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자

by 희구




간단한 줄거리 (스포주의)


치히로네 가족은 이사를 가던 중, 우연히 이상한 터널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은 인간 세계와는 다른 세계였고, 치히로의 부모님은 그 세계의 음식을 함부로 먹는 바람에 돼지로 변해버린다. 혼자 남겨진 치히로는 하쿠라는 소년의 도움을 받아 온천탕에서 일하게 된다. 이때, 이 세계를 지배하는 유바바라는 마녀와 계약을 하게 되고, 자신의 이름을 빼앗긴다. 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치히로는, 온천탕에서 일을 하며 다양한 신들을 만나고, 얼굴 없는 요괴 가오나시도 만나게 된다.

이 세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잊으면,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는 길을 잃게 되고, 자신이 본래 어떤 존재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하쿠도 오래전에 유바바에게 이름을 빼앗기고,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채 유바바의 부하로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하쿠는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 제니바의 도장을 훔치는 일을 하게 되었고, 마법에 걸려 위험에 처한다. 센은 하쿠를 살리기 위해 제니바의 집에 찾아가지만, 제니바는 오로지 센만이 하쿠와 부모님을 구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 세계에서 어느새 성장한 센은, 결국 자신의 진짜 이름과 하쿠의 정체를 기억해낸다. 하쿠에게 이름을 찾아주고, 유바바의 마지막 테스트를 통과하여 부모님과 함께 인간 세계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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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기억이 나지 않을 뿐

영화라는 매체가 원래 휘발성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지만, 특히 지브리 영화는 더욱 휘발성이 강한 것 같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살면서 최소 다섯 번은 넘게 봤을 것 같은데, 이번에 다시 보다가 ‘원래 저런 내용이었나?’ 싶은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오나시의 변모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가 다시 한번 새롭게 충격을 받았다. 특히 개구리를 먹은 직후의 가오나시는 너무 무섭고 기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영화를 끝까지 보고나서 드는 생각은, 왜 좋은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좋다’였다.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그림체 때문인지, 히사이시 조의 탁월한 OST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음이 간질간질하고 몽글몽글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어린이날 기념으로 ‘벼랑위의 포뇨’도 봤더니 지브리 감성에 절여져 버렸다.

나와 다른 존재와의 연대감, 자연 파괴에 대한 경각심, 어린 아이들의 순수성, 그리고 눈부신 성장 등 다양한 메시지들이 지브리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 같다. 또다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구체적인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하쿠를 기억해 낸 치히로처럼, 언젠가 이 영화를 보고 이런 글도 썼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겠지. 한 번 일어난 일은 잊을 수 없는 법. 다만 기억이 나지 않을 뿐. (영화 속 대사다)

덧없는 인생


요즘 들어 뼈저리게 느끼는 건데, 인생 참 덧없다. 아무리 행복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그 모든 순간들은 사라진다. 그게 정말 일어난 일이었는지도 헷갈릴 정도로 꿈처럼 모든 시간들이 흩어져버린다. 손으로 움켜잡으려 노력해도 가장 소중한 것들은 실체가 없는 것들이라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가 버린다. 움켜쥔 손을 다시 펴보면,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손을 움켜쥐었다는 행위가 소유하던 무엇인가를 잃었다는 느낌을 주곤 한다.

그래, 인생은 원래 이랬었다. 다만, 내가 또다시 기대를 했을 뿐. 나는 마치 영원할 것처럼 사랑하고, 기뻐하고, 행복해버렸다. 그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린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슬퍼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역시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치히로가 신들의 세계에서 이런 저런 일을 겪었다 한들, 하룻밤 꿈에 지나지 않고, 그녀의 삶에 헤프닝 정도로 끝나는 일이다. 아니 그보다 더 신비로운 일을 겪었다 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 번 일어난 일은 잊을 수 없는 법

살아간다는 건,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또 다시 마음을 주는 일인 것일까. 덧없음을 견디는 법은, 그저 붙잡았다가 다시 놓아주는 일을 끝없이 반복하며 사는 것일까. 언젠가 잊힐 것을 알면서도, 또다시 봄을 맞고, 웃고, 상처받고, 다시 회복하는 것일까.

치히로가 그 세계를 벗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듯, 나도 매번 무너진 마음을 데리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사실은 정말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하루하루를 다시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잊히지 않는 그 꿈 같은 순간들이 내 안에 은근하게 남아, 다음 봄을 또 기다리게 만든다. 이런게 인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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