몸을 얻게 된 엘리자베스는 ‘수’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젊고 아름다운 몸은 자기혐오에 대한 간편한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엘리자베스’라는 실상과 ‘수’라는 허상은 대립하게 되고, 주인공은 자신이 만들어낸 또 다른 나와 싸우게 된다. 자기혐오와 자기애의 충돌이다.

영화 속의 ‘거울’은 ‘내가 나를 마주하는 것’을 상징한다.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던 엘리자베스와 수가 마침내 거울을 깨버린다. 주인공은 자기혐오와 자기애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자, 더이상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후, 분열된 자아를 견뎌내지 못한 주인공은 ‘몬스트로 엘리자수’라는 괴물이 되어 철저하게 파괴된다.

나를 증오하는 자기혐오, 나를 욕망하는 자기애. 충돌하는 자기혐오와 자기애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나를 사랑하는 방법

무조건적인 자기애는 진정한 자기 사랑이 아니다. 실망스러운 모습을 덮어놓고 긍정하는 것은, 더 나아지고자 하는 욕망을 외면하는 일일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상적인 나’를 위해 지금의 나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욕망을 좇으면 <서브스턴스>의 결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칼 융은 인간의 심리 안에 있는 ‘영원한 아이(내면아이)’에 대한 개념을 제시했다. 얼마의 나이를 먹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상처받고 미성숙한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그런 내면의 미성숙함과 외면의 성숙함에서 오는 복잡성으로 괴로워진다.

아무리 맛있어도 음식을 적당히 먹을 줄 아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욕망을 적절히 해소하면서도 욕망으로 파괴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는 현명한 부모님이 어린 자녀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통해 위의 질문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아이가 떼를 쓸 때, 무작정 소리를 지르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차분히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나의 내면에 있는 어린아이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다정하게 다루는 연습이 필요하다.

영화 <서브스턴스>의 형광빛 약물은 엘리자베스의 몸을 젊게 만들었지만, 그 안의 미성숙한 내면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마음 속 어린아이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괴롭다.

이상과 현실의 균형


삶의 무게는 나만이 짊어질 수 있다. 그 말은 곧, 그 무게를 버티기 위해 매일 육체의 근육을 단련하고 정신적 에너지를 채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무너지지 않는다.

‘최성운의 사고실험’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동진 평론가의 인터뷰 영상을 접했다. 그의 인생관으로 소개된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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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그의 말을 들었을 때,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문장이 너무나도 탁월해서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이지만, 덧붙여 보자면 이렇다. 인생 전체를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 하루는 성실하게 살기로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낸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처럼 흘러가지는 않으므로, 어쩔 수 없는 것들은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 삶에 대한 태도로, 이보다 더 편안하고 멋진 태도가 또 있을까?

이상적인 나의 모습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나는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상과 현실의 균형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이 영화 <서브스턴스>가 내게 남긴 메시지다. 숙명을 사랑하되, 매 순간 가장 나은 선택을 하려는 태도야말로 삶을 덜 징그럽고 더 유쾌하게 만드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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