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하루살이의 마라톤

내가 갖지 못한 재능에 대하여

by 희구


저에게는 고질적인 버릇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재능충’, ‘효율충’이라 여기며, 남들이 일주일 걸릴 일을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다는 이상한 자신감을 가진 것이죠. (어쩌면 메타인지가 낮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미루고 미루다가, 정말 하지 않으면 망하는 순간에야 일을 시작합니다. 대학 시절에도 그랬습니다. 영어 발표를 준비하지 않은 채 발표 20분 전에 PPT와 대본을 급히 만들거나, 레포트 마감 전날 밤새 술을 마신 뒤, 새벽에야 휘청거리는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곤 했습니다.

이렇게 벼랑 끝에서 일을 끝내면 늘 양가감정을 느낍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사나’ 하는 한심함과 ‘이번에도 무사히 해냈다’ 라는 묘한 희열이 동시에 밀려오죠. 가슴팍에 베이스가 울리는 듯한 그 쾌감은 중독처럼 남아, 이제는 버리고 싶은 습관으로 남았습니다.

돌아보면 이런 습관은 초등학생 때부터였습니다. 방학이면 하루 12~15시간씩 게임에 몰두하다가, 방학 전날이 되어서야 밤새도록 일기, 독후감, 미술작품을 부랴부랴 해치웠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날 대충 그린 그림이 상을 받기도 하고, 선생님은 한꺼번에 쓴 일기를 보고 제 성실함을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나는 전날에 대충 해도 상을 받을 정도로 재능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믿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단단해졌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하루살이 같은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 일입니다. 저는 장편소설이 쓰고 싶은데, 지금의 습관으로는 어림도 없죠. 단거리 질주가 아니라 마라톤을 해야 하는데, 저는 여전히 출발선에서 서성이며, 어떻게 하면 덜 힘들게 완주할 수 있을지만 궁리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재능이란 벼락치기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능력이 아니라, 매일 시간과 정성을 들여 자신을 단련하는 능력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주식도 단타보다 장기투자가 승산이 있듯, 재능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20대까지는 반짝 노력도 운이 좋으면 통할 수 있지만, 30대에는 얄팍한 요령이라는 걸 금세 들키게 됩니다.


그래서 올해 제가 갖고 싶은 단 하나의 덕목을 꼽자면 ‘착실함’입니다. 그 하나만큼은 꼭 손에 넣고 싶습니다. 착실함을 얻으려면 미루는 습관부터 버려야 합니다. 마감 직전 몰아서 하거나,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식을 이제는 끝내야 합니다.

최근에는 아주 작은 습관부터 만들고 있습니다. 매일 해야 할 일이 정해진 채로 눈을 뜨고, 그 일을 마쳐야만 잠자리에 드는 방식입니다. 아직은 밀린 일기를 쓰듯 하고 있지만, 하반기에는 그것들을 온전한 습관으로 정착시키려 합니다. 착실한 습관 형성에 매주 만나는 독서모임도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매주 결과물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규칙성’이 생겨나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렇게 작은 일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살아보고자 합니다. 벼락치기 대신 착실함을 선택하며, 꾸준히 변해가고 싶습니다.